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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육상실크로드 <9>조선인 피·땀 배인 '환바이칼 철도'
바이칼 휘돌아 아름다운 철길 속 한민족 애환 서려
슬류쟌카 역은 세계 어느 황궁보다
더 아름다운 역이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 역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었다고 한다.
역은 난공사로 어려움을 겪었던
환바이칼 철도 개통을 기념하는 의미로
입력시간 : 2017. 08.25. 00:00


:기차를 타고가다 중간에 간간히 내려 특이한 식생이나 기암괴석 등을 보기도 한다.
◆아찔한 절벽 위를 달리는 철길

바이칼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이 있다. '환 바이칼 관광철도'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르쿠츠크 기차역에서 시베리아 황단열차를 타고 환바이칼 열차가 출발하는 슬류쟌카 역으로 아침 일찍 갔다.

슬류쟌카 역은 세계 어느 황궁보다도 더 아름다운 역이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 역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었다고 한다. 이 역은 너무나 난공사로 어려움을 겪었던 환바이칼 철도 개통을 기념하는 의미로 기념비적 건축물로 지었다고 한다. 특별히 공사 중 채취한 보석과 같은 하얗고 분홍색을 띤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공주가 사는 궁전 같았다.

역 앞은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를 끼고 꾀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가 역에서 광장으로 나오자 순간 상인들이 모여들고,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 길거리 노점상이 모여들었다. 따끈한 훈제 오믈, 산열매, 삶은 감자, 보드카 등을 팔려는 사람들과 관광객이 한데 섞였다.

드디어 대기하고 있던 관광열차가 기적을 울렸다. 곧 출발한다는 신호였다. 광장 상인들에 섞여있던 승객들이 놀라 서둘러 열차에 오른다. 열차가 슬류쟌카 역을 빠져 나간다. 설레이는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열차는 벌써 앙증맞게 나무로 지은 작은 꿀뚝 역에 멈춰 선다. 마당에 시베리아 들꽃들로 만들어 놓은 예쁜 꽃밭이 있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참 예쁜 집들이다. 열차는 다시 출발해 터널을 지나더니 꽁무니가 금방이라도 물로 들어갈 것 같은 절벽 위에 또 선다. 앙가쏠까 역이다. 벼랑 끝자락을 아슬 하게 감고 도는 터널에 걸쳐 열차가 위태롭게 서 있다. 나란히 놓인 각기 다른 공법으로 건설된 철교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마을에는 레리흐 겔러리가 들어서 있어 그가 몽골과 티벳을 여행하면서 그린 독특한 그림들 감상도 할 수 있다.

열차는 다시 출발하고 계곡을 지나고 터널을 지나더니 아찔한 절벽 위에 또 멈춰 선다. 끼르끼레역이다. 환바이칼 철도 공사 중 가장 사고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절벽을 쳐다보니 수긍이 갔다. 터널로 흐르는 물줄기를 돌리기 위해 개설된 수로가 허공에 떠 있다. 공사에 적잖은 일본군 포로가 죽어간 곳이라 한다. 터널을 보면서 우리
최고의 난기술과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었던 토목공사였음을 전 구간에서 느낄 수 있다.


선조들인 조선군 포로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비참해지고 숙연해 지는 곳이다. 터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바이칼호와 열차와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열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니, 마리뚜이 역에 다다른다. 한 때 가장 큰 마을로 번성했다던 마을이 지금은 거의 황폐화 되어 있다. 마을 뒷산 숲에는 시베리아에서 유일하게 두더지가 서식하는 곳이라 한다.

배가 고파 올 무렵에 붉은 철교를 지나 빨라빈늬역에 도착했다. 한국말로 중앙역이다. 관광철도의 중앙지역 답게 간이 상점도 있고 작은 식당도 있다. 철길 위쪽에는 제법 큰 마을도 있다. 바이칼에서 오믈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열차도 이곳에선 제법 오래 머문다. 우리 일행을 태운 열차도 이날 90분 정도를 머물렀다. 식사도 하고, 호수에서 수영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수심이 깊지 않고 따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에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 준비했는지 수영복 차림으로 호수를 가득 메웠다. 원주민들의 생활이 궁금한 사람들은 마을로 올라가 살림살이를 구경하였다.

열차는 또 떠난다. 환 바이칼 철도 구간에서 가장 긴 터널을 지난다. 키 작고 소담한 꽃잎의 들꽃이 널 부러져 있는 곳도 지난다. '슈미하 마을' 못 미쳐 옹벽이 특이하게 생긴 터널 앞에서 정차한다. 사람은 내려서 걸어가고 열차는 한참을 쉬었다가 홀로 슈미하역으로 온다. 철길 가에는 들꽃이 너무 많아 밟으면서 터널로 걸어간다. 시원하다가 더 들어가니 추위가 느껴진다. 갈수록 어두워지더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감각에 의존할 뿐이다. 걷는 발자국 소리만이 어찌나 크던지 모든 말소리를 삼킨다. 밝은 입구가 나오고 슈미하 마을에 도착한다. 깊은 계곡 속의 아담한 마을이다. 그리고 간이역이 있다. 열차가 전조등을 켜고 들어온다.

