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진의 문학은 사랑이다

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2.세상에서 제일 긴(!) 푸른길공원, 시와 함께 걷다

입력 2017.05.08. 00:00
이팝꽃이 피어있는 푸른길 공원

사랑하고 이별도 할, 이제 시작하는 공원 그리고 길

공원의 가장 큰 가치는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광주역 동편에서 시작해 진월동에 걸친

옛 전라선 부지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조성한 지 10년이 넘어

광주 동편에 허파와 같이 자리하고 있다

서편으로도 공원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광주역 동편서 광주대까지 8.9㎞

20리에 걸친 길이다

오직 길이만 보면 이보다 긴 곳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공원이

광주의 ‘푸른길공원’이면 어떨까

여기에 시민들의 건강한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1.

유서 깊은 아시아에서 문화중심도시가 되기에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은 부족한 편이다. 세계 사람에게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150만이 사는 대도시에 인접한 가장 높은 산이 무등산이다. 무엇보다 광주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광주’ 자체다.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 동안 이루어진 ‘열흘의 공동체’는 인류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다. 열흘 동안 광주는 오직 시민들의 의해, 시민들의 힘으로, 시민들을 위한 도시로 지구상에 존재했다. 인류의 미래가치로 더 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더 푸름을 더하고 있는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푸른길공원’이다. 푸른길공원은 2015년에 ‘아시아 도시 경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공원의 가장 큰 가치는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큰 도로가를 오가는 사람이 한산해지는 시간에도 푸른길 공원은 산책하는 시민들로 넘쳐난다.

동구 계림동 광주역 동편에서 시작해 남구 진월동에 걸친 옛 전라선 부지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푸른길공원은 광주의 동편에 허파와 같이 자리하고 있다. 서편으로도 푸른길공원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푸른길공원, 옛 기찻길을 걸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편들을 소개해 본다.

2.

푸른길 공원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오른편을 보면 낮은 언덕이 있다. 예전에 ‘흙산’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여기에 ‘범대순 시인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1930년에 태어난 범대순 시인이 이곳에 터를 잡고 60여 년을 시와 살았다. 흙산정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을 시인은 무려 1천100차례나 올랐다. 그를 무등산의 시인으로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것을 어떻게 한다냐

다만 하얀 것 위에 하얀 것

역사도 전쟁도 파묻어 버린

백 년 같은 저 작은 별들을 어떻게 한다냐

꽃 위에 또 사랑같이

찢어질 듯 휘어진 가지가지

말고는 있어도 다 아닌

저 하얀 사상을 어떻게 한다냐

바람결이 조금만 있어도 쏟아질 듯

쏟아지면 산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 가슴이 두근거리는

만유위험(萬有危險)의 법칙이여

- 범대순, '무등산 눈꽃' 전문

눈꽃의 아름다움은 ‘만유위험’의 법칙 곧 ‘아슬아슬’에 있지 않나 싶다. 늘 위험천만하기만한 아이들 천진난만의 장난질, 곧 떠날 것 같이 언제나 아슬아슬한 사랑의 애틋함 같은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입에서 ‘저것을 어떻게 한다냐’라는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그림1오른쪽#

3.

계림동을 돌아나와 농장다리 아래 푸른길공원을 지난다. 곧 동편으로 조선대학교의 백악을 볼 수 있다. 조선대학교는 남도 시문학의 산실이었다. 대대로 좋은 선생님이 시인을 길러냈다. 한국전쟁기에는 서정주 시인이 교편을 잡았고, 뒤를 이어 김현승 시인이 수많은 시인을 길러냈다. 그리고 뒤를 이은 문병란 시인의 자리를 지금은 나희덕 시인이 지키고 있다.

