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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콘텐츠, 글로컬 시대 이끈다' 3. 로컬의 힘 이탈리아
입력시간 : 2016. 11.29. 00:00


시간이 빚어낸 '로컬브랜드' 세계 최고 자부심으로

첨단 글로벌 시대 불구 '로컬 생태계' 유지

지역 생산 재료로 만든 제품 해외까지 진출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발딛기 어려워

터전 '고향'에 자부심, 나라 지탱하는 저력

이탈리아만큼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6년전 철수한 후 지금까지 재개점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렇고,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86년 로마의 유서깊은 스페인광장에 '패스트푸드'(Fast Food)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생겨나자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이 시작된 것도 그렇다.

이탈리아인들은 또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이나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런 지역애는 자긍심과도 바로 연결된다.

실제 이탈리아는 지방 소도시나 시골 작은 마을의 상점 어느 곳에서나 로컬푸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철과일이나 야채 뿐만아니라 가공된 식재료들도 대부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권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로컬'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터전이며 자부심이자 나라를 지탱하는 저력인 셈이다.

지구촌이 너무나도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여전히 '로컬생태계'를 유지하며 '글로컬'의 사례를 제시하는 이탈리아를 들여다본다.



# 지역이 만든 건강 '슬로우푸드'

달팽이 로고만으로도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슬로푸드'은 단순히 건강을 넘어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기업에 밀려 희생당하는 생산자들을 위한 공정한 거래와 글로벌이라는 미명아래 사라져가는 전통음식의 계승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공유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

건강한 식재료로 적당한 조리과정을 거친 음식을 식탁에 앉아 다양한 맛을 음미하면서 먹자는 슬로푸드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유서깊은 스페인광장에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문을 열자 충격을 받은 이탈리아인들이 이에 반해 시작한 먹거리운동이다.

슬로푸드운동 창시자이자 현재 슬로우푸드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카를로 페트리니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가 아닌 자신의 고향이자 인구 800명에 불과한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작은 마을 브라를 택했다.


이유는 브라의 음식이 맛있고 깨끗하고 비교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역시 '로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후 슬로푸드운동에 동참하는 나라가 늘면서 1989년 국제조직인 슬로푸드협회가 구성됐으며 30년 동안 가입국은 150개국, 회원은 10만명을 넘어섰다.

'맛있고' '건강하고' '공정한 거래' 등 3가지를 철학이자 선정기준으로 유지하며 이탈리아를 비롯해 각 지역별, 나라별로 슬로푸드를 선정하고 그것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책자를 만들어 확산시키고 있다.

또 2년마다 슬로푸드축제를 열어 많은 이들이 건강한 음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올해도 토리노에서 5일 동안 열린 축제에 전 세계에서 100만명이 다녀갔다. 내년에는 협회 설립 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슬로푸드축제가 열릴 예정이어서 협회측은 패스트푸드 일색인 미국의 식문화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고무적인 분위기다.



# 슬로우푸드의 미래 '미식과학대'

카를로 페트리니가 슬로푸드운동을 펼치며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미래다.

전통음식이 중심인 슬로푸드를 유지, 전승시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04년 브라에 설립된 곳이 미식과학대(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UNISG)다.

이곳은 먹거리에 대해 공부하는 곳이다.

슬로푸드운동의 철학인 맛있고, 건강하고, 공정한 과정을 배우고 실천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은 요리학원처럼 조리법만을 배우지 않는다.

각 식재료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그것들을 생산하는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건강한 재료들을 선별해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조리과정도 배운다. 세계적인 미식가이드인 미슐랭에 선정된 쉐프들이 이곳을 찾아 학생들에게 조리법을 알려주고 그들을 위한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 가업을 잇는 사람들

이탈리아인들은 가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부모들이 일궈놓은 생업을 물려받아 확장해나가는 이들이 많다. 슬로우푸드협회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업체들 역시 가업을 이어받은 곳이었다.

토리노 시내에 자리한 파스타 전문 생산유통업체 파스티피치오 볼로네제(Pastificio bolognese)는 1949년 할아버지가 창업 후 아버지를 거쳐 현재는 손녀인 크리스티나 무짜렐리 대표와 동생까지 3대를 이어온 회사다.

