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 20 : 예술의 사랑 사랑의 예술 하(下)남도의 심성을 지성의 목소리로 담아낸 소설가 이청준
입력시간 : 2016. 12.12. 00:00


소설을 넘어 가장 길게 쓴 서정시로 불리우는 '눈길'



이청준 소설의 절반 이상은

‘고향’을 배경으로 삼거나

혹은 의식하면서 썼다

그에게 고향은

글쓰기의 동기이자 원인이었다

이런 고향을 이청준은

자의 반 타의 반 오랫동안

찾을 수 없었다

그 연유가 담겨 있는 소설이

바로 '눈길'이다.



우리는 아마 최초로

어머니의 마음이란 것을

'눈길'에서 온전히 만날 수 있다

동지(冬至)로 가는 2016년 이 겨울

'메밀꽃 필 무렵'이 열고

'소나기'를 거쳐, 이청준의 '눈길'에서

절정에 이르는 한국 서정 소설

이 길을 따라가면서

첫눈을 기다려도 좋으리.



눈길이 가다

2008년은 최남선이 '소년'이라는 잡지를 펴낸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근·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2008년은 한국 근현대문학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고 펼쳐졌다. 그 중 하나로 한국 단편소설 20선이 가람기획에서 출판되었다. 53명의 비평가가 선정한 20선 중에서 6번째를 차지한 것이 바로 이청준의 '눈길'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10번째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은 서사적 글쓰기가 도달할 수 있는 서정성의 한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인은 ‘갈등’이다. 갈등의 해결을 통해 주제가 드러난다. 이 소설을 서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갈등의 부재’에 있다. 즉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관계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 힘의 원천은 풍경에서 온다. 메밀꽃 피어있는 밤, 달빛이 흐드러진 길을 가는 이들은 어느새 풍경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이 풍경이 되는 순간에 머물 때 우리는 이 소설을 가장 서정적인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눈길'은 1970년대 후반에 발표된 작품이다. 물론 주제도 다르다. 이 소설은 '메밀꽃 필 무렵'을 잇는 ‘서정적 소설’이 아니다. 소설을 넘어서 가장 길게 쓴 서정시라고도 평가받는다. 이 소설의 주제와 맥락을 함께 하는 시가 한 편 있다. 구례 지역 출신의 이시영 시인이 쓴 '성장'이라는 시를 '눈길'에 앞서 읽어본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 이시영, '성장'전문(은빛호각, 창비, 2003)



눈길을 가다

이청준 소설의 배경은 절반 이상이 ‘고향’을 배경으로 삼아 혹은 의식하면서 썼다고 한다. 그에게 고향은 글쓰기의 동기이자 원인이었다. 이런 고향을 이청준은 자의 반 타의 반 오랫동안 찾을 수 없었다. 그 연유가 담겨 있는 소설이 '눈길'이다.

이청준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강권으로 광주서중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한다. 그의 유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광주일고에 입학한 해에 집안이 큰 풍파를 겪게 된다.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고향 진목마을을 찾은 작가를 어머니는 이미 팔린 집을 지켜 하룻밤을 재워서 보낸다.

소설 '눈길'은 이때의 이야기를 내적 서사로 삼고 있다. 소설 '눈길'을 이끌고 가는 화자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의 단칸집을 찾은 작가로 추정되는 사람이다. 모처럼 며칠 묵어가기로 하고 내려온 동네는 늦게까지 지붕 개량을 하느라고 소란스럽다. 어머니는 방을 한 칸 정도만 더 늘렸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화자인 ‘나’는 그런 어머니의 심사가 불편하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나는 노인에게 빚이 없다’고 되뇐다.

남의 집이 된 집에서 하룻밤을 난 후, 이청준은 다시 고향을 찾지 않았다. 혹 서울에서 문학기행단을 이끌고 '눈길'의 현장을 답사하는 길에도, 그는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마을 어귀에서 자신의 옛집을 둘러보고 오는 기행단을 기다렸다고 한다. 2006년 무렵 장흥군에서 그 집을 매입해 작가의 집으로 다시 가꾼 후에야 그 그리운 집에 들어섰다고 한다.



