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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육상실크로드 <7>우리 민족 설화·전설이 깃든'바이칼'
서낭당·장승·솟대에 '온돌'까지 비슷한 '이볼가 마을'
한민족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칼에서 시작됐다는 증거는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서낭당 같은 무속 상징물이 발견되고
강강술래와 씨름이 행해지고
단군신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입력시간 : 2017. 07.28. 00:00


이볼가에 위치한 다찬(티베트불교 사찰)
우리 민족의 시원지, 시베리아 바이칼!

우리 서낭당 같은 무속 공간이 곳곳에 있고, 강강술래와 씨름 같은 민속놀이가 행해지고, 단군신화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한국인과 생김새는 물론 DNA 구조까지 가장 유사한 종족이 살고 있는 땅이다.

최근에는 이를 더욱 확인시켜 주듯, 한국인만이 사용해 온 '온돌' 유적이 확인되었다. 고구려식 온돌(쪽구들)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 울란우데에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또 다른 유적이 있다. 우리 선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예벤키족 문화'를 볼 수 있는 '자바이칼 민속문화박물관'이다. 러시아 최대의 야외 박물관 중 하나다. 이곳에 우리 문화와 너무 유사해 섬짓 놀랠 '에벤키족 문화' 유물이 설치되어 있다. 서낭당, 장승, 솟대, 싸릿문과 담장 등 모든 것이 우리와 같다.



◆최근 발견된 고구려 "쪽구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바이칼 호수, 우리 배달민족의 시원지! 한민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칼에서 시작됐다는 증거는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한국의 서낭당 같은 무속의 상징물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강강술래와 씨름 같은 민속놀이가 행해지고, 단군신화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한국인과 생김새는 물론 DNA 구조까지 가장 유사한 종족이 살고 있는 땅이 그러하다.

최근에는 이를 더욱 확인시켜 주듯, 한국인만이 사용해 온 '온돌' 유적도 확인되었다. 바이칼의 동쪽에 있는 '이볼가'가 그곳이다. 이 유적은 바아칼 동쪽에 있는 큰 도시인 울란우데에서 1시간쯤 거리에 있다. 가는 방법은 울란우데 버스정류장에서 130번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

고구려식 온돌은 최근에 발견되었다. 한반도 고구려와 옥저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똑 같았다.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요즘 말로 '계획도시'인 셈이다.

부경대 강인욱 교수는 "이볼가 유적의 두 개의 온돌 달린 주거지가 연달아 붙어있는 형태를 한반도 노남리(과거 고구려 영토)에서도 볼 수 있으며, "ㄱ자형으로 온돌을 돌리는 구조(일명 쪽구들)도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한국식 동과(銅戈) 유물도 함께 발굴되어 그 신빙성을 더 높였다. 또한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앤드류쉬머넥 교수는 "북방의 선비족 언어분석을 통해 고구려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그렇다.









◆ 고도의 기술 필요한 특허품

온돌은 우리 한민족의 보편적인 난방구조였다. 온돌은 발전시키고, 가장 널리 사용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구당서'에는 고구려에 온돌문화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겨울에는 모두 기다란 구들(長坑)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불을 태워 따뜻한 열기로서 난방을 한다."

당시 'ㄱ'자 형태의 '쪽구들'이 고구려의 대표적인 난방시설 이었다. 쪽구들은 방안의 일부('ㄱ'자 영역)에만 온돌이 놓여 있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방안에는 의자, 좌상 등의 가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와 의자 등에 앉아서 일을 보는 입식생활을 했다.

실내에는 휘장이 쳐 있어 외부의 바람을 막았고, 온돌로 난방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실내에 화로를 들여왔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 이전에는 쪽구들을 사용했지 방바닥 전체에 난방을 하는 온구들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고려시대로 접어들어, 쪽구들이 여러 줄의 고래가 있는 형태로 발전하며, 마침내 방 안 전체를 데우는 온돌방이 탄생했다. 13세기경이 되서야 아궁이가 방 밖으로 나가는 완벽한 형태의 온돌방이 나타났다.

