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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 24 : 역사·문화·문학 기술지의 길(下)- 오월의 꽃, 오월의 미소를 띤 소설가 송기숙
입력시간 : 2017. 02.13. 00:00


"오월의 꽃은 광주시민들 마음과 몸에서 피었다 진 꽃"

광주가 세계 문화중심 주창하며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

세계에서도 유일한 것이

‘80년 오월 열흘의 공동체’다

100만이 사는 대도시에서

공권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10일 동안

질서를 유지한 경우는

그때까지도, 이후로도 없었다



헌병대 영창으로 옮겨졌는디

거기 있는 사이 피멍이

양쪽 어깨로까지 번져 내려왔어

아, 등짝만 맞았는데

얼마나 피멍이 깊게 들었으면

그것이 양쪽 어깨로 내려오더니

내중에는 손끝에까지 내려가더니

이것이 다시 내려왔던 속도로

서서히 걷혀 올라가

그것이 한 보름 걸렸을 것이여

광주! 아시아 문화중심?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앞세워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초대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을 맡아 사업을 이끈 이가 송기숙이다. 그가 추진단장을 맡은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화중심’이라는 말은 소설가 송기숙이, 광주가 갖는 무게는 민족민주운동가 송기숙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측면에서 그가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가 80년 오월의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유형 문화유산으로 하면 경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형 무화유산으로 하면 단연 전주를 드는 이가 많다. 이들 두 도시가 표방하는 문화중심도시의 ‘문화’는 ‘과거의 유산’이다. 광주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문화중심도시 주창하며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 세계에서도 유일한 것이 ‘80년 오월 열흘의 공동체’다.

오월 공동체의 유일성은 그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100만이 사는 대도시에서 공권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10일 동안 질서를 유지한 경우는 그때까지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없었다. 미래학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찬사를 보낸다. 인류가 최고치의 윤리적 성장을 이룰 때, 고도의 문화 속에서 ‘국가 권력’이 없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80년 광주 열흘의 공동체에서 본 것이다.



‘오월문학, 오월시학’의 가능성

모두에게 생전 처음인 낯선 공동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공동체가 열린 것이다. 그 열흘 동안 그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죽음을 공유하는 시민군으로 태어났다.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 자라고, 공동체에서 일생을 살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열흘 동안의 생은 꼭 죽은 자들의 것만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도 이 열흘 동안의 삶을 ‘다른 생’인 것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사회연구소는 시민군의 이런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경우 시민들은 언제부터인가 각목을 들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사연, 1990a, 2015: 390쪽



또 이런 증언도 있다.



20일부터 많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중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고 무슨 일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는 참가자 중 수 없이 많으나 증언에 간혹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예를 들어 현사연 1990a: 2036: 486; 3109: 785 등)



송기숙은 현대사회연구소를 주도해 5·18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았다. 그리고 전남대에 5·18연구소를 열고 초대 소장을 역임하면서 5·18이 불러오는 정서적 차원의 감격과 분노를 학문적 차원에서 정리하고 계승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오월과 관련된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천편일률적이다. ‘그 정당성은 높이 살 만하나 문학적(미학적) 성취는 높지 않다.’ ‘미(美)’라고 하는 것에 대한 규준은 ‘낭만적 언어’를 기준으로 마련된 것이다. 80년 오월에 인류 최초로 개시된 ‘열흘의 공동체’가 지탱한 언어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이 품은 ‘뜻’은 현재의 것으로는 번역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삶의 공동체의 언어가 추구하는 ‘미(美)’와 죽음의 공동체의 언어가 추구하는 ‘미(美)’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언어적 배경을 인정한다면, 송기숙의 소설은 정당화의 측면 못지않게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월의 꽃

5월을 대표하는 꽃은 장미와 모란이었다. 그러나 광주의 80년을 지나고 ‘오월의 꽃’은 다른 뜻을 품게 되었다. ‘꽃아 꽃아 아들 꽃아 오월의 꽃아!’라는 노래도 나왔다. 오월의 꽃은 처연한 꽃이고 피지 못하고 시든 꽃이고, 시든 후에 다시 피는 꽃……이라는 추상적인 말들만 ‘오월의 꽃’이라는 말을 부여잡고 있었다. 장미와 모란이 갖는 그 붉음을 우리에게 직접 주지는 못했다.

열흘의 공동체가 막을 내릴 즈음, 송기숙은 서울의 보안대 지하실에서 수양버드나무 몽둥이로 등짝에 물불가리지 않은 매타작을 당하고 있었다. 어깨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 20여일 만에 헌병대 영창으로 옮겨졌는디. 거기 있는 사이 피멍이 양쪽 어깨로까지 번져 내려왔어<……> 아, 등짝만 맞았는데 얼마나 피멍이 깊게 들었으면, 그것이 양쪽 어깨로 내려오더니, 내중에는 손끝에까지 내려가더니 이것이 다시 내려왔던 속도로 서서히 걷혀 올라가. 그것이 한 보름 걸렸을 것이여. (조은숙, '송기숙의 삶과 문학', 역락)



송기숙의 몸에서 오월의 꽃은 달포동안 피었다 졌다. 이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오월의 꽃’이 또 있을까? 이 꽃은 송기숙의 몸에만 피었다 진 것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자신의 몸에서, 마음에서 오월의 꽃이 피었다 진 것을 지켜본 사람만이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도 죄값을 치른 이후에……



오월의 미소

'오월의 미소'가 출간되었을 때, 나는 정년을 앞둔 송기숙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대학원에서 듣고 있었다. 출간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기사가 쏟아졌는데,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가 많았다. 소설의 제목만 보고, 또 오월 학살의 주범들이 사면되는 분위를 반영해 송기숙도 드디어 ‘화해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는 기사가 주를 이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마지막에 주인공이 사제 총을 품고 학살자를 처단하러 나서는 장면으로 끝낼 걸 그랬다”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던 것을 기억한다.

80년 오월 이후 우리에게 ‘오월의 꽃’은 ‘장미’나 ‘모란’이 아니다. 오월의 꽃은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이 아니라 송기숙의 몸에서 피었다 져 내린 꽃이다. 열흘 동안 최대치의 환희와 최대치의 공포를 동시에 겪으면서 시민군들이 온몸으로 피워낸 죽음의 꽃이다. 그러니 ‘오월의 미소’가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웃음’이겠는가?

이 미소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의 전승축하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지던 순간 윤봉길이 지었을 법한 미소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순간, 안중근이 지었을 법한 미소다.

이런 미소 이후에야 ‘용서’라는 말이 가당하다. 우리의 역사는 그런 ‘단죄의 미소’를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다. 송기숙은 ‘오월의 미소’에서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2017년 ‘우수(雨水)’의 절기로 가는 우리는 결연하고 비장한 ‘오월의 미소’를 광장의 촛불로 확인하고 있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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