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전동진의 새로 쓰는 남도의 문학과 문화-1.운주사의 서사 전략 - 모난 탑, 둥근 탑 되기
입력시간 : 2017. 04.24. 00:00


거지탑에서 마주보이는 서편의 7층 석탑과 칠성바위
"인간 일으켜 세우려는 자연 의지 발현된 천불천탑"

구름기둥을 뜻하는 운주(雲柱)는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다

구름배를 듯하는 운주(雲舟)는

가장 시적인 이름이다

창건설화와 관련해 단지

떠가지 못하고 묶어두려 했다면

닻보다는 돛이 더 어울린다



운주(運柱)는 실패한 혁명,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지 않고

더 강한 흔적으로 남아

민중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새로운 ‘운기(運氣)’를 예비하는 장소

여전히 지속하는 미륵의 꿈을 상징한다

1. 시적 발전소

화순 도암면 대초리에 자리한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운주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황석영의 '장길산'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닭이 울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북채를 내던졌다. 미륵을 밀어올리던 사람들도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미륵상은 비탈 저 밑에 처박혀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새까맣게 몰려오던 사방의 바위들도 소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 넘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넘어지면서도 머리는 계곡 쪽을 향하였으니 먼 훗날에라도 와불이 바로 일어서면 다시 미륵이 되기 위해서였다.

'장길산'으로부터 십수 년이 흐르고, 독일의 사진작가 ‘요한 힐트만’이 운주사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아 '미륵'이라는 책을 펴낸다. 힐트만 교수는 만산 계곡의 연화탑, 석실, 석탑들의 구조와 배열에서 ‘발전소’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는 “운주사는 자연을 일으켜 세우려는 인간의지에 의해 움직여지는 발전소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없는 발전소”라고 말했다. 운주사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려는’ 자연의 의지로 움직여지는 발전소요, 오늘날 우리에게만 단 하나 남아 있는 발전소인 셈이다. 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 것일까?



2. ‘운주’라는 이름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좋아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막걸리’는 이름이 가장 많은 술이다. 만큼 이름이 많은 것이 드물다. 우리 곁의 산으로는 무등산만큼 이름이 많은 산도 드물다. 운주사는 내내 ‘운주’라는 이름이었지만, 그 한자(漢字)는 품은 뜻에 따라 달랐다.



운주(雲柱)

‘구름기둥’, 운주사는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다. 천 개의 탑은 돛이 되고, 천 개의 불상은 사공이 되어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이야기에서 ‘운(雲)’은 단군신화에 처음 등장한다. 환웅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대동하고 이 땅에 온다. 풍백과 우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운사(雲師)가 담당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구름은 탈것 곧 운송수단이라고 보는 견해다. 곧 구름은 이동을 의미한다. 운주(雲柱)는 그 헤맴을 끝내고 와 닿은 곳의 의미가 깊다. 정희성 시인의 시는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눈 코 없는 돌부처들

마당 가운데 서서

그냥 비를 맞고 있습니다



못난 제 얼굴로도

세차게 비를 뿌리소서

- 정희성, '운주사에 와서' 전문.

운주(雲舟)

‘구름배’, 운주사는 가장 시적인 이름이다. 창건설화와 관련해 단지 떠가지 못하고 묶어두려 했다면 닻보다는 돛이 더 어울린다. 탑을 천 개의 돛으로 세웠다. 정박에 머물지 않고 서방정토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더 크다. 황지우 시인의 '구름바위 위 운주사'는 ‘구름배’ 운주를 노래하고 있다.
석조불갑 앞에서 선 7층 석탑




비구름 끼인 날

운주사(雲舟寺), 한 채 돛배가

뿌연 연초록 和順으로 들어오네

가랑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포구

천불천탑이 천만 개의 돌등을 들고 나와 맞는다

해도, 그게 다 마음 덩어리 아니겠어?

마음은 돌 속에다가도 정을 들게 하듯이

구름돛 활짝 펴고 온 우주를 다 돌아다녀도

정들 곳 다만 사람 마음이어서

닻이 내려오는 이 진창

비구름 잔뜩 끼인 날

산들은 아주 먼 섬들이었네



운주(運舟)

‘단군신화’에 나오는 운사(雲師)는 ‘운기(運氣)’를 담당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천문(天文)을 읽어 질병과 재난을 대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운주사는 패배한 혁명의 상징을 곳곳에 담고 있다. ‘운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실패의 댓가는 크고 처절했다. 이를 끈질기게 노래하고 있는 이가 임동확 시인이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자들이 야음을 틈타 험한 산을 넘고 찬이슬 내린 들을 건너 흘러들어와, 또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뗏목을 엮으며 헛되고 헛된 욕망의 春畵를 끌에 새기던 은신처였다.

