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진의 문학은 사랑이다

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6남도의 강과밭-심성지리 '귄'

입력 2017.07.03. 00:00
공간을 바탕으로 삼아 시간과 사람이 어울린 대표적인 장소가 ‘강’이다. 남도의 강은 시원(始原)을 강조하는 강이 아니다. 역사와 생활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추억과 현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흐르고 있는 구체적인 삶이다. 사진은 장흥의 탐진강.

남도에서 재주를 뽐내는 사람들은 그 기량에 따라서 몇 가지 평가를 받게 된다. 남도 말로 ‘엔간히’ 해서는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다른 지방에서는 이름자를 날리던 사람도 남도에 와서는 ‘쫌 허네’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으면 ‘저놈 보소’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 그제야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이렇게 말한다. ‘솔찬허시’. 그리고 마침내 마음조차 흔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이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가 바로 ‘귄있네’이다.

‘귄’은 아름다움을 일컫는 세계적인 미학 용어로 한 번 내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지춘상 교수는 귄을 유현(幽顯)의 미(美)라고 일컬은 바 있다. 가뭇한 것(玄)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주의 가뭇함(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마음의 가뭇함이다.

우주의 가뭇함을 현(玄)이라고 하고 사람의 마음을 유(幽)라고 일컫는다. 두 가뭇한(그윽한) 것 사이에 인간의 몸이 있고, 마음도 있다. 말로 다할 수 없고, 이루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노래를 만나면 최선의 노래를, 시를 만나면 최선의 시를, 사랑을 만나면 최선의 사랑을 그윽하게 그려낸다. 어림짐작으로 그려본 마음의 일렁임이 이렇게 눈앞에 드러나고(에피파니, 顯) 있는 상태, 이것을 ‘귄’이라고 이른다.#그림1오른쪽#

문화의 장소

남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닮고 싶은 것을 하나씩 담고서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무등산, 월출산이 자리하고 또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이 흐르고 있다. 남도 사람들은 남도의 강산을 빼닮는다. 여기에서 심성지리라는 말은 출발한다.

우주를 이루는 삼재(三才)는 공간, 시간, 인간이다. 우주라는 말 자체가 시간 집 우(宇)에 공간 집 주(宙)이니 시간공간을 분리해서 쓰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인간이 끼어든 셈이다.

인문학은 이 셋을 각자 읽고 또 함께 쓰는 언어를 지향해 왔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문(人文)의 균형과 조화는 근대에 들어와 급격하게 깨지고 허물어져 왔다. 지금은 문화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특정한 분야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것들을 구성, 재배치해서 특별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것들을 모아 섞을 수 있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이 공간이다.

탐진강

공간을 바탕으로 삼아 시간과 사람이 어울린 대표적인 장소가 ‘강’이다. 남도의 강은 시원(始原)을 강조하는 강이 아니다. 역사와 생활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추억과 현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흐르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강이다. 장흥의 시인 위선환은 탐진강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그림2왼쪽#

깊어진 것이 무엇인가

헤아려보아야 고작

속내거나 골이거나 주름살이거나

아니면 그리 아픈 그리움일 것인데

장흥읍에 가서 보았다

깊어진 사람이면 똑같이

들여다보며 사는 것

사람들은 하나씩

강을 기르고 있었다

- 위선환, 「탐진강 13」, '탐진강' 문예중앙, 2013.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두 뼘도 되지 않는 몸 의 깊이 어딘가에 있을 마음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속내, 골, 주름살, 아픈 그리움 또 기쁨이나 슬픔이 얼키설키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남도의 강은 사람을 품고, 마을을 돌아 흐른다. 고작 50km 남짓 흘러 바다에 닿는 탐진강은 장흥읍 사람들을 품어주며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강이다. 스스로 깊어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탐진강에 풀어놓는다. 탐진강은 삶이 흐르는 강이 된다. 사람은 강을 기르고, 강은 사람을 기른다. 시간의 강물이 아니라 삶의 강물이 넘치는, 삶의 이야기로 넘실대는 강이 바로 탐진강이다.

