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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17> 보성 ‘김미 자연애찬’의 연밥정식
입력시간 : 2016. 12.09. 00:00


청아한 향기 후각 건드리고, 밥 아닌 예술을 먹는다

음식점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이다

‘맛’이 아니라

‘멋’을 취재하러 온 착각이 든다

하긴 맛과 멋의 경계가

어디에 있더란 말인가

맛 속에서 멋이 자라고

멋 속에 맛이 박혀있지 않던가

그래서 맛과 멋은 하나다



보성읍 옥암리에는

역사와 추억이 함초롬히 젖어있다

고택들 뿐만 아니라

뒷산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도

고샅길의 돌멩이도

당산나무 위태로운 까치집도

우리 역사요 추억이다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고 전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은 '부용산'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모든 실체가 밝혀졌다. 작사자는 박기동 시인이고, 작곡가는 월북한 안성현이었다.

박기동 시인이 그런 애절한 노래가사를 쓴 이유는 누이가 폐결핵을 앓다가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를 추모하는 제문(祭文) “생사의 길이 여기 있음에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네……”라는 '제망매가'와 유사한 내용이었다.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오랜만에 ‘부용산’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그런데 참고로 말하자면, 이 노래 속의 산 이름인 ‘부용(芙蓉)’은 연꽃을 피우는 ‘연(蓮)’의 별칭이다.

부용산이 있는 보성군으로 ‘맛과 멋 기행’을 떠난다. 유난히 하 수상하고 혼탁한 시절이라서 가슴 속에 연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

연꽃을 이야기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그 뜻은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한다’이며, 연꽃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맛과 멋은 하나다

보성 향토시장 입구에 도착한다. 매달 2일과 7일에 오일장이 열리기 때문에 오늘은 초겨울 바람만이 개구쟁이들처럼 장터 여기저기를 휘저으며 깔깔거리고 있다.

오일시장의 멋은 근동의 아낙네들이나 할머니들이 손수 가꾼 농산물들을 난전에 놓고 파는 모습일 테다. 그분들은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로 쪼그리고 앉은 채 할미꽃 같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눈빛을 매달고 있다.

보자기나 신문지 위에 깔아놓은 배추, 고구마, 콩, 고추 등등은 삶의 수단이며 재미임과 동시에 소박한 꿈이기도 하다. 그걸 팔아서 생긴 돈은 사탕이나 엿으로 바꾸는데 쓰이거나, 괴춤에 꼭꼭 넣어두었다가 자녀나 손자손녀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주는 따스한 사랑과 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보성군 보성읍 봉화로 53에 자리 잡고 있는 ‘김미 자연애찬(대표 김미).

‘김미 자연애찬’의 간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김미’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찬미한다는 뜻의 ‘예찬’이 아니라 ‘애(愛)찬’이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음식점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물어본다. ‘김미’는 이 음식점 사장의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최선을 다하여 음식을 만든다는 뜻일 게다. 그리고 ‘애찬’이라고 한 것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붙인 거란다.

음식점의 실내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시골 향토시장 안에 있는 음식점이라서 얼마나 대단하랴 싶었다. 그런 예상이 무참히 어긋난다. 실내가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이다. ‘맛’이 아니라 ‘멋’을 취재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하긴 맛과 멋의 경계가 어디에 있더란 말인가. 맛 속에서 멋이 자라고, 멋 속에 맛이 박혀있지 않던가. 그래서 맛과 멋은 하나다, 라고 말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음식을 담는 접시들도 예술적인 느낌을 풍긴다. 김미 사장이 서울에 올라가서 직접 골랐다고 하는데, 투박한 질그릇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풍기고 있다는 게 이채롭다.



***오늘 나는 예술을 먹는다

연밥정식 상이 차려지기 시작한다. 엄나무와 녹차장아찌, 황기와 당귀 그리고 감초 소스로 맛을 낸 잡채, 꼬막무침 등의 반찬이 시각과 후각을 깨워준다. 특히 사과와 두부 으깬 것 그리고 유자와 매실 원액으로 맛을 내고 들깨 향이 은은하게 번지도록 만들어놓은 야채샐러드가 별미 중의 별미다.