- '몸체가 달아난 佛頭에- 운주사 가는 길 2'



운주(運柱)

실패한 혁명,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지 않고 더 강한 흔적으로 남아 민중들을 끊임없이 이곳으로 불러들인다. 와불과 석조불감은 이러한 좌절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꿔 품게 한다. 새로운 ‘운기(運氣)’를 예비하는 장소, 여전히 지속하는 미륵의 꿈을 상징한다.



고려왕조에서는 훗날 미륵불이 불러올 개벽 세상이 두려워서 와불의 둥글게 솟은 머리 가장자리를 잘라버렸다. 이때부터 석조불감의 양쪽 문을 여닫을 때마다 돌쩌귀 삐걱이는 소리가 개경에서는 천둥소리로 들렸다. 궁궐에서는 엄청난 폭음으로 들렸다. 그래서 고려 귀족들은 석조불감의 문짝을 떼어내도록 했다. 이후 굉음은 사라졌지만 백성들은 천불동 운주사 석조불감의 석문이 다시 달리고, 와불이 일어서는 밀;륵세상의 꿈을 다시 일깨우며 꿈꾸게 되었다.('석조불감' 관련 설화)



요즘에 들어서 와불은 미륵 세상을 꿈꾸게 하기보다는 많은 시인들에게서 시심을 일깨워주는 일이 잦은 것 같다.



그렇다고 어디 내 한몸이 천지개벽의 부릅뜬 일념으로 먹먹한 아랫도리를 한차례 뽈깡 일으켜세운다 한들<중략>

내 묵묵부답의 싸늘한 아랫도리 한켠으로도 그 물결은 와서 찰랑거릴 때 비로소 아직 일으키지 않았으므로 언제가는 일어서야 할 와불

- 정윤천 '운주사 臥佛' 일부



3. 모난 거지탑의 둥근 탑되기 서사전략

운주사를 읽는 하나의 상상적 서사, 시적 서사를 하나 마련해 본다. 이 서사는 모나고 거친 ‘탑’ 하나가 운주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9층석탑의 인도를 받아 7층석탑으로 서고, 둥근탑되기의 소망을 이루면서 끝을 맺는다.

일주문을 들어서 운주사에 들면 9층석탑이 서 있다. 오른쪽 벼랑 위로 시선을 돌리면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5층 석탑이 서 있다. 이것을 이곳 사람들은 오랫동안 ‘거지찹’일고 불렀다. 그리고 왼쪽 산중턱으로 고개를 돌리면 7층석탑이 서 있다. 그 아래로 7개의 둥근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이 것을 북구칠성을 나타내는 칠성바위로 보지 않고, 와불과 함께 미쳐 세우지 못한 거대한 ‘7층 원형탑’이라고 가정해야 이 서사를 펼칠 수 있다.

‘거지탑’은 세상에 지쳐 이제 막 운주사에 도착한 ‘나’와 다르지 않다. 거지탑은 서방정토의 입구에 크고 둥글고 웅장하게 서 있는 원형 7층탑을 부처로 삼는다. 운주사에 들어선 거지탑은 9층석탑의 일깨움을 받고 7층석탑으로 선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궁으로 들어가는 모양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다.

‘광배을 갖춘 불상’을 비롯해 3기의 불상이 7층탑을 막아선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고, 물음을 통과해 드디어 석조 불감‘과 마주한다. 그리고 석조불감을 지남으로써 드디어 ’둥근탑되기‘의 소망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을 무수한 탑들과 불상들이 지켜보면서 응원을 해주고 있다.



4. 영원한 하루

전설에 의하면 운주사의 ‘하루’는 천불천탑의 조성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거짓된 수탉 울음 소리 때문에 와불을 세우지 못하고 그 하루가 끝난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진짜 수탉은 아직 울지 않은 것이니 그 하루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와불’은 ‘일어서지 못한 과거의 불(佛)’이 아니라 ‘일어서고 있는 미래의 불(佛)’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를 아직도 진행 중인 ‘하루’라고 할 수 있다면, ‘비극적 종말’은 성급한 결론이 될 것이다. 운주사에 바쳐진, 그리고 여전히 바쳐지고 있는 무수한 시와 이야기는 와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운주사가 발전하고 있는 ‘에너지’가 아닐까. 그 에너지를 찾아 우리가 모나고 얽힌 일상으로 운주에 들어서기를 그치지 않는 한, 거지탑의 연화탑되기 서사 또한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등일보 zmd@chol.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