메밀꽃 필 무렵, 소나기 그리고 눈길

1936년 발표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서정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서사적 갈등과 그 해결에 독자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설의 서사를 충실히 반영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전개된다. 일련의 사태들이 사태로 있지 않고,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소설의 끝에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허생원은 확인한다. 허생원은 자신이 아들임을 직감한다. 소설이 끝난 후에 독자들은 허생원이 제천으로 가서 동이의 모친을 만나서 벌어질 일까지 그려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중추는 ‘서사’다. 서정적일 수 있는 있지만 ‘시적’이라고 하기는 힘든 이유다.

'메밀꽃 필 무렵'이 발표되고 20여 년이 흐른 후에 '소나기'가 발표된다. 이 소설은 전쟁 중에 광주에서 발행한 잡지 '신문학'에 실린다. 1953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1956년 황순원의 단편집 '학(鶴)'에 실린다. 이 단편집을 통해 '소나기'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설은 서정적이라는 말보다는 ‘시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소나기’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다. 첫사랑 역시 어떤 인과관계를 갖고 오는 것이 아니다. 풍경과 사건이 맥락을 벗어나 밀려온다. 의미 맥락에서 벗어난, 그래서 자유로워진 사건, 시원성·원초성을 회복한 사건을 사태라고 한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서정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자 독자를 가로막고 서는 벽이기도 하다.

'소나기'는 소녀의 죽음으로 일단락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입을 빌려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는 소년의 귀로 흘러드는 소녀의 마지막 말이 흘러든다. 종잡을 수 없는 첫사랑, 한생을 온통 흔들어버릴 수 있는 시적 순간이다.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이 한 줄의 시를 위해 소나기 전체는 받쳐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소나기'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흐른 1977년에 이청준은 '눈길'을 세상에 내놓는다. '눈길'은 서정적 소설, 시적 소설을 뛰어넘는다. 소설로 쓴 서정시라고는 할 만하다. 물론 '눈길'도 소설의 구조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구도는 어떤 사건의 발단과 대단원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어머니는 새벽 눈길을 밟아 어린 아들을 영이별하는 마음으로 보낸다. 마음에 박힌 얼음 파편 같은 아들을 시리게 쓰리게 파서 보내고 오는 길이다. 신난곤난한 삶이 이어질 마을을 눈부신 햇살이 잠시 지워준다. 어머니의 생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만을 바라볼 수 있는 ‘단 한순간’이 그렇게 열린 것이다.



“그런디 이것만은 네가 잘못 안 것 같구나. 그 때 내가 뒷산 잿등에서 동네를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일 말이다. 그건 내가 갈 데가 없어 그랬던 건 아니란다. 산 사람 목숨인데 설마 그때라고 누구네 문간방 한 칸이라도 산 몸뚱이 깃들일 데 마련이 안됐겄냐.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침 햇살이 활짝 퍼져 들어 있는디, 눈에 덮인 그 우리집 지붕까지도 햇살 때문에 볼 수가 없더구나. 더구나 동네에선 아침 짓는 연기가 한참인디 그렇게 시린 눈을 해 갖고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 차마 어떻게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있더냐. 그놈의 말간 햇살이 부끄러워서 그럴 엄두가 안 생겨나더구나.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고자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라….”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마 최초로 어머니의 마음이란 것을 온전히 그대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지(冬至)로 가는 2016년 이 겨울, '메밀꽃 필 무렵'이 열고 '소나기'를 거쳐 이청준의 '눈길'에서 절정에 이른 한국 서정 소설의 길을 따라가면서, 올해의 첫눈을 기다려도 좋을 것 같다.


무등일보 zmd@chol.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