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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18:언어의 첨단과 저변 下 - 거시기와 기승전결 그리고 푸른길공원 흙산정
입력시간 : 2016. 11.14. 00:00


"문화의 시대…깊이·넓이 동시에 지향·개척하는 길 절실"

언어의 존재에 대해서

범대순 시인만큼

한 생을 다해 파고든

시인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는

언어의 첨단을 시인은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라고 부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지칭할 때 쓰인

암시적인 말이라는 해설도 있다



광주를 처음 찾은 이가

광주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나는

‘푸른길공원’을 추천해 주고 싶다

문화의 향기는 바로

이런 곳에서 맡아야

영혼에까지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길을 대표하는 명소로

‘시인의 집’ 하나 오롯이 자리하는 것,

‘문화중심도시’에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나선의 언어

사람을 만나보면 깊게 아는 사람은 두루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두루 두루 아는 사람의 깊이는 그만그만한 것 같다. 높아지거나 깊어지면서 넓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천재를 앞자리에 호출했던 시대에는 깊이를 강조했고, 천박한 자본의 논리는 ‘아무 데라도 들이대는 것’을 장려한다.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오늘에는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지향하고 개척할 수 있는 길이 절실하다. 우주의 섭리, 가령 나선 우주는 거의 무한으로 넓어지는 힘으로 솟구친다. 솟구쳐 오르는 힘이 너무도 커서 한 줌 우주가 ‘창조의 기둥’에서 떨어져 나온다. 거대한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는 것이 소리를 품고 있는 소라껍질이다. 인간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이 태양의 빛으로부터 온 것이다. 의식주, 모두 태양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거의 유일한 것이 있다. 바로 ‘언어’다. 언어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아마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거시기

언어의 존재에 대해서 범대순 시인만큼 한 생을 다해 파고든 시인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는 언어의 첨단을 시인은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라고 명명한다. 김준태 시인은 이 거시기를 ‘어느 것을 특정적으로 부르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을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지칭할 때 쓰인 암시적인 말’이라고 해설한다.

전라도는 ‘거기시 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다.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대화가 소위 ‘거시기 대화’이다. 한 동네에 살며 거의 대부부의 일들 서로 나누는 사람들만이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거시기서 거시기 헌 담서?’ ‘긍께 나도 거시기가 벌써 거시기 헐 줄은 몰랐제!’

남도 사람에게는 너무도 친근한 ‘거시기’를 범대순 시인은 우주적으로 솟구쳐 오르게 한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나라도 짊어지것다.

새인봉도 짊어지것다.

무등산 지리산 백두산도 짊어지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세계도 지구도 짊어지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태평양도 건너가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남극까지 고래같이 건너가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수평선도 말아먹것다

수평선을 실타래같이 감아서 잡아먹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사하라사막도 순식간에 기어가것다.

모래 산 바위산을 밀고 가것다

거시기가 고만하면

오아시스도 말려버리것다.

화날 때 사막의 모래를 다 불어버리것다

밤도 해로 만들것다. 해를 별로 만들고 은하수도 만들것다.

- 「거시기가 고만하면」,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다'



‘거시기’는 의미가 정해지지 않아서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모호하고 애매한 것은 이렇게 ‘최대치의 자유’가 되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우리는 ‘인간은 위대하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Something)다.’라는 착각과 오만 속에서 산다. 우주를 아주 잠시만 상상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Nothing)의 존재다. 여기에 하나의 아포리즘이 나선의 첨단처럼 솟구친다.


‘나는 바보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바보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야!’.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특별함(Something)을 넘어서는 ‘거시기(Nothing)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 ‘땅’, ‘태양’, ‘별’, ‘천둥’, ‘우주’, ‘너희들’과 나란히 더불어 있는 비존재이다. 거기시인 나는 이런 특별한 것들, 우주적인 것들도 지나쳐온 것으로서 거시기(Nothing)인 것이다.



기승전결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문학인들은 유럽인들을 목표로 문화의 저변을 확장하고자 했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우리가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문화’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시를 짓는 민족, 소월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이 ‘격조시형’에 천착했던 것도 맥락을 함께 한다.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르고 범대순 시인은 ‘기승전결’을 들고 나온다. 1993년에 나온 시집 '기승전결'에 ‘기승전결은 위대한 사상입니다. 이것은 철학이며 종교이고 과학입니다. 만일 문학이 이 사상을 잘 표현한다면 그 문학은 위대한 문학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기승전결'에 담겨 있는 시들은 대부분 두 겹의 ‘기승전결’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은 4행의 기승전결로 구성되고, 이렇게 4개의 연이 기승전결로 배치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룬다.



지리산 화엄사 사 사자지

종소리 한 가닥은 노고단에 오르고

다른 가닥은 골에 따라 섬진강에 든다.

범종 소리 앞서 해도 서로 가고 있다.



소리는 지면서 다시 돌아와 일고

소리는 일면서 다시 돌아 멀리 갔다.

산 석양 일고 자는 종소리 속에

시작이면서 맺는 끝을 같이 본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가야 나의 글머리에 닿느냐

글머리이면서 다시 이는 종같이

겨울을 가다 다시 이는 소리로 살 수 있으랴.



석양 화엄사 사 사자지에 서서

산과 같이 일고 자는 범종 멀리

어디선가 동이 트는 새벽을 본다.

아, 당신의 기승전결을 본다.

- '사 사사지(四 獅子지(址))'



단순한 넓이가 아니라 품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1연에서는 두 가닥의 종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간다. 2연의 소리는 빛과 같아서 사방에 사방을 더해 팔방을 이룬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히 품속에서 우리는 소리와 빛과 마음을 모아 ‘기승전결’의 마음 하나를 새롭게 품게 되는 것이다.





푸른길 공원과 시인의 집

광주를 처음 찾은 이가 광주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나는 ‘푸른길공원’을 추천해 주고 싶다. 광주 바깥으로는 무등산도 있고, 멀리 망월동도 있다. 안으로는 휴식과 삶이 함께 하는 사람이 곧 길인 푸른길공원 20여 리가 나선의 한 줄처럼 펼쳐져 있다. 8.9㎞ 푸른길 공원, 세상에서 제일 긴 공원으로 기네스에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푸른길 공원이 시작되는 점에서 무등산 쪽을 보면 오른 편 둔덕 위에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 서 있다. 이 둔덕을 예전에는 ‘흙산’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흙산의 가운데 부분에 우듬지가 잘린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품고 있는 집이 한 채 있다. ‘흙산정’이라 불렸던 곳이다. 범대순 시인이 생전에 60여 년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영미시를 전공하신 선생은 유럽을 돌아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문학관의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관(官)이 주도하는 우리나라의 문학관이라는 것은 외피는 그럴듯하지만 시인·소설가의 삶을 생생하게 몸소 느껴볼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읽고, 시를 쓰던 자택의 2층을 그대로 살려 방문객을 맞는 ‘시인의 집’을 정성을 다해 꾸려 놓고 가셨다.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어 찾는 이가 드물지만, 한 생을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정말 드물고 귀한 장소이다.

문화의 향기는 바로 이런 곳에서 맡아야 영혼에까지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푸른길공원, 이 아름다운 길을 대표하는 명소로 ‘시인의 집’ 하나 오롯이 자리하는 것, ‘문화중심도시’에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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