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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14> 광주 1913송정역시장의 ‘한끼라면’
입력시간 : 2016. 10.28. 00:00


서민들의 애환 담긴 세계의 라면 한자리서 맛본다

가게의 내부가 단아하다. 좁은 공간임에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실내장식을 했고, 공간을 잘 살려 식탁을 배치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 벽면에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단기간에 제법 명성을 얻은 듯싶다.

쇼유라면이 나온다. 라면 그릇과 함께 만두를 담은 접시도 놓여있다는 게 특이하다. 곽현지 사장의 설명처럼 맛이 무난하다. 후쿠오카에서 먹어 봤던 생라면은 호감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이 쇼유라면은 우리 라면의 일반적인 맛에 비해 담백하고 깔끔해서 은근히 끌린다. 분명코 ‘서민의 맛’이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돈이 절대가치라며 자본의 노예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은 ‘돈만 있으면 두억시니(귀신)도 움직일 수 있다’는 속담을 믿는다. 그런데 이런 속담은 돈이 위대하다는 것보다 돈의 부정적인 면을 비웃고 있는 게 아닐까?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느라 상처받았던 마음을 진정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은, 응어리진 한을 녹여주고 치유해주는 것은 자본만으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힘든 세상을 여태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예술을 보듬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이해하고 돕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씨이다. 예술은 문화의 고갱이(핵심)며, 그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복무하면서 소통과 치유의 기능이 있다.



***이 가을에 사랑하고 싶다

오늘은 ‘돈’이라는 괴물과 전혀 차원이 다른 ‘사랑과 예술’이라는 맛과 멋을 찾아서 광주시 광산구 송정리로 간다. 그곳에 가면 국창 임방울(임승근)의 생가 터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임방울의 힘 있고 풍부한 ‘천구성’과 곰삭은 ‘수리성’에 흠뻑 젖어볼 요량이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행하신가./ 황천이 어데라고 그리 쉽게 가럇던가./ 그리 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임을 하직코 가셨지만/ 시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오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보리오. <하략>



임방울이라고 하면 <춘향가> 중의 ‘쑥대머리’를 제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다. 가을에 푹 젖어있는 지금 나는 그의 애절한 사랑이 담긴 <추억>이라는 소리[唱]를 듣고 있는 중이다.

임방울이 사랑했던 김산호주라는 여인은 황천에서도 서운함이 전혀 없었을 테다. 임방울은 장밋빛 피를 토해내며 독공(판소리 가객이 득음을 위해 토굴이나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 연습)을 했다. 그렇게 벼린 목청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한을 어루만져주곤 했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추억>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주었으니, 김산호주에게 무슨 한이 남았겠는가.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수단”이라고 했다. 임방울이 예술을 몰랐더라면 ‘사람과 사람’ 더 나아가서 ‘사람과 혼(김산호주)’이 하나로 아우러지게 만드는 소리[唱]를 할 수 있었을까.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 679번지. 임방울 생가 터.

골목에는 판소리 벽화가 그려져 있고, 생가 터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았다. 하지만 이영민의 <벽소시고>라는 시조의 시구에서 “소리마당 문득 극락세계와 흡사해(樂壇輒似蓮花界)”라고 읊었던 것처럼, 내 눈에는 연화계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창 임방울의 생가 복원사업과 기념관 건립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생가 터를 뒤로 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그의 마음 하나 훔쳐온다.

나도 이 가을에 사랑하고 싶다. 미치도록, 피를 토하도록 사랑하고 싶다. 사랑만이 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줄 묘약이다.



***1913송정역시장이 뜨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송정리’라는 지역은 있으면서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송정리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바로 여기라고 대답한다.

전국에 ‘송정리’라는 지명이 흔하게 널려있다. 그런데 한자를 살펴보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한자가 소나무 송(松)과 정자 정(亭) 자이다. 이곳 광산구 송정리는 소나무 송(松)과 물가 정(汀) 자를 쓴다. 그건 영산강과 황룡강이 이 지역을 에돌아 흘러가기 때문에 생겨난 지명일 듯싶다.

