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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 <7>'귄'있는 사람, 징하게 귄 있는
"한 순간도 사랑을 기르고 있지 않은 적이 없다"
남도 구석에는 '귄'이 넘친다
살기도 좋고 죽기도 좋고
시를 쓰기에 더없이 좋다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깃들지 않으면
입력시간 : 2017. 07.17. 00:00


◆다시 남도

문화의 시대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성보다는 유동성을 강조한다. 철학자들 중에서도 존재의 발생은 일시적이고 위치는 유동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주도하려 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함께 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우리는 매번 새로운 나를 경험할 수 있다.

'마음 따라서 몸도 간다'는 말이 있다.'정신 따라서 육체도 간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는 고정성을 속성으로 삼는다. 마음과 몸은 우리의 유동적 정체성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의 시대가 전자를 강조했다면 문화의 시대인 지금은 후자에 주목한다.

남도의 귄은 '몸과 마음'의 유현을 표상하는 말이다. 남도의 구석구석에는 '귄'이 흘러넘친다. 남도는 살기에도 좋고, 죽기에도 좋고, 시를 쓰기에는 더없이 좋다. 아무리 좋은 장소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깃들지 않으면 숨결을 지니기 어렵다. 장소를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남도는 남도 사람의 다른 이름이고, 남도 사람의 심성은'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

3년 전에 미국의 한 대학 사진학과 교수가 2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했다. 1987년 2월 23일부터 그 시점까지 무려 27년 동안 매일같이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 9천543장 중 수백 장의 사진을 골라 만든 동영상이었다. 젊은 청년이 주름진 얼굴에 안경을 끼고 동영상 밖으로 걸어 나가는 2분으로 압축된 27년은 신선했고 작은 충격을 주었다.

바덴 교수는 매일 아침 일어나 같은 카메라, 불빛, 앵글 아래에서 셀카를 찍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에브리데이(Every Day)' 라는 제목이 붙은 이 프로젝트를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바덴 교수보다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젊은 남자가 나이 들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몇 분의 동영상으로 지켜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사진기에 남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나 온 길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 시인 고재종은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 개그맨의 상투적인 농담처럼

일찍이 요절하지도 못했을 것이면

산이 저기 있고, 강물이 산을 감아 돌 듯

어떤 굴절에도 나를 맞추고 살 일이던가.

돌아보면 치욕과 수모, 황폐뿐인

연대기를 안고 길에 어슬렁거리다 보면

바람자락에 사운거리는 풀잎 앞에서조차

소모될 줄 모르는 생각의 과잉이려니,

아직 비를 쏟아내지 않은 비구름처럼

무거운 우울로 마구 몰려오는

기름때에 전 머리칼 속의 천근 유목이라니!

어둠에 익숙해져 퇴화된 시력쯤으로

메마른 길의 굴곡과 요철을 더듬거리며

나는 시방 어디에 있는지

나는 시방 누구인지, 더듬거리는데

어쩌면 줄지어선 가로수로 사라지는 소실점의

그 너머쯤이면 나는 과연 나 자신일까?

눈에 막힌 신중에서 막버스를 기다리는 노파가

품을 법한 희망 정도로나 길을 묻는

내게 적용할 수식어는 몇 개나 될까?

칠흑적막을 그어대는 단 몇 초의 선양불로라도

걸어온 길의 이정을 모두 밝힐 수만 있다면

시간은 제 뚜벅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

사랑은 추억의 황홀을 굴리고

나는 쑥국새처럼 늙어가며 내 갈 길을 가리.

- 고재종, '길 위의 연대기', '신생' 2014년 봄호.

세상을 사는 우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연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생각을 행동으로까지 드러내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에 대한 강박을 시인은'어떤 굴절에도 나를 맞추고 살 일이던가.'라고 묻는다.

세상의 굴곡에 맞추어 내가 적당히 휘어지기 위해서는 속이 비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부러질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소모될 줄 모르는 생각의 과잉'이다. '그 너머쯤이면 나는 과연 나 자신일까?'라는 물음은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다. 꽉 채워져서 구부러질 수 없는 길,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 것으로 '길 위의 연대'는 이제 다른 사람과의 연대가 아닌 무수한 '나들' 곧 자신들과의 연대가 되는 것이다.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최고거나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정치적 연대에 능한 사람이다. 반면 그가 자기 자신들과 제대로 된 연대를 이루며 살고 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름답다','멋지다','예쁘다','잘한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은 바로 '귄있네'라는 말일 것입니다.

고재종






◆사랑

사랑은 생명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쭈글쭈글해도 모두 사랑스럽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그 주름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주름이더라도 펼쳐지기 직전의 주름은 터지기 직전의 꽃봉오리가 품고 있는 주름과 닮았다. 그런데 씨까지 다 날려버린 후, 더 펼쳐져야 빈 먼지뿐일 것 같은 늙은 사람의 주름도 나름의 멋이 있다. 거기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우리의 손톱, 발톱이며 머리카락은 자란다. 그리고 그 마음 밭에서는 한 순간이라도 사랑을 기르고 있지 않은 적이 없다. 아직 펼쳐보지 못한 사랑의 가능성, 이것만큼은 얼마든지 세월을 이겨낼 수 있다. 임동확 시인은 사랑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간다고 해도 저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눈동자

분명 처음이었는데도 늘 가까이서

지켜봤을 것 같은 예감에 휩싸여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진화와 창조의 세월 너머

언제 어디선가 해독되기를 기다리며 쏟아지는,

단 한 차례의 확률 같은 빗방울 하나가

홀연 무방비한 품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제 운명을 떠밀고 가는 힘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임동확,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솔, 2013)

인간은 그가 지닌 기억을 입체적으로 체험한다. 가장 평면적인 체험은 시선으로 훑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보다'라고 말한다. 언어의 체험은 '알아듣다, 알아먹다'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몸의 체험이 더해진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채다'라고 말한다.

이 시에는 사랑을 '알아가는' 세 가지 방식들이 차례로 더해진다. 눈동자의 사랑, 예감의 사랑, 그리고 품속으로 뛰어든 사랑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사랑의 이행을 통해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말은 뫼비우스 띠와 같은 공전을 시작한다. 이 말은 자연스럽게 '사랑이 있는 곳은 태초다'라는 말과 이어진다. 무한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다.

임동확






사랑은 감성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해야 겨우 뒷모습이나마 볼 수 있을까. 이성·감성·지성의 균형, 객관, 직관, 주관의 조화 혹은 직관과 주관의 자리바꿈까지도 감행해야 한다. 이것들의 '밀당(상호주관성)'이 열어놓은 장에서 사랑은 펼쳐지고 접힌다.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한겨울의 눈보라 속에서 만난 천둥 번개'처럼 온다. 이렇게 만난 사랑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패잔병'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기마대'처럼 날뛸 수 있게도 한다.

사랑과 생성은 그 자체가 '귄'이다. 그중에서도 생(生)과 멸(滅)을 함께 갖는 삶, 만나면서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기 시작하는 사랑, 그 생성의 힘을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구할 수 있어야 남도사람이다. '제 생동의 젖을 물고' 자신을 구하고 눈앞에선 사람을 자기로 삼을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언제나 '징허게 귄 있는 사랑'이 아닐까. 문학박사·시인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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