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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4.월시학-오월의 서정, 오월의 서사, 오월의 극
입력 : 2017년 06월 05일(월) 00:00


'불가능한 광주의 열흘' 표현 못해 장르마저 벗어난 5·18 문학

신문은 2개월 후 폐간 당한다

김준태는 신안다리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무등산을 보았다

그 순간, 12연의 장시가

곧장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광주’를 에둘러 있는 말 중

대표적인 것이 ‘무등산’이다

시 4연은 무등산이 주인공이다



'봄날'은

재현된 광주민중항쟁의

압도적 사실성으로 인해

마치 소설의 허구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소설임을 망각한 소설이 된다

이 망각은 소설가가 아닌

독자의 것이라는 데 특이점이 있다



서사적 목소리가 주는 효과가

연극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금희의 목소리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연극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오월의 서정

연인을 넘는 공동체

공동체는 최소 둘은 있어야 형성된다. 내면을 공유하는 공동체도 가능하다. ‘연인의 공동체’를 통해 드물게 체험할 수 있다고 철학자 블랑쇼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연인 공동체의 내적 체험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 어떤 공동체도 다 이룰 수 있었을 이들의 공동체가 80년 5월, 열흘의 공동체이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넘은 가능성의 불가능성, 이 거대한 내적 체험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어떤 언어’가 있을 것인가.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1연



‘신내림’ 하듯 써 내린 시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 1면에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실린다. '전남매일신문'은 2개월 후 폐간을 당한다. 김준태 시인은 신안다리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무등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12연의 장시가 곧장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광주’를 에둘러 있는 말 중 대표적인 것이 ‘무등산’이다. 무등산은 고양된 광주의 정신을 표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의 4연은 무등산이 주인공이다.



해와 달리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4연



‘무등(無等)’이라는 말에는 양가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등급이 없다’라는 의미로 평등의 다른 말이다. 다른 하나는 ‘그 급을 견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불교의 ‘無等等’이라는 말을 ‘무등’의 다른 말로 본다. 1980년대 이후 씌어진 민중시에 등장할 때 무등산은 어김없이 ‘무등급의 산’이었다.



오월의 서사

압도적 사실성

임철우의 '봄날'은 그 파장과 주목에 비해 비평적 언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압도적인 사실성으로 구축된 견고한 텍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독자가 끼어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거의 없다.

항쟁 당시에도 광주를 성지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광주항쟁의 신성성에 작가의 진정성이 더해지면서 텍스트는 더욱 강건해진다. 강단이 없는 독자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성이 주는 중압감과 작가의 진정성에 주눅이 들리고 만다. '봄날'은 경전과 같이 완결된 의미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여지를 두지 못하는 독자

소설이 다 이야기해 버리면, 그 소설로 할 이야기가 없어져 버린다. 그런면에서 '봄날'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좋은 재료가 아니다. '봄날'은 재현된 광주민중항쟁의 압도적 사실성으로 인해 마치 소설의 허구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소설임을 망각한 소설이 된다. 이 망각은 소설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는 데 오월의 서사시학의 특이점이 있다.

상상력의 개진을 허락지 않는 소설은 서사적 관성을 벗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소설 텍스트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허구를 지우는 아이러니 속에서도 장르적 긴장, 언어적 아이러니가 작품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소설에는 사실적 장면과 상상의 장면이 겹쳐 있다. 이 겹친 그림을 통해 내면을 형성한다. 그것은 인물 속이 아니라 바깥으로 드러난다. 길게는 아니고 눈앞에 ‘불현듯’ 순간적으로 현현한다. 이것은 서사적 긴장이 아니라 일종의 시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길게 쓰인 서사 텍스트지만, 결정적인 의미를 분출하는 것은 시적 긴장이다.



언어의 깃발

임철우는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대에 ‘광주’라는 금지된 상징의 성채에 숨어들어 끝내 언어의 깃발을 높이 펄럭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봄날'에서 임철우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광주 항쟁의 총체성을 재현해 내는 일이었다. 인물간의 갈등이 빚어내는 드라마는 부차적인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소설이라는 장르는 작가 임철우가 독재 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위장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변화되고 있는 서사물을 기존의 서사 시학으로만 조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임철우의 '봄날'은 역사를 넘어서는 서사적 쓰기라는 새로운 서사시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월 극

오월문학의 정점 ‘금희의 오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효선은 자신을 처벌하듯, 80년 오월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생을 불태웠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연극이나 희곡이 아니다. 문학적인 성취도 강렬한 주제의식의 전달도 아니다. 그에게는 희곡을 쓰고 연극을 연출하는 것이 오월의 부활을 위해, 지속적으로 죽어가는 일이었다.

그가 쓰고 연출한 '금희의 오월'은 오월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대지평으로 보면 희곡답지 않은 부분이 많다. 기존의 극 미학의 관점을 시금석으로 가진 사람이라면 어설픈 희곡이라는 평가를 내릴 여지가 충분하다. 주제를 전달하는 데만 집착해서 희곡으로서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질 만하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연극을 넘어서는 연극으로 보인다.



인간의 내적 갈등과 ‘극’의 효과

전통극은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언어와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독자, 관객은 여러 명의 인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여러 갈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금희의 오월'은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건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라고 해도 거의 내적 갈등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서사의 갈등과는 다르다. 서사는 사건으로 연결된 인간과 인간의 평면적인 갈등을 주로 담는다. '금희의 오월'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내적으로 갈등하는 극적인 인물들이다.



두 명의 금희

인물들이 어떤 사건에 내리는 평가는 언제나 양가적이다. 모두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알지만, 우리 아들만은 숨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죽어야 할 것을 알지만 내 주변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기를 반납하고 빨리 조용해졌으면 좋겠지만, 끝까지 싸워서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밝혔으면 좋겠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들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팽팽한 갈등 속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인물로는 극을 이끌어 갈 수 없다. 나레이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가 ‘금희’다. 그러나 금희의 목소리는 해설자와는 다르다. 금희는 행위의 주체로서 극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80년 오월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서술하는 서사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또 한 명의 ‘금희’가 있다. 당시 전남여상 3학년이었던 ‘박금희’다. 광주 오월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부상자를 위해 전남대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재차 하러가서 나오다 계엄군의 총탄을 맞아 쓰러진 ‘오월의 꽃’이다.



문화의 시대에 울리는 금희의 목소리

'금희의 오월'의 주인공은 시민군으로 참여한 금희의 오빠와 부모님이다. 그런데 연극의 효과는 금희 목소리의 토운, 음색, 어조 등이 좌우한다. 금희의 목소리가 좀 더 평화스러우면 독자들 역시 사건과 거리를 둘 것이며, 금희의 목소리가 분노로 끓어 넘치면 관객들 역시 금희의 목소리를 따라 자리를 고쳐 앉게 된다.

서사적 목소리가 주는 효과가 연극의 효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금희의 목소리에서 산 자의 목소리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연극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문화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개별 장르의 정체성이 아니라 작품의 특별한 효과이다. 기존 장르를 넘어서 문화적 효과를 발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입장이라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금희의 오월'은 삶과 죽음의 목소리를 함께 담고 있는 특별한 연극이다. 이 연극이 역사와 문화적 변화 속에서 어떻게 변주하고 완성되어갈지 지켜보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겠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