임방울 생가 터 근처, 송정역 맞은편 골목에 장이 섰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이름이 약간은 특이한 ‘1913송정역시장’이다.

호남선 송정역은 1913년에 ‘송정리역’이라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1913송정역시장도 같은 해에 문을 열었던 듯싶다.

이 시장은 2001년 광주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광주의 재래시장》이라는 책에 소개되지도 않을 만큼 아주 소규모였다. 그런데 송정역에 KTX가 정차하게 되면서 상전벽해가 되었다.

1913송정역시장은 눈대중으로 3백여 미터에 달하는 직선 골목으로 되어있다. 좌우로 빼곡하게 들어선 가게들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고나 할까.

간판들도 제각기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상호도 예전의 ‘상회’라는 단어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다거나, <느린먹거리>, <갱소년>, <더채소>, , <밀밭양조장>, <한끼라면> 등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읽고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업종도 무척 다양하다. 빵집, 추억의 과자를 판매하는 집, 국밥을 위시한 식당, 특허를 직접 냈다고 하는 ‘삼뚱이(삼겹살+야채+김치)’라는 특이한 음식, 국수집, 어물전, 의상실, 사진관 등등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말해도 된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무척 붐빈다. 서울의 모 방송국도 취재 중이다. 취재를 하고 사진 촬영을 하던 내가 졸지에 그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사진 촬영을 당하고 인터뷰까지 부탁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세계의 라면 가게인 <한끼라면> 맛집에서

취재도 좋고 구경도 좋고 인터뷰도 좋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또 맛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먹거리가 워낙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할지 망설이다가 세계의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한끼라면> 가게를 선택한다.

가게 윈도우에 진열된,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라면 봉지들이 눈길을 끈 것일까? 아니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국창 임방울의 판소리에서 서민의 동반자인 라면이 연상된 것일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인 판소리도 서민의 한을 풀어주었고, 라면 역시 서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음식이 아니던가. 아마 그런 이유로 발길이 끌린 듯싶다.

<한끼라면> 가게의 내부가 단아하다. 좁은 공간임에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실내장식을 했고, 공간을 잘 살려 식탁을 배치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 벽면에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단기간에 제법 명성을 얻은 듯싶다.

“제일 많이 팔리는 라면으로 한 그릇 주세요.”

곽현지 사장이 일본 ‘쇼유라면’을 권하며 판매 순위 1위라고 한다. ‘쇼유’는 일본식 간장이다. 나는 세계의 라면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수년 전에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서 생라면을 맛보았던 게 전부이다. 일단 사장이 권하는 대로 쇼유라면을 택하고, 그게 제일 잘 팔린 이유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마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맛 때문일 거예요. 우리들의 입맛에 무난하거든요.”

잠시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쇼유라면이 나온다. 라면 그릇과 함께 만두를 담은 접시도 놓여있다는 게 특이하다. 곽현지 사장의 설명처럼 맛이 무난하다. 후쿠오카에서 먹어 봤던 생라면은 호감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이 쇼유라면은 우리 라면의 일반적인 맛에 비해 담백하고 깔끔해서 은근히 끌린다. 분명코 ‘서민의 맛’이다.

어떤 모자가 건너편 테이블에 다정히 앉아서 볶음라면을 먹으려고 한다. 라면 이름을 물어보니, 사내아이 앞에 놓인 것은 인도네시아의 ‘미고랭라면’이라고 한다. 사진 한 컷 촬영한다.

라면에 대해서 추억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깃거리도 많다. 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한다. 세계의 라면을 일일이 다 맛보고 싶지만 그것 역시 차후 일이다.

세계의 라면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한끼라면> 가게에서 국창 임방울의 구성지며 애절한 소리,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 보고지고……”가 면발처럼 늘어지고 있는 듯하다.소설가. 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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