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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23) 목아재- 당재
새둥지 같은 마을회관에
구름도 사람도 쉬어간다
오르는 길이 힘들어 무심결에
진달래 꽃가지하나
잡아당기다 얼른 놓았다.
어떻게 견뎌 온 세월인데,
어떻게 맺은 꽃망울인데 싶었다.

멀리 발 아래로 펼쳐진 마을들은
정면에 일직선으로 놓이는데
길은 바로가지 못해
굽이굽이 돌아가고 꺾어간다.
돌아가는 길섶 숲에서는
물오른 고로쇠나무들의 맑은 피가
하얀 비닐봉투에 한 방울씩 흘러
담기고 꺾어가는 길의
깊은 들숨엔 새싹들의 연초록 배냇내가 섞인다.

당재에서도 길은
화개 목통마을로 넘어가고,
오른쪽 황장산으로 변함없이
생명을 이어갔으나
주관이 소멸된 길은
객관으로 상관없이 흘렀다.
지리산둘레길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상관없는
길이 어느 날 인연으로 상관있기를 바랐다.



입력시간 : 2017. 03.10. 00:00


‘구례화엄사IC’에서 바라본 노고단 능선- 누구라서 미치지 않겠는가. 분광되지 않은 아침 햇살은 세상을 수묵화로 그려내고 산은 따스한 입김으로 마을을 깨운다.
미처 분광되지 못한 아침 햇살이 흑백의 수묵화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첩첩한 능선을 경계로 산은 다가설수록 확연하고 물러날수록 모호한데 산안개는 다가선 마을에서 짙었다.

산은 페이드인 되는 연극무대처럼 모호함에서 확연함으로 느리게 깨어나고 있다. 햇살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쯤이면 길손은 저 산 어디, 숲길을 홀로 걷는 배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삼월의 첫날, 지리산둘레길의 한 기점인 구례군 토지면 송정마을을 들머리 삼아 목아재로 가기로 했다. 목아재는 둘레길로 이어지는 송정마을과 기촌마을의 중간쯤에 있는 고개다.

길은 별장과 펜션이 들어선 송정마을 어귀를 지나 곧바로 개울의 징검다리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길섶 양지에는 개불알꽃이 한창이고 매화나무는 폭죽처럼 꽃을 터트리며 축제를 벌이고 있다. 잠깐 돌아서 먼데 산 한 번 보고나면 진달래도 생강나무도 금세 제 세상으로 피어나고 안도현 시인의 말마따나 벚나무도 꽃피어 술에 취한 건달같이 산길을 갈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봄이 꽃으로 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얼음 풀린 계곡에는 점에서 선으로 방금 바뀐 피라미 새끼들의 아가미로 지리산물이 처음 들어가고 섬진강으로 가는 계곡물은 다릿돌 사이로 바삐 흐른다. 먼 산에서는 초록이 해일처럼 일어서고 발밑에서는 어린 쑥이 생글하다. 보굿 두터운 굴참나무도 귀를 갖다 대면 봄의 왈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지리산둘레길을 마무리하는 당재에서도 길은 변함없이 이어졌으나 길은 더 이상 상관을 잃었다. 상관을 잃은 길이 인연으로 상관이 되길 바랐다.


꺾을 수 없는 진달래의 꿈

돌계단이나 작은 암릉길인 목아재 오르는 길에는 키 큰 진달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잎이 돋아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매달았다.

오르는 길이 힘들어 무심결에 진달래 꽃가지하나 잡아당기다 얼른 놓았다. 어떻게 견뎌 온 세월인데, 어떻게 맺은 꽃망울인데 싶었다. 힘든 길이야 쉬어가면 될테지만 가지 꺾인 진달래의 춘삼월 꿈이 서러웠다.

산길엔 필요한 곳마다 군데군데 갈개가 만들어졌다. 질퍽한 산길의 불편을 아는 이의 수고로움이다. 누군가는 뒤에 올 사람을 위해 갈개를 만들고 누군가는 자신의 수월함을 위해 삼월의 꽃가지를 꺾는가. 갈개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꽃가지를 꺾는 손은 되지 않도록 순간의 시간을 버텨준 꽃가지가 고맙다. 능선을 지나는 바람이 서늘하다.