나희덕 시인은 논산사람이고, 서울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 그가 조선대학교에 부임하면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들어온 모양이다. 그냥 다녀가는 광주가 아니라 살러 오는 광주라서 풍경 하나가 새로웠던 것이다. 이때 기차 안내 방송에서 깜짝 놀랄 만한 기차역을 듣는다. 광주역 바로 목전에 자리하고 있는 ‘극락강역’이다.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극락강역,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지만

대합실에는 밤이면 오롯하게 불이 켜지고

등꽃 그늘에 누가 앉았다 간 듯 의자 몇 개 놓여 있다

그 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은 또 한 겹의 물줄기를 두르고

언젠가는 죽음의 강물과 합수(合水)하는 날이 오겠지

극락강이라는 역에도 내릴 수 있겠지

- 나희덕, '극락강역' 부분

‘극락강역’이라는 말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 되는 특별한 장소 경험을 시인은 하게 된다. 광주에 새로 자리를 틀게 되는 사람들은 80년 오월이라는 말 때문에 많은 부담을 가진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연옥처럼’ 느끼는 사람의 대응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한 축은 열심히 살고, 싸워서 사람 사는 진실한 세상을 쟁취하고자 한다. 다른 하나의 방식은 죽음 이후의 극락을 확신하면서 고통을 고행으로 품는 것이다. 극락강역을 거쳐서 도착한 광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땅이 되길 바라본다.

4.

조선대학교를 지나 전남대병원을 오른편에 두고 큰 길을 건너면 남광주시장이 나온다. 남광주시장을 배후로 삼고 있는 남광주역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이곳의 ‘푸른길공원’은 광장을 이룬다. 20리가 넘는 푸른길공원 가운데에 해당해 중요한 행사들은 여기에서 주로 열린다. 남광주역을 소재로 삼아 쓴 시로 가장 유명한 것은 곽재구 시인의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생뚱맞게도 '사평역에서'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후반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도다움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시인은 처음 시를 짓고 '남광주역에서'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남광주‘라는 말에서는 그리움, 따뜻함 같은 것만 떠올랐다고 한다. 겨울의 차가움 그래서 더 따사로운 우리의 가슴, 이렇게 양면성을 함께 품은 지명이 없을까 고민고민하다 화순의 사평을 가져왔다고 한다. 화순 남면의 사평에는 가끔 ’사평역‘을 찾아서 묻는 젊은이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톱밥난로가 지펴지는 남광주역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담고 있다. 나는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갖은 사연들을 통과하면서 ‘나는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고 있다. ‘메마른 톱밥’이 진한 그리움의 눈물로 전화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푸른길공원이 광주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자리잡으면서 ‘남광주역’은 기차역이 아니라 ‘문화의 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쯤 되면 시인은 시의 제목을 '남광주역에서'라고 하지 않은 것을 혹시 아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모르겠다.

5.

푸른길은 남광주시장을 지나 광주천을 건넌다. 여기에서 백운광장까지 푸른길공원은 곧게 이어진다. 백운광장을 지나서 광복촌 마을에 이르면 제법 너른 데가 나오는 데 바로 ‘푸른길광장’이다. 광장의 한 귀퉁이에는 기차와 관련된 시편이 새겨져 있는데 김준태 시인의 것이다.

참말로 좋네

푸른길이 있어서 좋네

나무들이 서로 모여 살고

새들이 그 나무들 속에 집을 짓고

아이들이 나비처럼 내려앉은 옛 기찻길

광주에는

푸른길 푸른 마음 출렁출렁 좋네

할머니가 아장아장 손자녀석 등에 업는 길

할아버지가 손자딸 앞세워 소년인 양 걷는 길

지어미와 지아비가 늙을 줄 모르고 걷는 길

젊은이들이 휘파람불며 자전거로 달리는 길!

- 김준태, '푸른길을 노래함' 전문

여기에서 광주대쪽으로 1.5㎞ 이어진 푸른길은 금당산 숲길로 사라진다. 광주역 동편에서 광주대 근처까지 8.9㎞ 대략 20리에 걸친 길이다. 규모로 보면 미국 센트럴파크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오직 길이만 보면 ‘푸른길공원’보다 길다는 공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공원이 광주의 ‘푸른길공원’이면 어떨까. 기네스북에 도전해보면 싶은 생각이 든다.

‘푸른길공원’은 이제 시작하는 공원이자 길이다. 여기에서 많은 시민들의 건강한 발걸음이이어질 것이다. 또 많이 사랑하고, 더러 이별도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아름다운 언어를 타고 좋은 시로 다시 우리의 마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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