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진의 문학은 사랑이다

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 <10>600리를 흘러도 맑게 외로운 강, 섬진

입력 2017.08.28. 00:00
北으로 길 나서면 금강 천리, 南으로 가면 600리 섬진
그 이름을 따라 시를 품고 흐르다
발원지 데미샘은
천상봉우리 중턱쯤에 있다
인적은 드문 곳이다
한여름에도 이가 시린 맑은 물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섬진강 발원지

◆발원지

600리 섬진강이 처음 시작되는 곳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데미샘이다. 강의 발원지를 '샘'으로 한 연유는 정화수에 비손하는 우리 기원 문화와 연관이 깊은 것 같다. 장소를 특정하지 않으면 모든 산봉우리(데미)들에서 강은 시작한다.

데미샘의 남쪽 이웃에는 장수군 수분리(水分里)가 있다. 이 마을 위에 자리한 '뜬봉샘'은 천리 금강이 시작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물뿌랭이, 물뿌랑구라고 부르는 샘이다. 수분리 길가에 외따로 떨어진 집 한 채가 있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길을 나서면 금강 천리를 흐르고, 남쪽으로 길을 나서면 600리 섬진강이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섬진강 600리 여정을 김용택 시인은 한 편의 시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은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어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 '섬진강' 전문

섬진강은 가도 가도 맑은 강으로 흐른다. 남원시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크게 모여 사는 마을들이 강변에 붙어있지 않다. 스스로 견뎌내는 잔잔하고 깊은 외로움이 '강 맑음'의 비결이라고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 '흐르다 흐르다 목에이'는 것은 외로움 때문은 아닐까.

#그림1중앙#

◆저마다의 강

섬진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데미샘은 천상봉우리 중턱쯤에 있다. 섬진강 발원지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인적은 드문 곳이다. 한여름에도 이가 시린 맑은 물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낮에도 햇볕이 귀한 곳이다. 샘물은 마이산 서쪽까지 흘러갔다가 서남으로 방향을 틀어 임실로 향한다.

옛사람들은 산과 강을 방향을 가늠하는 좌표로, 장소를 알려주는 지표로 삼았다. 임실군 관원면 사람들은 섬진강을 '오원강'이라고 불렀다. 그 아래 운암면 사람들을 '운암강'이라고 불렀다. 여러 산들에서 모인 물로 제법 굵어진 섬진강은 강진면에서 물길이 막혀 옥정호를 이룬다.

옥정호에 잠시 머문 섬진강은 회문산에서 내려온 물과 구림천을 더하며 흐른다. 순창군 적성면에서 '적성강'이라는 이름을 얻은 강은 남원을 지나 곡성으로 들어선다. 곡성읍과 고달면 사이에 이르는 강폭이 세 배 넘게 넓어진다. 계곡과 같은 정취를 이루며 급하게 흘러내릴 때가 많았던 강은 이곳에서 잔잔한 휴식을 맡는다. 흘러가는 것 같지 않게 순하게 흐른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은 '순자강'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곡성을 지나면서 강은 '섬진강'이 된다. '섬진'이라는 말이 지닌 내력의 위력이 다른 이름보다 그 만큼 크다는 말이다. 고려말 우왕 때(1385년) 왜구가 섬진강에도 자주 출몰했다. 한 번은 왜구들이 하동에서 강을 건너 광양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 진상면 섬거에 살던 수만 마리 두꺼비가 광양 다압면의 한 나루터로 몰려들어 진을 치고 울었다. 그것을 본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

두꺼비들 은공을 기려 두꺼비나루강 곧 섬진강(蟾津江)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적들에게는 상서로운 두려움을, 고장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구의 침입이 미쳤던 곳까지는 '섬진'이라는 말은 일종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압록

압록(鴨綠)은 섬진강이 처음으로 강을 만나는 곳이다. 예전에는 보성강이라고 불렸던 대황강을 섬진강은 구례구를 목전에 두고 만난다. 강과 강은 비스듬하게 만나는 것이 보통이다. 둘은 함께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를 이룬다.

대황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장면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흐르는 섬진강을 갈라치면 대황강이 뛰어드는 형국이고, 흘러가는 대황강을 섬진강이 막아선 모양이다. 두 강은 워낙 순해서 그렇게 격하게 만나면서도 겉으로 소란을 드러내지 않는다. 겉으로 그렇다 해서 속사정까지 그럴까.

장마를 싣고 가는 강물 깊게 잠긴 푸른 하늘 에둘러 푸른 산그림자 드리운 압록, 흙강의 마음은 하상단애(河床斷崖)

당신과 내가 만나는 것도 저와 같아

그 온기, 흐름과 그리움들 온전히 섞여 송정나루 화개나루도 지나 한 강으로 흐르도록 깎이고 무너지고 다시 추억의 편린들 흘러와 쌓이고 쌓이길…… 억 년 섬진의 마음으로 잠겨 오는 것을

강과 강이 부딪는다

강물이 단애(斷崖)의 허방을 디딜 때마다 소용돌이로 떠오르는 흰 포말의 둥지를 박차고

초록 오리떼 날아오른다.

- 전동진, '압록(鴨綠)' 전문

압록 유원지에서는 인명사고가 잦았다. 겉으로는 평온한 강물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바닥은 오리의 둥지처럼 움푹움푹 패어 있었다. 고요함이 그 단애를 디딜 때마다 강물은 소용돌이친다. 그 소용돌이의 위력은 사람의 발목도 낚아채 갈 정도였다. 압록에 일렁이는 작은 소용돌이들은 방금 강물을 박차고 날아오른 오리의 빈자리처럼 쓸쓸해 보인다.

#그림2중앙#

◆어머니의 강

멀리 서쪽으로 구례를 안고 지리산을 마주하며 S자로 돌아나는 섬진강은 하구가 가까워 오는 데도 산골처럼 흐른다. 남쪽으로 흘러내린 지리산의 말간 물들을 고스란히 받아 안은 덕분이다. 지리산의 물줄기로 한결 맑아진 섬진강은 시인 이시영을 캐워냈다.

구례 골짜기에서 태어난 이시영은 80-90년대 한국문학계의 큰 축을 담당했던 '창작과비평'을 주도했다. 문학판에서 크게 활약을 한 시인이다. 그의 시 '성장'에서는 어머니의 강 '섬진'을 만날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 이시영, '성장' 전문

슬프게 들리는 어머니의 말 중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쓸쓸하기까지 한 말이다. 60, 70년대 어머니들은 이렇게 아이를 도회지로 떠나보냈다. 떠나간 강물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천회귀(母川回歸) 하는 은어들의 임무는 그 강물들을 산골까지 다시 품고 오는 것은 아닐까? 조금 과한 상상도 남해로 강 머리를 향하는 섬진강이라면 다 받아줄 것 같다. 문학박사·시인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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