현대식으로 기계화된 공장에서 20여명의 직원들이 95가지의 파스타를 생산해 이탈리아 전역과 다른 나라로 수출한다. 하루 생산량은 1천200㎏, 연매출은 150억원이다.

아버지와 두 딸 그리고 사위까지 모두 공장에 근무하며 아이들에게도 가업을 이어주려 계획중이다. 이 곳 역시 파스타의 주재료인 밀가루는 물론 대부분의 재료를 신선한 로컬 제품으로 지역에서 구입해 가공한다.

같은 토리노에 자리한 다모소카페도 1948년 문을 연 이후 2대째 운영중인 상점이다.

자신들의 성을 간판으로 내걸고 현재는 가업을 이어받은 다모소 형제가 신선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 판매하는 로컬카페다.

품질이 좋은 생두를 직접 볶아 만든 커피원두에 최근에 등장한 캡슐커피까지 다양한 상품개발로 해외까지 진출하며 연 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여평 남짓한 작은 카페 한켠에는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는 기계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으며 간간히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 들려 2~3개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이어진다.

다모소카페 역시 동네 어귀에서 오랜 기간 변함없이 이어져온 이탈리아 특유의 진한 커피맛을 유지하며 늘 지금처럼 이어질 글로컬 브랜드인 셈이다.

토리노 외곽에 위치한 발비아노 와이너리도 1941년부터 3대째 운영중인 로컬업체다.

내부에는 현대식 최신시설을 갖췄지만 외관은 옛 것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현재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루까 발비아노(34)는 법학을 전공한 젊은 귀농인이다.

이곳의 와인은 특별하다.

여왕의 품종이라는 레지나포도를 비롯해 포도밭이 시내에 위치해 품질과 당도가 월등히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4천병만 생산되는 한정판 포도주는 자신들이 직접 판매처를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신들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시내에 포도밭을 보유한 와이너리 3곳이 협약을 맺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루까 발비아노는 자신의 가업에 대한 애정과 프라이드가 상당했다.

루까 발비아노 씨는 "법학을 전공했고 아버지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했지만 고향에서 직접 생산한 좋은 와인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와이너리가 좋아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며 "직접 수확한 포도를 일정기간 숙성시켜 탄생한 시간이 빚어내는 와인을 알리고 전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맛있고 깨끗하고 공정해야"

슬로푸드협회 파올로 디 클로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맛있고 깨끗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지난달 이탈리아 브라에 있는 슬로우푸드협회에서 만난 파올로 디 클로체(46)가 전한 슬로우푸드의 철학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쉽지 않아진 것이 요즘의 먹거리다.

클로체는 "음식은 무엇보다 먹었을 때 맛이 있어야 하고 건강에도 좋아야 한다"며 "건강하지 못한 음식은 질병을 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또하나 중요한 것은 공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재료들이 생산자들에게서 소비자들에게 오기까지 어떻게 생산됐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생산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았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로우푸드'(Slow Food) 운동이 시작된 이유이자 선정기준 그리고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클로체는 "슬로우푸드는 유지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며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들을 전승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떠나서 자기가 먹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 한다"며 "슬로우푸드협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에 대해 교육으로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로체는 한국음식에 대한 애정도 전했다.

클로체는 "전 세계에 150개국이 슬로우푸드협회에 가입돼 있는데 아시아권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며 "한국은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비율이 낮으며 특히 사찰음식이나 비빔밥은 정말 맛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글로벌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며 "김치는 한국음식이지만 이제는 중국에서 제조해 수출하는 것이 더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클로체는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대표적인 글로벌 음식"이라며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글로벌의 폐해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음식의 중요성은 나눔"이라며 "그런 나눔이 슬로우푸드의 철학과도 잘맞는다"고 웃음지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미역, 청국장, 떡 같은 좋은 음식들을 지켜야 한다"며 "이런 건강한 음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먹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주기자


이윤주기자 zmd@chol.com        이윤주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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