목아재로 가다보면 산 오른쪽 아래 키 작은 잡목사이로 섬진강이 숨바꼭질하듯 구불구불 흘러 화개로 간다. 가까이에서 반짝이던 강은 멀어질수록 희미해지다 마침내 하늘에 닿아 긴 흐름을 다한다. 강이 흐름을 끝내고 하늘과 하나 되는 곳에 아마도 화개동천이 있을 것이다.

송정마을 아래 섬진강변의 폐교를 이용해 만든 부산시 수영구수련원 입구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쯤 걸려 목아재에 발길이 닿았다.

목아재의 이정목과 길 안내판. 멀리 왕시루봉이 왼쪽 끝으로 보인다.


사람은 가고 바람만 남은 목아재

바른 방향은 구례 토지면의 끝 동네인 외곡리 기촌마을을 넘어 화개면의 법하마을로 이어지고 목적지인 당재는 8시방향의 넓은 임도를 타고 이십리길을 간다. 고개에 서면 멀리 왕시루봉과 황장산이 까마득하다. 산들이 둘러서 내려 온 곳에 남산마을과 평도마을, 농평마을 등 이웃한 산골마을들이 옹기종기 펼쳐진다.

노고단과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내달리던 2개의 능선이 각각 왕시루봉과 황장산으로 솟은 뒤 섬진강으로 스며든다. 왕시루봉이 토지면에 속한 반면 마주하여 달리는 황장산은 구례와 하동의 경계를 이룬다.

지리산둘레길은 이러한 능선과 봉우리를 넘나들며 간난의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길이기도 하다.

산짐승처럼 목숨을 짊어지고 고개를 넘던 사람들도 목아재에 올라서서는 맞은바라기의 능선과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쉬어갔을 테다. 사람은 가고 바람은 남는가. 시린 목숨들이 넘던 고갯길에 인적은 없고 바람만 남아 길손을 맞는다.

멀리 발 아래로 펼쳐진 마을들은 정면에 일직선으로 놓이는데 길은 바로가지 못해 굽이굽이 돌아가고 꺾어간다.

돌아가는 길섶 숲에서는 물오른 고로쇠나무들의 맑은 피가 하얀 비닐봉투에 한 방울씩 흘러 담기고 꺾어가는 길의 깊은 들숨엔 새싹들의 연초록 배냇내가 섞인다. 가끔씩 응달진 언덕의 작은 빙벽이 햇빛에 날카롭게 빛나기도 하지만 봄날의 숲 사이로 오가는 새들의 날개짓은 한결 여유롭다.

구름도 쉬어가는 당치마을회관. 회관의 왼쪽 건물은 고로쇠물 저장창고로 쓰이고 있다.


당치로 가는 된비알길

건너편에는 피아골에서 흘러내려온 내서천이 둘레길을 지나 쉬엄쉬엄 섬진강으로 가고 이용객 없는 천변부지의 ‘지리산피아골 오토 캠핑장’에는 한 낮의 햇살만 소란하다.

남산마을에 닿기 전 내서신천길의 매실나무 밭에서는 가지치기가 한창이다. 잘려나간 가지는 꽃망울이 두드러기처럼 돋은 채 매실나무 그늘 아래 누었다. 어떤 가지는 누어서 꽃이 피었고 누운 꽃 위로 산가지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목아재에서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남산마을은 남산교를 지나 곧바로 평도마을로 이어진다. 내서천이 아래로 흐르는 남산교를 사이에 두고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와 ‘피아골 단풍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 같은 분교와 학교 같은 공원은 적당히 작으면서도 적당히 떨어져 서로 간섭하지 않는 친밀함으로 마주한다.

마을의 형세가 ‘서울 남산을 닮았다’는 데서 남산마을이 유래하고, ‘평평하다’해서 평도마을의 이름 지어졌다고 쓰인 마을표지석의 글은 평이하다.

길은 평도마을에서 피아골로 들어서는 연곡사 방향으로 10여분쯤 걷다 3거리에서 당치마을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당재까지 3km쯤 되는 구간으로 포장된 마을길은 가파르다. 브레이크를 밟고 내려오는 차량들의 타이어 닳은 냄새가 가풀막진 도로에 짙게 깔린다. 길옆으로는 실개천인 당치천이 내서천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흐르는 계류따라 민박과 펜션들이 쉼 없이 들어섰다.

