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채 박사의 신 육상 실크로드

문병채 박사의 신 육상실크로드 (3) 우리 민족의 시원지 “바이칼” 에벤키족 샤먼에 남아 있는 한민족의 '원형 문화'

입력 2017.06.02. 00:00

에벤키족이 한민족의 먼 선조이기에

쿠리칸족은 우리의 먼 먼 선조다

한편 '쿠리→구니→구려'로 바뀌었다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리고 구려는 높다라는 뜻을 더해

고(高)구려로 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우리의 먼 선조인 것이다

쿠리칸족들은 최초의 농부였다

그들의 밀과 호밀 등을 심고

관개시설도 설치했다

그러나 주업은 목축이었다

거울 같은 바이칼에 하늘이 비춘다

양털 같은 구름이 하늘을 떠다닌다

백조들이 구름보다 더 빨리 날아간다

그러나 이곳은 바뀌고 있었다

백인들이 타이가 숲에 나타난 후부터다

그들은 감춰진 보물(석유와 가스)을 찾아

타이가를 파헤쳐 놓았다

울창한 산림을 한 순간에 넘어뜨렸다

부족원은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문명화되어 있었다

▶ 옛날 온난했던 기후환경

최근 바이칼 연안에서 활발한 유적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뿌리가 깊은 역사지역임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 역사는 흥미로웠다.

1871년 이곳이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일이 일어났다. 3만년 이상 된 주거유적이 발굴된 것이었다. 맘모스 뼈 장신구의 기술수준은 경탄하게 했다. 자수로 만든 가죽 옷을 입은 매우 독특한 여성상도 있었다.

그러나 1만년 후, 이곳 시베리아 기후환경은 급격히 바뀐다. 이제까지의 온난기후는 오늘날 같은 한랭기후로 바뀌었다. 지구가 마지막 빙하기인 '제4차 빙하기'에 접어든 것이다. 갑작스런 추위는 이곳 주민의 생활환경을 송두리째 바꿔 놓게 된다.

주된 사냥감인 맘모스(매머드)가 멸종해 갔다. 일부 종족은 맘모스를 쫒아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해 갔다. 오늘날 인디언이 이들이다. 맘모스 멸종은 식량 뿐만 아니라, 장식(공예) 재료인 ‘맘모스의 어금니’도 잃게 된다. 그 결과, 뼈에 홈을 새기는 기술도 사라져버렸다.

▶우리와 닮은 고대문화의 진주

바이칼호 곳곳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발굴되었다. 암각화는 그들 중의 하나이다. 레나강 상류의 쉬스키노 마을의 '암각화'는 아주 대표적이다. 기원전 1만년 시기에 조각된 것이었다. 과학계와 역사학계가 다 같이 놀랐다. 고대문화의 진주였다. 고대 벽화 중 이것만큼 가치 있는 것을 찾기 어렵다. 칼자국 기법을 사용했다. 석회암 표면의 검은 층을 벗겨내고 하얀 층을 드러나게 해서 그렸다. 칼자국이 색채와 양각(陽刻)에 의해 드러나게 했다.

“하늘에 기도하기 위해 손을 든 샤먼과, 손에 도끼를 들고 싸우는 군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붉은 황토로 새겨진 17개의 손을 가지고 머리에 뿔이 달고 마름모형 몸통을 한 샤만의 독특한 형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 다른 암각화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가족과, 거위와 백조들의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 등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자연적 마모와 침략전쟁 등에 의한 인위적 훼손이 심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폭발물의 흔적인 원통 홈(침몰구멍)이 보이고, 폭파된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큰 벽화 일부분이 폭파로 날아간 곳도 보인다. 20세기 초 이곳에 진출한 기독교(동방정교)인들이 샤머니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암각화 위에 두 개의 커다란 십자가를 새겨 놓은 것은 훼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암각화 위에는 동굴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동굴 속에 황금이 묻혀 있다고 한다. “옛날 중국인들이 낙타에 ‘금’을 싣고 가다가, 바이칼 호를 건널 수 없어서, 바위 맨 꼭대기에 있는 동굴에 묻어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 나섰지만 아직 발견한 사람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 주민들이 이 신성한 동굴이 더렵혀지지 않도록 동굴을 무너뜨려 덮어버렸다”고도 전하고, 다른 설로는 “지질변화(지각운동)의 영향을 받아 사라져버렸다”고도 말한다.

▶ 한민족의 선조 '쿠리칸족'

청동기 시대(BC 4~1천년)에 이르러 민족 집단과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최초로 민족집단을 형성한 종족은 쿠리칸족(Kurikans)이다. 이들은 투르크계의 야쿠트족이다.

이들 유목민 집단은 3세기 말에는 드디어 부족연맹체로 발전했다. 시베리아 최초 국가라 할 수 있는 '구니(Gunni) 유목민 부족연맹체'가 바로 이들이다. 즉, 쿠리칸족(Kurikans) 고대문화가 출현했다. 쿠리칸족은 바이칼을 ‘큰 바다(풍요로운 물)’라는 뜻으로 “바이갈(Baigal)”이라고 불렀다. 몽골어로 바이갈달라이(큰 바다)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쿠리칸족은 5~10세기에 가장 흥성했다. 바이칼을 중심으로 넓은 시베리아에 걸쳐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이들은 부리야트족과 야쿠트족(에벤키족, 토피족 등)의 먼 선조다. 에벤키족이 우리 한민족의 먼 선조이기 때문에 쿠리칸족은 우리의 먼 먼 선조인 것이다. 한편으론 '쿠리→구니→구려'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리고 구려는 높다라는 뜻을 더해 고(高)구려로 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쿠리칸 족은 우리의 먼 선조인 것이다.

