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

‘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1>프롤로그-소멸해가는 지역 극장들

입력 2017.07.05. 00:00

‘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

사라져가는 단관극장들…공간의 가치 살리자

한국은 멀티플렉스 왕국…전국 스크린수 94% 점유

영화 ‘옥자’찾아나선 관객들 단관극장 역할 재조명

대기업 자본에 경쟁력 상실한 토종극장들 ‘초토화’

문화다양성 공간 공공재로 인식 체계적인 지원 절실

요즘 단관극장이 인기다.

영화 ‘옥자’ 때문이다.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 진귀한(?) 풍경까지 생겨나고 있다.

도대체 얼마만인가.

멀티플렉스들이 ‘옥자’ 상영을 거부한 탓에 멀티플렉스가 아닌 곳을 일부러 찾아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지난달 29일 ‘옥자’를 개봉한 광주극장의 경우 회당 100여명이 이상이 관람하고 있으며 주말의 경우 관람객이 많게는 회당 400여명에 이르기도 한다. 평균 회당 20여명을 넘기기 힘든 관람객 수와 비교할때 엄청난 수치다.

‘옥자’ 덕분에(?) 단관극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는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이라는 관객들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거대자본(570억)이 투입된 작품때문에 단관극장이 다시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어쨌든 국내 영화관들이 멀티플렉스에 잠식당했고 관객들의 선택권도 좁아진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단관극장들이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는 혹은 색다른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찾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버렸고, 몇 남지 않은 곳들로 어렵사리 운영되고 있다.

현재 광주의 경우 광주극장과, 광주자동차극장에서만 ‘옥자’가 상영중이며, 전남 지역 역시 몇년전부터 군소도시에 다시 들어선 장흥진시네마, 고흥작은영화관, 구례자연드림시네마 등 작은 영화관들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 지역 토종 영화관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멀티플렉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 11개 상영관을 갖추고 문을 연 강변 CGV다. 그리고 20년이 된 지금 국내 영화관의 90% 이상을 CJ, 롯데, 메가박스 등 3곳의 멀티플렉스가 차지하고 있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2016 전국 극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국내 영화관은 417개로 이 중 멀티플렉스가 80.3%인 335개로 나타났다. 스크린수의 경우 전체 2천575개 중 멀티플렉스가 2천428개인 94.2%로 나타났다.

멀티플렉스에 잠식당하기 직전이다.

이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부 지역 자본의 영화관들이 멀티플렉스로 시설투자를 하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기업 계열 영화관이 아니면 멀티플렉스조차도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으며 초토화됐다.

지난 2006년 CGV와 메가박스가 차례로 상륙한 광주는 그 이듬해인 2007년 13개(스크린 60개)의 영화관 중 광주, 무등, 제일, 콜롬버스, 엔터, 밀리오레 등 6개 지역 영화관이 25개의 스크린을 내걸고 경쟁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950년대 세워진 계림극장과 ‘1957년부터 극장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던 태평극장이 지난 2008년 철거됐고, 1960년대에 세워진 현대극장도 2003년 문을 닫았다. 1968년 문을 연 아세아극장은 2001년 9월을 끝으로 더 이상 영화 상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아카데미 극장은 1982년 개관 후 1990년대 초 2관까지 열며 광주 최초 복합상영관으로 나섰지만 2003년 폐업했다.

1960년 개관한 제일시네마는 CGV를 거쳐 현재는 롯데시네마로 운영중이며, 콜롬버스시네마도 메가박스로 바뀌었다. 무등극장의 경우 대기업 멀티플렉스를 거부하고 지역극장으로서 독자적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2012년 안타깝게 문을 닫으며 현재 지역에서는 광주극장만이 유일한 향토극장으로 남았다.

전남은 한동안 아예 지역 영화관이 사라졌다가 지난 2015년 정남진시네마를 시작으로 고흥작은영화관, 구례자연드림시네마가 차례로 개관하며 다시 지역 주민들의 영화향유권을 회복시키고 있다.