지극한 곳이었으면 했다. 찬 별과 마른풀과 풀벌레소리를 쓸어내고 찬 별도 마른 별도 풀벌레 소리도 없는 적막을 마저 쓸어낸 다음에는 잘못 밟았던 돌부리와 돌부리가 묻혔던 자국을 파내어서 판판하게 골라두고 싶었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한 때에, 그리움보다 긴 시간을 누워서 기다린 때에, 먼저 간 사람의 별은 문득 가까워지며 문득 찬란하고, 베고 누운 땅 아래로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 지나가는 소리 아래로는 강물소리가 흘러가는……

- 위선환, 「탐진강 59」, '탐진강' 문예중앙, 2013.

물이 아니라 이야기(문화)로 흐르는 강물은 눈으로 보기보다 귀를 열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시인이 찬 별, 마련 별, 풀벌레 소리도 사라진 적막까지도 지우고 ‘편편하게 골라두고 싶은’ 것은 탐진의 바닥이자, 그 강을 길러낸 우리의 마음 바닥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길러낸 강을 보며 그 흐름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스스로가 길러낸 강물을 베고, 강물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들의 생은 너나할 것 없이 너른 바다에 닿을 것이 분명하다.#그림3오른쪽#

탐진강은 특별히 규모가 큰 강도 아니고, 풍광이 빼어난 강도 아니다. 생태적으로 가치가 여느 강보다 특별한 것도 없다. 아름답다거나 멋지다는 말이 어울리는 강도 아니다. 그러나 위선환의 시를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는 것, 탐진강은 ‘귄’ 있는 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빼어나게 잘난 것은 없지만 찬찬히 보면 모두가 저마다 귄 하나쯤 가진 남도 사람들처럼 말이다.

언어의 품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언어는 예술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규모가 크다. 모든 언어는 예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을 경험한 언어는 그리 많지 않다. 예술에 대한 극도로 충만한 경험을 지닌 언어라고 하더라도 화려하게 피었다 진 꽃잎 금세 시든다. 이 언어들은 다시 언어의 텃밭에 거름으로 뿌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서 품은 흔적이 돋아나 꽃이 될 지 독초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로 다시 피어나고자 한다면 끝끝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깊게 영그는 가을에는 모든 것들을 열매로 밀어 올리면서 쓰러질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남도의 밭

김준태 시인은 ‘밭’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경칩 날, 詩 한 편 써서 밭고랑에 뿌려 주었더니

저것 봐라,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토종 개구리들!

- 김준태, 「봄날 詩作」, '밭시' 문학들, 2014.

경칩날에 꼭 맞춰 땅 위로 나오는 개구리는 많지 않다. 개구리를 깨워 땅 위로 이끄는 것은 봄이나 따사로운 기운이 아니라 음력 이월에 뜨는 달이라는 말도 있다. 정월의 달이 사위였다 이월의 달로 차오르면 그 달에 이끌려 개구리들은 땅위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밭에 뿌려진 시는 개구리들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장 강렬한 달빛과도 같다. 개구리들은 저마다 품고 있는 경칩을 지우고 시에 이끌려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것이다. 시인이 뿌린 시는 개구리들에게, 혹은 땅에 잠들어 있는 시의 씨앗에게 특별한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밭시' 연작 중 「햇빛 눈부시던 날」이 있다.

밭에 갔더니 밭이 내게 손 내밀어 호미를 쥐어 준다.

밭에 갔더니 밭이 고향의 아버지처럼 삽과 괭이를 쥐어 준다.

밭에 갔더니 밭이 내게 쟁기를 불쑥 들어 올려 쥐어 주면서

여보게, 김준태 시인, 하늘과 땅 사이 이렇게 햇빛도 좋으니

밭을 시원시원하게 갈아엎어 원 없이 씨앗들을 뿌리라 한다

그 씨앗들이 자라 지평선을 아득히 이루는 것을 즐기라 한다.

- 「햇빛 눈부시던 날」, '밭시' 문학들, 2014

밭에서라면 나는 세상에서처럼 나서지 않아도, 나대지 않아도 된다. 그냥 밭이 일러주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밭에서는 수동적일수록 자연스러운 사람이 된다. 몸을 내 맡겨야 밭이라는 시공의 흐름 속에 온전히 젖어들 수 있다.

‘원없이 씨앗들을 뿌리’고 그 속에 나도 함께 뿌려질 때, ‘그 씨앗들이 자라 지평선을 아득히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혼자 ’나대서‘는 안 된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

귄‘은 혼자 나서는 사람보다는 떠밀려 나선 사람에게서 곧잘 보이고 들린다. 시인의 말처럼 오늘은 남도의 풍경과 어울려 마음마다 지평선을 아득히 이루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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