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진의 문학은 사랑이다

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3.오월 문학, 오월의 시학-새로운 공동체의 현상학

입력 2017.05.22. 00:00
공권력 없는 100만명의 열흘 그리고 새로운 '오월의 언어'
오월 공동체의 유일성은
그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공권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10일 동안
질서를 유지한 경우는
그 때까지도 그 이후로도 없었다
미래학자들은 이 점에 찬사를 보낸다
고도의 문화 속에서 ‘국가 권력’ 없이
공동
촛불의 현상학, 우리의 미래를 여는 촛불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 대통령의 5·18 기념사 중에서

문화로서의 ‘오월’, 공동체 ‘오월’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앞세워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사실 유형 문화유산으로 하면 경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형 무화유산으로 하면 단연 전주를 드는 이가 많다. 이들 두 도시가 표방하는 문화중심도시의 ‘문화’는 ‘과거의 유산’이다. 광주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문화중심도시 주창하며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 세계에서도 유일한 것이 ‘80년 오월 열흘의 공동체’다.

오월 공동체의 유일성은 그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100만이 사는 대도시에서 공권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10일 동안 질서를 유지한 경우는 그때까지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없었다. 미래학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찬사를 보낸다. 인류가 최고치의 윤리적 성장을 이룰 때, 고도의 문화 속에서 ‘국가 권력’이 없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80년 광주 열흘의 공동체에서 본 것이다.

오월문학이라는 말을 쓴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하나의 언어 공동체에는 하나의 문학 명칭을 쓰기 마련이다. ‘한국어’로 이루어진 우리 문학은 당연히 ‘한국문학’이라고 부른다. 오월문학이라는 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와는 다른 결의 언어 즉 ‘오월의 언어’가 전제되어야 한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공동체

80년 5월 광주에서 열흘 동안의 펼쳐진 공동체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공동체였다. 같은 맥락에서 ‘오월의 사회과학’을 주창한 최정운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5·18이 우리 근대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갖는 의미의 핵심은 이 절대 공동체의 체험일 것이다. 그곳에는 사유재산도 없었고, 목숨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고 시간 또한 흐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중생의 모든 분별심이 사라지고 개인들은 융합되어 하나로 존재했고 공포와 환희가 하나로 얼크러졌다. 그곳은 말세의 환란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새로 태어나는 태초의 혼미였다. 그런 곳은 실제로 이 땅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2005.

‘오월의 공동체’에서 열흘 동안을 보냈던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 받았던 언어가 바로 ‘오월의 언어’다.

모두에게 생전 처음인 낯선 공동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공동체가 열린 것이다. 그 열흘 동안 그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죽음을 공유하는 시민군으로 태어났다.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라고, 공동체에서 일생을 살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열흘 동안의 생은 꼭 죽은 자들의 것만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도 이 열흘 동안의 삶을 ‘다른 생’인 것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사회연구소는 시민군의 이런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그림1중앙#

많은 경우 시민들은 언제부터인가 각목을 들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사연, 1990a, 2015: 390쪽

또 이런 증언도 있다.

20일부터 많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중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고 무슨 일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는 참가자 중 수 없이 많으나 증언에 간혹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예를 들어 현사연 1990a: 2036: 486; 3109: 785등)

오월의 시학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만큼 오월과 관련된 문학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야 한다. 기존의 미학으로 보면 오월과 관련된 문학,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언어가 다른 만큼 그 언어를 다루는 관점도 달라야 한다. 오월의 언어학, 오월의 수사학, 오월의 시학이 가능해야 우리는 ‘오월 공동체’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보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시학’을 시를 다루는 학문으로 알고 있다. 시는 예술이기 때문에 개념 언어로 다루기 어렵다. 시의 존재, 시의 의미, 시의 가치를 다루는 것은 ‘시론’의 몫이다. 시학은 언어를 다루는 학문이다. 언어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언어학이, 언어의 의의와 효과는 수사학이 담당한다. 시학은 일상이 언어가 예술의 언어로 변모, 변곡하는 과정, 방법을 다룬다.

침묵 속으로 잠긴 오월의 언어

당시의 생생한 언어들은 열흘의 공동체와 함께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열흘의 공동체’가 다시 재현되기 힘든 것처럼 공동체와 함께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언어들에 가장 근접한 것은 당시 시민군의 일원으로 참여 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런데 이들 중 제대로 증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최정운 교수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증언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에 비해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싱겁고 왜소했으리라. 말은 초라한 배신자로 전락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규정하는 폭력적 언어 앞에 5․18의 경험은 찌그러지고 마는 것이 5․18 담론의 현실이다.

그들의 증언은 ‘절대 공동체’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 증언하지 못하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침잠해 들어갈수록 화석처럼 굳어져 부활을 꿈꿀 수도 없게 된다. 그 언어는 여전히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래서 이 말은 가장 가슴 아프고 뜨거운 울림을 준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 대통령의 5·18기념사 중에서

촛불 시학이 여는 미래

시학은 시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시학은 생활세계의 언어가 어떻게 예술의 언어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바라본다. 그로 인해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된 언어가 다시 어떻게 생활세계의 변화를 이끄는가를 탐색한다. 80년 오월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다. 그 텍스트를 통과한 우리의 언어는 우리가 가 닿지 못한 새로운 생활 세계를 열어준다.

그 하나가 우리가 목도한 ‘촛불의 공동체’라는 것은 결코 비약이 아니다. 두려움과 공포, 분노와 절규로 저장된 기억이 이렇게 환하게 재현된 기억, 그 기억이 끊임없이 재현될 우리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따뜻하고, 환하고, 정의로울 것이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 참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 대통령의 5·18 기념사 중에서

문학박사.시인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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