온돌은 방바닥을 고루 덥혀 준다. 때문에 습기가 차지 않고 화재에도 안전하다. 한번 뜨거워진 구들장은 오랫동안 방바닥을 데워준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연기와 재 등이 방에 남지 않게 해줘 청결한 생활이 가능하다. 또한 특별한 가구 없이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실내 공간 활용에도 장점이 있다. 따라서 과거의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졌음에도 온돌만큼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온돌을 가장 이상적인 온방 시스템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온돌이 빠르게 확산되지 못했던 것은 몇 가지 문제 때문이었다. 먼저 방안 전체에 열기가 고루 전달되도록 고래를 놓고 구들장을 만드는 것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볼가 발굴된 고고려의 '쪽구들' 유적






◆ 현재 티베트 불교의 성지

고구려식 온돌 유적 근처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사찰"이 있어 함께 구경하고 오면 더욱 좋다. 티벳불교의 사찰이다. 러시아어로 "이볼긴스키 다찬"이라 부른다.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생각보다 불교사원을 찾기 힘들다. 여행 중에 불공 혹은 법회 참석을 필요로 하는 불교신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비신자라도 가 보면 후회하자 않을 절이다. 볼 것도 많고 있고, 의미 있는 절이다. 이곳 불교신자들의 정신적 수도이다. 적어도 한나절은 잡고 가는 것을 권장한다.

이곳 사원에는 불가사의한 사실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부터 75년 전, 러시아의 불교 박해 시에 사망한 라마승(1927년 죽은 이티겔로프)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절이다. 놀랍게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존되어 있다. 얼굴과 코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피부의 탄력까지 살아 있다고 한다. CT 촬영 결과, 내부 장기도 산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밝혀졌다. 과학적 해부 결과, 어떤 방부제도 사용되지 않았음이 알려졌다. 시신 주변의 토양 성분이나 미생물 등도 조사했지만, 그 어떤 특이한 성분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승려의 시신이 썩지 않는 것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 남긴 유언 때문이라 믿고 있다. 당시 러시아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군인에게 끌려가 수많은 젊은 종교지도자들이 사형을 당한 것을 보면서, "난 오늘 죽을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다시 태어날 것이다. 75년이 지난 후에 내 무덤을 파보면 그 때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새로운 라마교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종교탄압 속에서 라마교의 앞날을 걱정했던 그의 간절한 염원이 75년 동안 시신을 썩지 않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2002녀 시신이 발굴된 후, 부리야트 승려들은 그를 '성자'로 모시기 시작했다. 사찰을 지어 시신을 모셨다. 이 미라를 보기 위해 구름 같은 불자들의 순례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전 세계 불교신자들이 찾는 라마교의 성지가 되었으며, 거대한 사찰로 성장하였다.

현재 이 사원은 인도나 동남아의 여느 사원에 못지않다. 여러 개의 법당과 도서관, 그리고 러시아에 하나 뿐인 불교대학이 있다. 이 대학에는 철학과 티베트 전통 의술을 연구한다.



◆ 우리와 흡사한 예벤키 문화

울란우데 시에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또 다른 유적이 있다. 첫째는 우리 선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예벤키 족의 문화를 볼 수 있는 '자바이칼 민속문화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의 두상'이다.

'자바이칼 민속문화박물관'은 러시아 최대 야외 박물관 중 하나다. 면적이 37헥타르에 이른다. 바이칼 연안을 거쳐 간 여러 원주민족 문화를 재현해 놓았다. 특히, 에벤키족 문화는 꼭 봐야 할 대상이다. 우리 문화와 너무 유사한 것에 섬짓할 만큼 놀랜다. 서낭당, 장승, 솟대, 싸릿문과 담장 등 모든 것이 우리와 같다.

세계에서 가장큰 레닌두상은 울란우데 중심가에 있다. 뒤에는 시청건물이 있고 좌측에는 대통령과 의회 건물 또 레닌두상 우측에는 부리야트공화국 청사다. 의회건물 우측에는 한때 러시아를 쥐고 흔들었던 KGB 건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두상이 울란우데에 세워진 데는 사연이 있다. 레닌두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 제작은 러시아가 아니라 핀란드에서 했다. 원래는 레닌두상을 핀란드에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핀란드 국민들이 원치 않아서 모스크바로 가지고 왔고 모스크바에도 마땅히 세울만한 명분이 없던 차에 이곳 부리야트공화국에서 원하여 모스크바에서 5천600㎞나 떨어진 부리야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로 가져오게 되었다.

아시아문화지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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