쿠리칸족들은 최초의 농부였다. 그들의 밀과 호밀 등을 심고, 관개시설도 설치했다. 그러나 주업은 목축이었다. 또한 이들은 야금술과 단조기술을 알고 있었다. 금속가공 수준이 매우 높았다. 쿠리칸 족들은 ‘문자’도 있었다. 암각화 속에 루닉(runic) 글자를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 많은 나라들이 쿠리칸족에 대해 알고 있었다. 투루크 옛 이름인 “쿠리칸”은 중국 사서에 위그르 북쪽에 사는 ‘굴리간’ 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언급했다.

▶ 한민족의 먼 선조 '에벤키족'

우리 민족의 선조인 쿠리칸족의 선조는 에벤키족이다. 그래서 아직도 에벤키족 문화에는 우리 한민족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샤먼 문화에서 그렇다.

그들 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은 흥미 있고 의미로울 것 같아, 에벤키 부족 중의 하나의 날야기리 씨족 마을을 찾아 갔다. 타이가 숲 속으로 길이 나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 속을 사슴 무리가 지나갔다. 유목민들이 오랜 세월동안 지나 다닌 길 같이 보였다. 이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로 이어졌다. 강둑에 유목민 움막이 있고, 모닥불이 있고, 사슴들이 있다. 움막은 나무껍질과 잔디로 덮여 나무 가지로 만든 거처(chumi-golomo)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솥(chuman)에서 꺼낸 뜨거운 사슴고기와 함께 메니(meni; 사슴 젖에 담가서 으깬 카우베리)와 함께 정성스럽게 접시를 가져온다. 부드러운 맛이다. 가장 인 듯한 아저씨가 서 사냥을 한다. 아저씨는 물개처럼 거죽을 뒤집어쓰고 몰래 살금살금 다닌다. 보통 물고기를 잡지만, 운이 좋을 때는 물개(nerpa)도 잡힌다. 물개는 토바사(torbase; 높은 털 장화)를 만들어 줄 가죽을 얻을 수 있다.

마을 뒤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양떼가 천천히 언덕진 스텝을 흐르듯 이동하고 있다. 양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나이든 노인이 보인다. 노인은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양떼를 개울가로 몰아간다. #그림1오른쪽#

튼튼한 낙엽송이 밀집된 산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이 개울물이 늪지대로 흘러가는 곳 약간 아래쪽으로 양떼를 위한 물웅덩이가 마련되어 있다. 노인은 양떼를 몰아 물을 먹인다. 정오의 태양이 노인을 지치게 한다.

거울 같은 바이칼 호수에 하늘이 비춘다. 하얀 양털 같은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떠다닌다. 백조 무리가 호수 위를 구름보다 더 빨리 날아간다.

그러나 이곳은 바뀌고 있었다. 백인들이 타이가 숲에 나타난 후부터란다. 그들은 감추어진 보물(석유와 가스)을 찾아 타이가를 파헤쳐 놓았다. 기계톱을 이용해 울창한 산림을 한 순간에 넘어뜨렸다.

날야기리 부족 같은 수많은 퉁그스족들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타이가 지대를 찾아 떠나고, 일부는 현대문명의 유혹을 받아 인근 도시로 떠나고 있었다. 부족원은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문화는 이미 문명화되어 있었다.

다만, 한 노파인 여자 샤만의 춤추는 모습만이 영혼을 얼어붙게 했다. 구성진 노랫소리, 리듬 있는 탬버린 소리, 헝클어진 머리, 모닥불 앞에서의 으스스한 춤은 영혼 깊숙이 파고들었다.

예벤키족

오늘날 바이칼에는 여러 종족들이 살고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브리야트족(몽골계), 우리 민족과 강한 연관을 갖고 있는 에벤키족(퉁구스계), 시베리아를 총칼로 정복한 코사크족(슬라브계), 동유럽에서 이주 혹은 유배되어 온 러시아인(슬라브계) 등 현재 130여 종족이 호수 주변에 살고 있다.

그 중, 에벤키족(Evenki)은 우리 한민족의 선조로 생각되는 종족이다. 러시아어로는 에벤키, 중국에로는 어웡키, 야쿠트어로는 타타르 족이라 부른다. 퉁구스(Tungus)계로 분류되는 종족이다. 칭기즈칸 시대에 몽골족은 예벤키의 한 분파족인 솔론족을 '솔롱고스'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현재 몽골에서 한국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 되었다.

본래 바이칼에서 발원한 민족이다. 인종적으로는 몽골인종으로 황백색 피부, 흑색 직모가 특징이다. 가옥은 나무를 원뿔 모양으로 세우고, 그 위에 자작나무 껍질 혹은 모피를 둘러친 형태이다.

에벤키족은 부리야트족 다음으로 숫자가 많다. 에벤키족은 씨족별로 집단을 이루며 유목과 사냥으로 삶을 영위해 간다. 사냥에는 석궁을 사용한다. 그들은 주로 앙가라와 레나 강변 등지에 산다. 원래 공동생활을 해왔다. 사냥터가 부족이 아닌 가족 단위로 배분되었다. 재산 세습과 부족 모임 등에 있어서는 샤만이 주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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