우리는 다시 열차에 몸을 싣고 종작역인 바이칼역으로 간다. 바이칼역에는 지금은 많이 쇠락한 모습이지만, 옛 영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두며 창고 건물 등이 그것이다. 옛 역사는 새로 단장되어 철도박물관이 들어 서 있다. 공사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기계며 도구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에 얼마나 난공사였는가를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었다.여기서 바이칼 관광열차는 마무리 되었다.

바이칼 호수의 빼어난 풍경들과 어우러진 낡은 터널들, 진주 빛의 화사한 바이칼호, 무공해의 풍성한 삼림, 순수하고 광대한 자연 풍경을 보드카와 함께 하는 여행 코스였다.

이제 우리는 연락선을 타고 앙카라강을 건너 리스트비얀카로 가서,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돌아가야 한다.



◆기념비적인 위대한 토목구조물

'환 바이칼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구철도이다. '슬류쟌카역~바이칼역' 사이 89㎞이다.

오늘날과 같이 관광열차가 운행되게 된 것은 1956년이다. 당시 앙카라강에 커다란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일부 구간이 물에 잠겨 폐선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으며 어렵게 건설했던 구간이 결국 쓸모없게 되었던 것이다. 9천288㎞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구간이었다. 푸른 바이칼 호수와 천혜의 암벽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호수에 쳐 박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스릴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열차가 운행되는 구간이다.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관광명소로 변해 있다. 오랜 세월 방치하여 폐선에 가깝게 낡은 탓에 시속 20㎞ 안팎으로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믈 안주에 보드카를 마시며, 계절에 따라 야생화, 자작나무 단풍 숲, 하얀 설경이 아름다운 계곡이 차창에 비치기 때문이다.

1902년부터 '환 바이칼 철도' 구간(바이칼역~쿨뚝~슬류지얀카~탄호이)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구간의 철도건설은 '토목공학의 기념물'이다. 공사 기간이 3년 반 이상 걸리고, 연인원 5만 명 이상 동원된 최대 난공사였다. 평균 수심이 1천m에 가까운 급경사면에 레일을 깐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토목공사였다.

특히 호수의 서쪽 구역(쿨뚝~바이칼)의 공사는 난이도와 비용 면에서 최고의 난제였다. 절토량이 수에즈운하 건설의 양과 같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쪼아내 '잔도'를 만들고 '석굴'을 만들어 철도를 개설해 놓은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39개의 터널, 6개의 교량, 29㎞에 달하는 옹벽구조물,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170㎞에 달한 임시철도 개설 등이 말해 준다.

이러한 난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사기간은 당초보다 1년이나 앞 당겨져 이루어졌다. 이렇게 어려움이 컸던 공사였던 만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며, 가장 우수한 토목구조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인류의 대역사(大役事)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인의 한과 땀이 서린 길

러시아 횡단열차는 당시 러일전쟁 중에 붙잡혀 온 일본군 포로를 이용하여 호되게 작업시킨 결과였다. 여기에는 조선군 포로도 다수가 섞여 있었다. 당시에 건설 현장에 투입된 포로들의 일상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 철도는 러시아 동진정책의 산물인 만큼, 러시아 동단과 맞붙은 우리 한민족과 개통 초기부터 연관이 깊었다. 개통된 후,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이 길을 탔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다. 애환이 서린 길이다.

헤이그 특사로 갔던 이준과 이상설이 이 길을 탔으며, 의병대장 이범윤이 이르쿠츠크로 유배(1911년)될 때도 이 길을 탔다. 독립군들이 움직일 때도, 포로로 끌려 갈 때도 이 길이 이용되었다. 조봉암은 조선공산당 창립(1925년)을 모스크바에 알리려고 이 길에 탑승했고,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1927년 남편 김우영과 이 길을 따라 세계일주에 나서기도 했다. 베를린올림픽 매달리스트 손기정과 남승룡도 1936년 이 길을 거쳤다.

1937년에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20만 명이 이 길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죽음의 행로'로 달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이광수 소설 '유정'의 순애보가 그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춘원은 이곳을 '애뜻한 사랑'이 깃든 곳으로 묘사해서 개화기 우리 민족을 미지의 세계로 그리게 했다. 1933년 발표된 '유정'은 주인공이 세상을 등진 채 시베리아로 향하자, 여주인공이 그를 찾아 나서는 줄거리를 담고 있는데, 열차를 타고 가는 여정과 바이칼 호의 풍경 등을 상세히 묘사해놓았다. 춘원은 22세 때인 19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한민보의 주필로 부임하려고 시베리아와 유럽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려다가 1차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러시아에서 발이 묶여 6개월간 이곳 근처(치타)에 머물렀던 것이 소설집필의 인연이 되었으리라 본다.

이번 기회에 호수 어디엔가 다가 최석과 정임의 '두 별의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워놓고 갈까! 그래서 춘원이 못다 한 이야기 끝을 맺을까! 아시아문화지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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