상 위에 고기반찬은 전혀 없다. 육류나 어류 반찬이 빠진 자리에 콩으로 만든 ‘콩고기’가 대신 버티고 앉아있다.

곧이어 연밥이 나오면서 상차림이 완료된다. 연잎의 청아한 향기가 벌써부터 후각을 건드리고, 다른 음식점의 같은 듯 뭔가 다른 반찬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밥정식을 먹는 게 아니라 예술을 먹는다. 밥에 스며든 연잎 향기가 입안에 번지고, 반찬에서는 매실과 유자 그리고 들깨 향이 개울물처럼 흐른다.

김미 사장이 다가와서 직접 만든 음식에 대해서 소개한다. 모든 식재료는 우리 농산물이란다. 게다가 제철 농산물을 사용하며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건강음식이라고 한다.

연밥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본다.

“찹쌀을 두 시간쯤 불린 다음에 밤과 대추 등을 함께 넣고 솥에서 쪄요. 그리고 연잎으로 싸서 십 분 내지 이십 분쯤 다시 찐 다음에 손님상에 내놓습니다.”

반찬 없이 연밥만 먹어도 충분할 것 같다. 견과류를 반찬 삼으면 되기 때문이다. 또 찹쌀을 찔 때 소금을 약간 넣었는지 간도 잘 맞는다.



***맛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연밥을 먹으면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나온 몇 구절을 떠올린다.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 장만하지 마라/ 닻 올려라 닻 올려라/ 푸른 삿갓 쓰고 있다. 옷은 가져 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연밥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전하기 위해 연자를 몰래 넣은 연밥을 선물로 보냈다. 남자가 연밥을 먹으면서 연자 탓에 맛이 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런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대를 사모하는 괴로움이 크다는 심정을 알리고자 했습니다”라고 여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음식의 맛은 식재료가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같은 식재료라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의 품격이 달라진다. 김미 사장은 우리 농산물로 참맛을 낼 줄 알고,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원광디지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남도음식 일반부의 최우수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음식문화연구원과 한국푸드코디네이터협회가 주최한 제13회 대한민국향토문화대전 ‘2016국제탑쉐프그랑프리’에서 개인 대상과 단체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영예를 널리 떨쳤다.

멋도 그러하지만 맛도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맛과 멋 기행’은 이 음식점을 취재하는 것으로 마치고 싶다. 그런데 보성이 얼마나 보배로운 땅인가.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보성지역의 중요민속자료를 둘러보려고 길을 또 떠난다.




***양반의 품격을 갖춘 고택들

보성읍 옥암리에는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58호(이범재가옥)와 제163호(이용우가옥)가 있다. 또 민속자료 제15호(이종선가옥)도 근처에 있다. 조그만 마을에 세 군데에 달하는 민속자료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옥암리에는 우리의 역사와 추억이 함초롬히 젖어있다. 고택들뿐만 아니라 낮은 뒷산의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도, 고샅길의 돌멩이도, 당산나무 우듬지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까치집도 우리의 역사요 추억이다.

마을 어귀에는 효자문과 정자가 있다. 이범재가옥을 찾아간다. 우측 편에 따로 있는 사당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ㄱ자형으로 거대하다. 그리고 대숲에 둘러싸여 아늑한 멋을 풍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하지만, 양반의 품격을 제대로 갖춘 고택임에 틀림없다.

이용우가옥의 안채는 ㄷ자형인데 날개가 뒤란으로 내민 특이한 구조이다. 이런 구조는 남해안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안채 옆에는 어른의 키 높이에 달하는 뒤주가 있어서 이곳이 지주의 집이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안마당 동쪽의 돼지우리에 눈길을 끌린다. 안채, 사랑채, 헛간채 모두 기와집인데 그 돼지우리만 볏짚으로 삿갓처럼 덮여있다. 전통적인 구조기법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고택들뿐만 아니라 돼지우리도 예술적이다.

비어있는 돼지우리의 판자문이 살짝 열려있다. 고개를 들이밀고 안쪽을 살펴본다. 이젠 추억 뒤란으로 물러가버린 주둥이가 길고 체질이 강건한 토종 흑돼지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테다.

박혜강(소설가·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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