3월 초순이면 지리산 산골마을마다 고로쇠물 채취로 한창이다.


새둥지 같은 마을 회관

당재를 1km쯤 남겨놓고 경로당을 겸하는 당치마을회관이 높다란 새둥지처럼 산마루에 얹혀있다. 새둥지 같은 마을회관에 지나던 구름이 쉬어가고 구름처럼 가벼운 산골마을 사람들도 쉬어간다. 보이는 산들이 발 아래로 내려서는 까마득히 높은 산골마을에 한 옥타브가 높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심심찮다.

마을회관을 지난 길은 당치마을을 넘어 한참을 오르다 농평마을 어귀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에 들어서는 이정목이 없어 습관처럼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자칫 농평마을로 들어서는 경우가 있다.

농평마을 초입에서 당재까지의 500여m 남짓한 숲길은 언제 숨넘어가는 된비알길을 넘어왔느냐는 듯이 완만하고 평온하여 당재에 닿기까지의 험난한 이력을 잠시 지운다.

둘레길의 마무리 구간으로 삼은 목아재- 당재 지선구간의 종점인 당재, 그 이정목 앞에서 길손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긴 날숨으로 섰다. 당재에서도 길은 화개 목통마을로 넘어가고, 오른쪽 황장산으로 변함없이 생명을 이어갔으나 주관이 소멸된 길은 객관으로 상관없이 흘렀다.

지리산둘레길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상관없는 길이 어느 날 인연으로 상관있기를 바랐다.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길 안내

수영구수련원- 송정마을(0.4km)- 목아재(3.3km)- 남산마을(4.4km)- 평도마을(0.3km)- 당치마을(1.9km)- 농평마을(1.1km)- 당재(0.4km)까지 8.5km에 달한다.

소요시간은 목아재에서 당재까지는 4시간 정도면 가능하지만 수영구수련원에서 시작할 경우 2시간 정도를 추가해야 한다. 또한 당재에서 평도마을까지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까지 포함할 경우 7시간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지리산둘레길의 ‘가탄- 송정’ 구간에 포함된 지선이다. 목아재는 화개장터와 인접한 구례 토지면의 외곡리 기촌마을에서 송정마을로 넘어오는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고개. 어느 방향에서 출발해도 무방하지만 목아재까지 차량이동은 불가하다. 당재를 출발점으로 삼을 경우 당재 턱밑의 농평마을까지는 차량으로 오를 수 있다.

송정마을이나 기촌마을에서 목아재까지는 2시간이면 오를 수 있고 가장 힘든 구간인 평도마을에서 당재까지는 1시간30분쯤 소요된다. 당재에서 당치마을까지는 천둥지기 농로를 이용한 ‘당치 오솔길’도 조성돼 있다. 당재에 오르는 길은 포장 임도를 이용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오솔길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시간이 된다면 펜션이나 민박 등 숙박시설이 즐비한 평도나 당치마을, 또는 농평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지리산 밤하늘의 별 기운과 함께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고로쇠물을 뼈가 미소지를 때까지 마셔보는 것도 (very)괜찮다. 뒷날 연곡사와 피아골에 발자국을 찍는 일은 덤으로 주어지는 기쁨이다. 평도마을에 음료를 파는 상점과 커피숍이 있다.
평도마을에서 피아골과 당재로 오르는 3거리


광주에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구례시외버스터미널(061-789-2730)까지 1시간20분가량 소요된다. 광주- 대구고속도로를 이용한 뒤 남원 JC에서 순천-완주 고속도로를 거쳐 구례화엄사 IC로 빠져 나온다. 원점회귀를 위해 승용차를 송정마을이나 기촌마을에 주차한 뒤 출발하는 것이 편하다.

구례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송정마을이나 기촌마을까지 1시간에 1대씩의 버스가 운행된다고 보면 된다. 되돌아오는 길은 평도마을의 내동보건진료소 옆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면 되는데 배차간격은 1시간 터울이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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