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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 <12>무등산 자락 누정과 가을시
푸른 하늘 가을산 돌며 선인들의 가을 읽는다
입력시간 : 2017. 10.02. 00:00


소쇄원
◆ 누정과 옛시

무등산은 홀로 깊은 산이다. 광주호를 이루게 될 계곡과 내를 따라 특별한 사연을 품은 정자가 들어 서 있다.

그 사연 위로 세월과 함께 시들이 켜켜이 쌓여 빛난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가면서 가을의 정취를 옛시와 함께 만나면 색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옛시와 주요 정보는 김대현 교수의 '누정을 돌며 가을시를 읽는다'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무등산에 세워진 누정은 아주 많다. 우리의 고전문학과 관계가 깊다. 누정문화의 일번지라 부르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에서도 북쪽 산록 남면으로 흐르는 자미탄 그리고 원효계곡 부근에는 자연에 잘 스며든 누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좋은 시절이다. 하늘은 높푸르다. 물은 차고 맑아진다. 산은 물들어 간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먼저 따라 갈까!

독수정


◆ 독수정(獨守亭)

무등산 유역에 처음 자리한 정자는 독수정(獨守亭)이다. 홀로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담양 남면의 남쪽 무등산 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고려 말 서은(瑞隱) 전신민이 건립하였다. 조선의 건국에 참여를 거부한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다. 서은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여 정자를 세웠다. 서은은 "바로 이 청산에 뼈를 묻히고자 굳게 다짐하며 홀로 지킬 이 집을 얽었다"라고 독수정 지은 뜻을 밝혔다. 독수정 '14경' 중 가을을 읊은 '金山丹楓'을 본다.

한 줄기 시내 서편 물가 또 가을바람이 이니(一溪西畔又秋風)

다 떨구고 몇 남은 서리 맞은 단풍 늦도록 더욱 붉네(別有霜楓晩更紅)

농염한 자태는 난만하게 핀 꽃을 이기고도 남겠네(濃艶勝於花爛漫)

금산은 또 이 금산을 품에 품고 있는 것이겠다.(金山便是金山中)

담양의 금산은 가을이면 가장 금산다워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오색 단풍이 더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금산의 금산의 금산'을 품고 있는 까닭이다. 금산이 품고 있는 '금산'은 어떤 것일까? 시간으로 하면 단풍나무가 품고 있는 몇 남은 단풍잎의 시간이겠다. 공간으로 하면 독수정을 가리키겠고, 사람으로 하면 곧 서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겠다. 안에 품고 있는 금산으로 인해 금산은 진정한 금산이 되고 있다.



◆ 소쇄원

독수정에서 돌아나 발길을 고서 쪽으로 향한다. 광주호에 조금 못미처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1503~1557)는 어둡고, 무서운 시대와 만났다. 그래서 이곳에 은둔하고 조성한 원림이 소쇄원이다.

1530년대에 양산보가 조성을 시작하였고, 그의 평생지기였던 하서 김인후와 면앙정 송순이 큰 도움을 주었다.

아들인 자징과 자정의 시대에도 원림 조성은 계속되었다. 원림을 이루는 나무들에 단풍이 지고 새로 움이 돋을 때마다 원림은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하면, 조성은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중 가을 '산애송국(散崖松菊)'을 들어 본다.

북쪽 고개는 층층이 푸르고(北嶺層層碧)

동쪽 울타리는 점점이 노랗네(東籬點點黃)

비탈에 함께 섞여 심어진 것이(綠崖雜亂植)

늦가을 풍상에도 의연하구나(歲晩倚風霜)

이 시를 금방 읽으면 푸른 소나무와 노란 국화가 잘 대비되어 있다고 평하기 쉽다. 그러나 좀 더 음미해 보면 도학자의 면모가 잘 묻어나온다. 푸른 소나무는 붉은 줄기를 가졌다. 노란 국화의 줄기는 검푸르다. 색다른 두 푸름 사이에 소나무의 붉음과 국화꽃의 노랑이 어울린다. 그리고 이 색들을 더 선연하게 돋게 하는 바람과 흰 서리가 있다. 소나무와 국화의 단순한 대비는 맑은 뜻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의 것들에도 눈길을 주면 좀 더 다채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 식영정

소쇄원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 식영정과 서하당이 있다. 식영정(息影亭)이라는 이름은 그림자도 쉬어간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내가 보기에는 소나무 그림자에서 한가하게 쉬고 있는 정자에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식영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1호다.