# 왜곡된 경쟁구도에 짓밟히다

처음 멀티플렉스는 한 곳에서 다양한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관객들의 선택권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문화향유권’을 신장시킨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선택권을 주도하는 쪽이 관객이 아닌 멀티플렉스로 변질돼갔다.

이제 관객들은 그들이 내건 영화들에 의존해야 한다. 어딜가나 멀티플렉스의 입맛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관객들은 영화 보다는 상영관을 먼저 고르고 때로는 특정 영화의 스크린수 점유율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멀티플렉스의 시스템에 휘둘려 제대로 선택권을 누리지 못한 채 그들이 내미는 주력 영화를 관람하기 일쑤다.

쾌적한 시설을 갖춘 상영관의 여건 보다 작품에 대한 관람 욕구를 자극시키며 멀티플렉스가 아닌 영화관을 찾아야하는 ‘옥자’ 사태가 지금 국내 그리고 지역 영화관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 셈이다.

멀티플렉스가 아니고서는 경쟁구도에 아예 끼어들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다양성도 잃어버린지 오래다.

독립영화전용관이나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겨난 것도 멀티플렉스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관객들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영화들이 최소한 스크린에 걸릴 수 있도록 해야하는 이유에서다.

한동안 독립영화전용관이나 예술영화전용관들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상업성이 덜 하다는 이유로 멀티플렉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일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멀티플렉스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신들에 향한 비판을 해소시킨다는 미명 아래 ‘예술영화전용관’을 만들며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단관극장이나 지역 영화관들의 영역까지 넘겨보기 시작했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관의 경우 동네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일부 업종의 ‘거리제한’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멀티플렉스는 특별한 규제없이 대도시는 물론 작은 군소도시까지 영토확장을 더해가고 있다.

멀티플렉스와 차별화되는 상영작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고 명맥을 유지해 온 지역 영화관들의 마지막 영역마저 삼켜버리는 행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지역 사회는 단관극장들의 가치를 인식해 자취를 감추고 있는 단관극장들을 보존하고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와 지역 사회도 더 이상 영리를 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지역의 단관극장들을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에 앞서 우리 관객들 스스로도 선택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 영화관을 살리는 힘의 바탕에는 시민들의 정서가 가장 두텁게 깔려있어야하기 때문이다.

# 지역 향토극장 가치를 돌아볼때

올해로 개관 83년을 맞은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본으로 건립된 문화공간이다.

지역의 크고 작은 영화관들이 대기업 자본의 멀티플렉스 공세에 밀려 모두 사라진 지금 전국적으로도 몇 안되게 남아있는 지역 자본의 극장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령 극장이자, 지역의 유일한 단관극장이자, 최대 규모의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에 필름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광주극장은 지역을 넘어 한국 영화사에서도 큰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하지만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보유한 멀티플렉스들과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지는 오래다. 수익은 바랄 수도 없고 시설도 노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로 운영되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지자체나 정부기관의 지원 대상에서 늘 제외됐다.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멀티플렉스가 이 분야마저 침범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 가치가 높은 도심 노른자위 땅이지만 이를 매각하지 않고 첫 설립자들의 유지대로 극장을 지키고 있는 광주극장은 늘 뿌듯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몇년새 부쩍 위태로운 모습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에 적자를 감내하며 극장을 지키기에 상황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단관극장이라 매일 쉬지 않고 영화를 상영해도 수익을 낼 수 없을뿐더러 그나마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도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에 불참하며 단절됐기 때문이다.

이번 ‘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 시리즈를 통해 광주극장이 품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조명하고 이곳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들도 살펴본다.

또 광주극장을 출발점으로 지역 영상문화에 대한 중앙부처나 지자체의 편협된 시각,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독과점, 예산 부족 등으로 설자리를 잃어가는 지역 영화관들이 처한 상황도 함께 살펴본다.

시민들의 문화다양성과 향유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멀티플렉스의 물결 속에 힘없이 스러져간 국내 단관극장들과는 달리 거대한 흐름에 맞선 해외 단관극장들의 사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다.

국내 지역 영화관이 처한 현실과 해외 선진 사례들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지자체의 지역 영화관을 위한 정책과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지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켜 광주극장을 비롯한 지역 영화관이 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본다. 이윤주기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