아침시평- 그리스인 조르바의 카잔차키스와 오센집 그리고 양림동의 김현승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7.11.13. 00:00
한희원 화가

며칠 전 은암미술관 채종기 관장의 전화를 받았다. 미술관에서 광주미술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있으니 한번 들러 달라는 전화였다. 은암미술관이 새롭게 단장하였다는 소식도 들려오던 차라 궁금하기도 해서 미술관을 찾았다. 시내의 은행나무는 가슴 시리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날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감상하면 작품과 교감을 하며 심취할 것 같은 날이었다.

완전히 새롭게 변모한 미술관 입구에 '오센집의 추억'이라는 글귀가 가슴에 박힌다. 오센집!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낡은 잡지의 글이나 막걸리 집에서 원로화가들의 대화 속에서 간간히 엿들었던 단어가 '오센집'이었다. 지금은 사라져서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오센집'은 광주 예술의 전설과 신화 같은 많은 이야기가 전해졌던 주막집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키며 시대의 예술을 논했던 낡고 얼룩진 사연들이 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원로 화가 분들이 전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강용운, 배동신, 양수아. 지금은 전설을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된 화가들이 '오센집의 추억'전의 주역들이다. 오지호, 김보현, 임직순, 강용운, 배동신, 양수아…. 오늘 광주의 미술이 있기까지 고통 속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 화가들이 선구자 역할을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백민 조규일 화백이 단단한 목소리로 들려주던 '오센집'의 이야기는 지금 화가들은 생각할 수 없는 그 시대 화가들의 녹록치 않은 사연들이었다.

충장로 파출소 소장이 박정희 대통령이 광주시를 방문하는 날 배동신 화백의 집에 정종 두병을 들고 찾아가 "이 날만은 밖으로 나오시지 말고 집에서 술을 드시라"던 이야기. 양수아 화백이 주먹을 불끈 쥐며 '빨간 마후라'를 부르던 이야기. 강용운 화백의 '추상 애찬'.

'오센집'에서 토론을 하던 중에 탄생한 광주 지역 최초의 추상 미술 모임이었던 '에뽀크'창립. 소설가 한승원씨도 종종 찾아와 화가들과 어울렸던 이야기 등. 전시장 안에는 뜨거운 옛 감성들이 떠돌아 다녔다.

전시장을 나서며 지금은 사라진 '오센집'이 있던 곳을 지나갔다. '오센집'이 있는 곳에는 회색빛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옛 화가들의 추억만이 자취도 없이 허공에 맴돌고 있었다.

비록 낡고 험해도 이런 공간은 자본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영혼의 힘이 있는 곳이다. 사라진 '오센집' 앞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가을 햇살이 순간 눈부셨다. 노란 은행잎 하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문득 올 여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찾았던 그리스의 에게해 크레타 섬이 떠올랐다.

크레타섬은 화가 엘그레꼬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던 카잔차키스의 고향이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 출생으로 아테네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의 대표작으로 종교, 이념,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 조르바를 통해 진정한 자유인의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카잔차키스의 마을 입구에 있는 언덕 위에 오래 된 나무십자가 카잔차키스의 묘역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 나는 늘 종이에 자유라고 써놓고 염소처럼 그 종이를 먹는다. 그리고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중략). 그의 삶처럼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카잔차키스 문학관이 있는 마을은 온 마을이 그를 기리는 조형물로 마을이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양림동의 시인 김현승이 떠올랐다. 많은 관광객이 양림동을 찾고 있지만 광주의 위대한 시인 다형 김현승의 자취를 양림동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가을 양림동 길을 걷거나, 양림산 플라타나스 길을 오르며, 가을의 시인 김현승의 자취를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센집'의 화가들, 카잔차키스, 다형 김현승. 가을이 익어가는 오후 나의 뇌리에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영혼이 끝없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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