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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 25 : 오래 된 서정, 가장 오래 남을 시 上- 문화의 시대를 서정의 정수로 열다! 손광은 시인
입력시간 : 2017. 02.27. 00:00


"몸짓 보다 소리…'웃으면서 우는' 흥과 소리의 언어"



일본에서 열린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한 손광은 시인은

일본 시인들이 앞다투어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래가

하이쿠라는 것을 자랑하자

기백있게 나서 판소리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불러 재꼈다

이런 노래를 우리는

6시간을 넘게 부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래는

한국의 판소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손광은은 비단처럼 웃고

무명처럼도 웃는다

어떨 때는 덕지덕지 기운

머슴의 옷처럼도 웃고

또 어떨 때는 천을 모아 기운

조각보처럼도 웃는다

그의 웃음은 또 다른 삶인

시에 그대로 배어난다

그래서 손광은 시인은

웃으면서 우는 시인이다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그의 마음의

밑둥을 감지해내야한다





손광은 시인은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에서 1936년에 태어났다. 보성강 건너 맞은편은 장흥군 장평면 두봉리이다. 이 마을에서 아버지가 태어나셨다. 두 마을 소년들은 보성강에서 멱을 감으면서 함께 자랐다. 이 사실을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 손광은 시인을 지도교수로 모시면서 들었다. 아버지 4살 무렵에 화순으로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두 분은 유년을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흥과 소리

손광은은 언제나 즐거운 시인이다. 함께 하는 이들까지도 흥이 넘쳐나게 한다. 흥을 가장 잘 표현하고, 널리까지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몸짓보다는 소리다. 손광은의 흥은 소리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은 바람(흔들림)을 만나면 드디어 자신의 소리를 낸다. 자연을 지배하고자 했던 서구에서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노래’라고 구분지어서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람의 노래도 ‘소리’라고 말한다.

동경교육대학에서 학위를 한 손광은 시인은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본 시인들은 앞다투어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래가 하이쿠라는 것을 자랑했다. 이때 젊은 손광은 시인이 기백있게 나서서 판소리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불러 재꼈다. 이런 노래를 우리는 6시간을 넘게 부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래는 한국의 판소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세계 시인들의 깜짝 놀라는 반응을 가끔 무용담처럼 들려준 기억이 있다.

판소리는 이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널리 알려졌다. 이런 영광이 있기까지 손광은 시인의 소리 사랑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손광은 시인의 첫 시집의 표제작은 '파도의 말'이다.



어느날 밤 파도는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깨웠다.

다른 사물들은 일제히

다른 이름들을 하나씩 더 갖고

눈뜨기 시작했다.



모양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거대한 것이

엄청난 사람같은 것이

내 목을 누르고

내게 말했다.



그냥 이대로만 있기냐

그냥 있기냐

다시 태어난 다음에야 볼 수 있는

벌판의 외침 소리 하나

나를 죽이고

끝끝내 들려 왔다.

- '파도의 말' 전문-



지도에서 해안선은 고정이 되어 있지만 실제로 해안선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기나긴 세월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의 파도가 밀려왔다. 그렇게 해안선은 만들어지고, 막무가내로 밀려오는 파도도 그 해안선을 따라서 마지막 무늬와 소리를 남긴다. ‘사람의 표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 역시 해안선과 같이 형성되고 변화한다.

이것을 프랑스 말로는 ‘무아레’라고 한다. 파도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 파도의 소리를 ‘말’로 옮겨놓으려는 각고의 노력이 벌써 1960년대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놀랍게 생각한다. 그 ‘파도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말이 오가는 경로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시인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보고자 한다. 파도가 넘실대며 오는 것을 들으려 한다. 시각과 청각의 전회를 통해 우리는 자연에 한 층 깊이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통로로서 웃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주요 통로 중 하나가 ‘웃음’이다. ‘웃음소리’를 들으면 모인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는 통로가 얼마나 크고 깊게 열렸는지를 알 수 있다. 손광은은 삶 자체가 웃음으로 이루어진 시인이다. 그러나 그 웃음의 결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비단처럼 웃고, 무명처럼도 웃는다. 어떨 때는 덕지덕지 기운 머슴의 옷처럼도 웃고, 천을 모아 기운 조각보처럼도 웃는다. 그의 웃음은 또 다른 삶인 시에 그대로 배어난다. 김병욱 선생은 ‘손광은은 웃으면서 우는 시인이다’라고 평한 바가 있다. ‘우리가 그러한 그의 마음의 밑둥을 감지해내지 못한다면 그의 시세계는 절반으로 축소되고 만다’고 덧붙였다.

절대적인 가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은 쉽게 웃지 못한다. 늘 경건하고 엄숙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중세나, 절대 권력에 대한 믿음을 강요받았던 한국의 1970년대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웃고자 했다. 그때의 웃음은 저항이었고, 새로운 가치의 추구였다.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소리

당신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

우리들이 모여들 때에 손을 흔드는 소리

모두가 기다리는 오늘을 믿고 사는 소리

한창 내 마음에는 흰서리 날리듯 대낮을 휘젓는 소리

어제를 깔고 앉아 비밀을 터놓는 소리

저, 파괴된 우리들의 심장 사이

그늘을 밀어내고 안개를 걷히듯 얼굴을 비벼가는 소리

그윽한 신성을 눈결에 저미여 새실대는 눈결 소리

얽어 놓은 내 신앙심을 고집하듯 울리는 소리

다시 와서 내 마음에 움트는 심령의 소리

- '웃음' 전문 -



요즘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의식적으로 웃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위해서 웃음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눈물’도 스트레스 해소에 기여할 때 최고의 것이 된다. 다른 지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웃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웃음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나 웃으면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건 모두 현실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웃음의 현상학

저항이나 새로운 가치 추구의 원동으로 웃음을 삼는 사람도, 건강을 위해 웃는 사람도, 웃기 위해 사는 사람도 언제나 웃음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 수는 없다. 웃음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몸의 웃음만 아니라 텍스트의 웃음도 마찬가지이다. 촉발되는 지점 혹은 임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웃음은 서사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웃음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웃음은 매우 우발적인 사태에 동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웃음은 웃는 사람도 온전히 의도할 수 있는 간단한 언어가 아니다.



웃음은 내 심장에서

달려나와

눈속에서 숨쉬고

헐벗은 어깨로부터

내 실체의 신앙심을 고집하듯

그 속에 온갖

발자욱 소리를 내세우고,

내 심장의 혈관 속에

여러겹의 시간위에 일어선다.

- '웃음(1)' 앞부분-



사태로서 웃음이 우발성을 속성으로 한다는 점은 현상학적으로 접근 방법을 떠오르게 한다. 필연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객관적 시간과 우연성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주관적 시간(심리적 시간)의 경계에 현상학은 널따랗게 경험적 시간을 펼쳐 놓는다. 경험적 시간은 우발성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현상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면 웃음에 대한 탐구의 엄밀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의 단편은 나도 잘 모른다. 현상학은 언어를 도화지 삼아 이것을 ‘현상’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학문이다.

‘이제, 웃음은 / 내 안에 돋는 고독(孤獨)과 같이 / 마음깊이 / 무거운 시간을 키운다.’ 파편처럼 부서지는 웃음으로 다른 사람들로 부터 스스로를 엄폐한다. 웃음을 에너지로 삼아서 자신의 깊이 들어간다. 진정한 고독은 웃음으로 가려진 것이다. 손광은은 이 시를 이렇게 갈무리 한다. ‘웃음은 사방(四方)에서 / 내 마음 뿌리밑의 시간을 엿듣는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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