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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 22:천생의 시인, 시의 일상(下) - 고동치는 시를 품고, 바위처럼 시대를 견뎌낸 시인 문병란
입력시간 : 2017. 01.09. 00:00


부드러우면서도 용기있는 내면을 지닌 광주의 아버지상

문병란은 맞지 않은 옷을 벗듯

‘순수함, 아름다움, 고결함’과 같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벗어버린다

일상의 회복은 다만

시의 형식과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쉬운 시를 표방하면서

일상다반사로 ‘시(詩)’를 써낸다



변화무쌍한 일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온

문병란의 시와 삶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갈증 나게 한 것은

비판 혹은 비난이 담긴 시선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새롭게 대면하는

나이에 이른 자신의 시선이다

이것은 문필봉 ‘고동바위’가

다시 보내는 자신의 메아리와 같은

시선은 아니었을까?



순수의 일상

광주의 아버지상으로 문병란 시인을 들면 선뜻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광주’ 하면 좀 더 강한 아버지, 투쟁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문병란은 강함과는 거리가 있다. 천생 시인으로서 부드러움이 넘쳐난다.

문병란 시인은 ‘문필봉’에 값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 과는 국문과로 일찌감치 정한다. 그리고 ‘김현승’이라는 시인만을 바라보고 조선대학교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재능은 좋은 스승을 만나 금세 꽃피게 된다. 대학 3학년 재학시절에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은 작품이 바로 '가로수'다.



여기는 계절이 맨 발로 걸어왔다

맨발로 돌아가는 길목

가자, 우리 소망의 머언 산정이 보이면

목이 메이는 오후

가로에 나서면

너와 같이 나날이 거닐고 자운



너는 오월의 휘앙세, 기대어 서면 너도

나와 같이 고향이 멀다.

- '가로수' 후반부



김현승은 기독교적인 숭고 안에서 순수고독을 탐색한 시인이다. 이 시는 그런 ‘순수’의 맥락에서 읽힌다. 나는 그 ‘순수고독’이 ‘절대고독’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안전망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나와 가로수는 ‘맨발로 걸어왔다 돌아가는’ 계절이라는 자장 안에 있다. 휘앙세를 부르는 소리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도 모두 절제되어 있다.



순수를 벗고

문병란은 맞지 않은 옷을 벗듯 ‘순수함, 아름다움, 고결함’과 같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곧 벗어버린다. 일상의 회복은 다만 시의 형식과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쉬운 시를 표방하면서 일상다반사로 ‘시(詩)’를 써낸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그냥 그 자리에서 뒹굴며 살아내고 시를 썼다. 슬프면 그 자리에서 울고, 즐거우면 그 자리에서 웃는다. 1970년대에 쓴 '고구마'라는 시는 시의 소재도, 주제도 등단 무렵과는 많이 달라진다.



접시에 올라앉은

두루뭉수리

못생긴 전라도 고구마가

뽀루퉁한 입술 오물거리며

한많은 노래를 부른다.

- '고구마' 중에서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이라면 현실의 냄새를 많이 지우려고 노력한다. 현실 공간의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설화의 현장’이거나 특별한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며, 이곳의 명칭은 다분히 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병란 시인은 광주의 ‘화정동’이라는 공간을 그대로 시에 가져온다.



광주 화정동

국군 통합병원 부근의

저녁 노을은 유난히 붉다.



못다 살고 죽은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인 양

활활 타오르다

이내 서녘 하늘 속으로 총총히 숨어버리는

저녁 종소리!

당신의 그리운 뒷모습이 보이는데

- '화정동의 저녁 노을' 중에서



죽음을 그리고 있는 시이지만 어둡지 않다. 저녁노을은 곧 꼬리를 서녘 하늘로 사르며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화정동’ 곧 ‘화정’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볼그레한 새색시의 연지, 곤지 색이 살아 느껴진다. 그러니까 소멸의 순간까지 ‘당신의 그리운 뒷모습이 보이는’ 그리움의 공간으로 ‘화정동’은 화사해진다.