서하당 주인인 김성원(1525~1597)이 장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다. 석천 임억령의 '식영정 20영' 중 가을을 노래한 '벽오량월(碧梧凉月)'을 들어 본다.

가을 산이 서늘한 달을 토해(秋山吐凉月)

한밤중 뜰 앞 오동나무에 걸었네(中夜掛庭梧)

봉황은 어느 때에나 당도하려는가(鳳鳥何時至)

나 지금 천명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吾今命矣夫)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따먹기 위해 봉황은 세상에 없는 거리를, 세상에 없는 시간 동안 날아와야 한다. 그 거리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지만, 화자는 그 봉황을 만나보고 싶다. 그러나 영생을 사는 봉황에게도, 천명이 다해 가고 있는 화자에게도 공평한 것은 오동나무에 걸려 있는 달의 시간, 곧 지금 여기의 시간이다.

달이 오동나무에 열린 이 순간을 나만큼 지켜본 이는 없다. 시인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천명이 다하는 내 생이 아니다. 오동나무에 열린 달을 봉황에게 알려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천명이 다하는 그는 영생을 누리는 봉황을 '짠'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환벽당


◆ 환벽당

식영정에서 자미탄을 건너면 김윤제(1501-1572)가 지은 환벽당을 만날 수 있다. 사촌(沙村) 김윤제는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 정자를 짓고 후학 기르기에 전념했다. 소쇄원의 양산보와는 처남매제지간이다. 그는 정철을 제자로 맞이했고 정철은 그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정철의 넷째아들인 정홍명이 지은 '환벽당여동우(環碧堂與洞友)'을 본다.

언덕을 이룬 단풍 숲 물에 비쳐 아름답고(岸楓林照於水姸)

호수와 산이 이룬 시경은 아홉 겹 가을이네(湖山詩景九秋天)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 나만 늙어 하릴없다 말아야지(佳辰莫漫欺吾老)

머리 희어져도 느는 것은 술 배를 젓은 일이네(頭白猶能掉酒船)

이 시는 우리에게 흔들림의 지혜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물든 가을 산은 그대로 아름답다. 그 산이 호수에 잠기면 아홉 배쯤 더 아름답다. 잔물결에 겹겹이 가을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을로 드는 모든 자연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것은 새봄의 기약 덕분이다. 새봄을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의 가을은 쓸쓸하고 하릴없고 부질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호수의 물결과 함께 아홉구비로 흔들릴 수 있는 백두옹의 지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불가능한 새봄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이 시경을 최선을 다해 흔들리며 만끽하는 것이다.



◆ 풍암정

환벽당에서 무등산 쪽으로 길을 나서 원효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한참을 오르다보면 왼편으로 풍암정을 만날 수 있다. 이 누정은 김덕령의 동생 김덕보가 지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정홍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암괴석 사이에 1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끼어 있어 흐르는 시냇물조차 붉었다"라고 풍암정을 그렸다. 만덕 김대기(1577-1631)의 '사풍암(謝楓巖)'을 본다.

나는 늙고 그대 또한 병이 들어(我衰君亦病)

지팡이 부여잡고 억지로 찾아 왔네(扶杖强來尋)

문에 다다랐으나 모습은 볼 수 없고(臨門不得面)

맑은 날 단풍이 숲을 이루었네(白日晴楓林)

친구를 찾아온 만덕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늙고 병들어 힘겹게 오른 길에 친구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클 법도 하다. 그러나 조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늙고 병든 모습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친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맑은 날 단풍숲'을 친구 대신 품고 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풍암에 감사'가 아니겠는가.

문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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