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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영화관 살리기,'지역의 힘으로' <10> 되찾은 영화궁전 佛파리 룩소극장
30년 동안 방치됐던 폐관 극장 지자체 지원 '부활'
1921년 개관 당시의 모습 유지 광주극장과 닮은꼴
관객과 공유시간 늘려 다양한 프로그램 성공적 안착
입력시간 : 2017. 09.06. 00:00


1954년 한 잡지에 실린 룩소극장의 모습.
프랑스는 영화의 나라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프랑스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영화=프랑스'라는 공식이 늘 지배적이다. 이는 국가의 정책이, 지자체의 지원이, 국민들의 정서가 모두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현대영화의 출발이 프랑스에서 이뤄졌고 무수히 많은 그리고 다양한 영화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생태계를 갖추기까지 반세기 이상의 노력과 과정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프랑스도 멀티플렉스의 팽창에 흔들리고 있지만, 견고한 정책들을 고수하며 영화의 다양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고풍스러운 영화의 궁전

프랑스 파리의 7월은 꽤 선선했다.

습도가 적은 지역이라 기온이 높은 날에도 그늘에만 가면 더위가 날아가곤 하는데, 올해는 특히 한여름 땡볕의 느낌은 없었다.

주말 토요일 오전, 메트로 2호선을 타고 찾아간 룩소극장은 외관부터 웅장했다.

멀티플렉스의 로고를 따라 흐르는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쉴새없이 상영작들을 홍보하는 대형 화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건물 꼭대기에 새겨진 '룩소-영화의 궁전'(Louxor-Palais Du Cinema)라는 단어가 잘 어우러졌다.

입구에는 상영작과 기획전 등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간이매점을 겸한 매표소가 있다.

상영관은 3곳. 모두 크기가 다르다.

마침 상영시간이 맞은 2관의 티켓을 구매하고 보니 애니메이션이다.

정오를 넘기지 않은 시간이라 일종의 조조할인으로 5.8유로에 티켓을 구매했다.

지하에 자리한 상영관으로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외관과 달리 실내는 현대식이었다. 푹신하고 넓직한 좌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신전처럼 기둥이 자리한 내부 인테리어도 외관과 마찬가지로 개관 당시 이집트 양식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상영시간이 가까워오자 아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이 자리를 채워나간다.

주말 아침이지만 객석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고 영화는 광고 없이 시작됐다.

한참 영화를 보다보니 애니메이션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절감했다. 빠르고 생소한 프랑스어 대사가 덜한만큼 그림 중심의 흐름덕에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파리 메트로 바르베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룩소극장 외관이다. 맨 윗쪽에 룩소극장의 역사를 담은 '룩소-팔레 뒤 시네마'(룩소-영화의 궁전)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화려하게 부활한 옛 영화관

국내 영화 관계자들과 광주극장 이야기를 나눌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중 하나가 룩소극장이다.

개관 시기도 비슷할뿐만 아니라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형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등 두 극장은 닮아있는 점들이 많다.

광주극장은 여전히 힘겹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과 룩소극장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속에 문화유산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점이 다르다.

룩소극장은 1921년 10월6일 개관했다. 이름은 이집트 수도인 룩소르테베에서 따 온 것이다.

이집트인 건축가 앙리 집시가 건설한 네오 이집트와 아르데코풍의 건축물로 영화관 내외부에는 이집트를 연상케하는 모자이크와 풍뎅이, 연꽃 같은 문양들이 장식됐고 지금도 건물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첫 개관 당시에는 무성영화의 황금기였던 만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장편의 무성영화들이 상영되고 했다.

또 일명 '뉴스릴'이라고 불리우는 뉴스영화(실제 생활의 풍경을 담은 영화, 영화학자들은 필름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와 코미디, 다큐멘터리 같은 다양한 소재의 단편영화 그리고 때로는 콘서트, 서커스 등 공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하며 철저한 감시를 받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화려한 영화의 전성기를 누렸다.

실제 1946년 관객수가 72만7천30명을 기록할 정도로 잘 나가던 극장이었지만 1965년 16만5천명으로 관객이 급감했다.

또 몽마르트 언덕 인근에 자리한터라 아랍인, 인도인, 파키스탄인들이 섞여 있어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인도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되다 결국 1983년 11월29일 영화상영을 마지막으로 폐관됐다.

1981년 외벽과 지붕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1980년대 후반까지 나이트클럽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고 극장은 이후로도 10여년 넘게 방치되다 2000년 배우, 감독, 언론까지 함께 '룩소구하기'에 나섰다.

더 이상 폐관된 극장을 방치할 수 없었던데다 문화재로 지정된 후 개발이 불가피했던 터라 파리시는 2003년 2천500만 유로를 들여 룩소극장을 매입했고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끝에 재개장 후 민간에 위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건축가 필립 퓌맹의 지휘 아래 30년 동안 방치됐던 폐관 극장이 2013년 4월17일 마침내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관객과 영화 공유하는 문화공간으로

1천395석의 메인홀은 342석의 상영관으로 변신했지만 두개 층의 테라스와 그동안 수차례 리노베이션을 통해 자취를 감춰버린 이집트 양식은 고스란히 복원됐다.

또 디지털 상영시설까지 갖추고 규모가 다른 2개의 작은 상영관까지 덧붙이면서 3개의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으로 부활했다.

룩소극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 상영작들은 예술영화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학생과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프로그램들도 운영한다.

또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시네클럽이나 매달 한번 영화 관계자가 아닌 유명인들을 초대해 그들이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관객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연간 운영비는 5만 유로로 주로 CNC(프랑스 국립영화센터), 파리시, 유로파 시네마 등의 지원금을 비롯해 관객입장료, 몽마르트 언덕이 보이는 전망좋은 루프탑바 운영 수익금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는 입구에 자리한 룩소극장 주변은 아랍, 인도,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파리에서는 비교적 개발이 더디고 인근에 영화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룩소극장을 영화관으로 재개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룩소극장 재개관 후 인근 주민들의 영화 관람 횟수는 4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현재 연 관객이 20만명에 달한다.

에마뉘엘 파피용 룩소극장 디렉터는 "영화를 보는 방식은 다양해졌지만 영화관이 주는 매력을 즐기는 관객들은 여전히 있다"며 "아직 수익성을 내기는 힘들지만 아직 영화관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이윤주기자 storyboar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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