시대의 일상

우리의 일상은 우리 시대와 더불어 있다. 시대를 외면하고는 건강한 일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시대가 어두우면 함께 어둡고, 시대가 싸우면 함께 싸워야 제대로 살아가는 일상이다. 낭만적·이상적인 시, 시를 위한 시를 벗어 던지면서 문병란은 이렇게 ‘시’를 노래한다.



아직도 낡은 연미복을 입은 시인(詩人)아

이제는 시들은 꽃다발을 던져버려야 한다

가냘픈 피리는 내던져버려야 한다.

시는 시가 끝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 '시' 중에서



투쟁이 일상이 된 80년대에 문병란은 다시 '시'를 쓴다. 노래하는 시에서 외치는 시로 다시 부르짖는 시로 나아간다. 그도 시도 모두 투쟁하는 시를 살아내고자 한다.



그대 교과서 속에서

그대 애인의 눈동자 속에서

죽어가는 시의 껍질을 버리고

정수리를 퉁기는 가시가 되라

복판으로 날아가는 창끝이 되라.

- '시' 마지막 부분



비장함이 묻어난다. 비장한 시와 함께 문병란도 온몸으로 80년대를 싸우며 살아낸다. 그리고 80년대 말 그는 70년대에 초에 쫓겨나듯 그만 둔 조선대에 복직한다. 그리고 시 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의 일상으로 품는다.

문병란의 시에는 정감 넘치는 유행가 가사와 같은 시도 더러 있다. 입에 착착 감기는 시맛이 있다. 그것을 통속적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따지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 일상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현실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미학적 측면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자신은 없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문병란의 시는 '직녀에게'이다. 사회적인 현실을 전혀 대입하지 않고 보면 이것은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저녁에 퍼져 있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온 까닭에, 우리 민족의 곪고 썩은 상처를 가장 깊게 찔러 올 수 있었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야 한다, 여인아!

- '직녀에게' 마지막 부분



이 시를 노래로 만든 가수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두 주제곡으로 쓰였다.



다시 서정의 일상으로

초지일관(初志一貫)을 생의 미덕으로 삼았던 시대가 있었다. 처음 품은 뜻을 죽을 때까지 품고 가는 사람을 지고지순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멋진 사람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변화무쌍한 일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온 문병란의 시와 삶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갈증 나게 한 것은 비판 혹은 비난이 담긴 시류의 시선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새롭게 대면하는 나이에 이른 자신의 시선이다. 이것은 문필봉 ‘고동바위’가 다시 보내는 자신의 메아리와 같은 시선은 아니었을까?



매우 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매우 후회할 때가 있다.

정년의 언덕에서 남쪽 바다를 혼자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일곱 살 때의 소꿉장난 여자 친구가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손이 골말 속에 들어가 자취집 독방을 생각할 때가 있다.



문득 집을 나가 국도의 끝에 가서 혼자서 삼학소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오 인생이여 친구여.

- '갈증' 전문



광주에서 ‘내로라’하면 금방 알아볼 만한 사람들 중에는 문병란 시인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소설가 황석영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어쨌거나 황군(황일봉氏) 혼자면 또 모르겠으나 유신시대를 겪으면서 여러가지 학원 사태로 쫓겨난 옛날 제자들이 다른 곳은 받아줄 사람도 없고 기댈 데도 없어 자연히 찾는 데가 문 선배네 그 알량한 집 구석이었다. 내가 가보면 으레껏 그 집에는 서너 명에서 많으면 대여섯의 젊은이들이 엊혀 있기 마련이었다. 아예 하숙집인 셈이었다. 그들과 농도 주고 받고 욕도 하면서 맨 위에서 아래까지 배를 깔고 일렬로 엎드려 선생과 제자가 남인수, 현인의 흘러간 유행가를 주고 받으며 감상한다.



그 따뜻한 스승의 정, 이 푸근한 아버지의 정을 두고두고, 오래 오래, 천천히 그릴 이들이 광주에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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