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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 (14)대축-원부춘
입력 : 2016년 10월 21일(금) 00:00


운무는 오를수록 짙어가고 길손은 서투른 술래가 된다
최참판의 허망한 가치와는 달리 평사리 들녘은 변함없는 생명의 가치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가을의 들녘은 절정에 이른 황금빛으로 물들어 풍요롭고 또 장엄하다.
길에는 설익은 채 떨어진 감들이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땅에 떨어져서도 홍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낙과의 열망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경계를 넘듯 어느 순간부터 운무는 확연히 짙어지고 키 큰 나무들이 숨바꼭질하는 숲에서 길손은 서투른 술래가 된다.
형제봉 마루에 다가서고 있음이라.
‘토지’의 최 참판 댁 별당 아씨가 구천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숨어들다 이 길 어디쯤, 바위 턱에 앉아 가뿐 숨을 내 쉬지 않았을까 싶다.
대축마을 앞 축지교에서 평사리 들녘을 향해 가는 길에 맞은바라기로 보이는 백운산 자락의 운무가 이른 아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노랗게 물든 평사리 들녘이 비이슬을 머금은 채 기지개를 켜고, 마을로 내려왔던 산안개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있다. 대축마을 ‘들꽃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출발한 길이다.

지리산 산간마을엔 밤새 비가 내렸다. 비는 유리창을 두드려 길손을 깨우고 산안개는 마을앞 개울에서 뒤척였다. 다행히 새벽녘부터 비는 갰다.

길은 민박집 건너 축지교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축지교 아래로는 시루봉에서 발원한 악양천이 흐른다. 흐르는 물은 섬진강에 닿기 직전 긴 호흡을 고르며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길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듯 등 돌리고 제 갈 길로 가지만 입석마을에서 재회한 뒤 형제봉을 넘는다. 평사리 들녘을 거쳐 ‘최참판댁’ 앞을 지나 입석마을로 가는 길은 백운산을 맞은바라기 삼아 9시 방향으로 가고, 강둑을 타고 입석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지리산 능선을 보며 3시 방향으로 발길을 튼다.

평사리 들녘을 거쳐 입석마을로 가는 길은 10리길이다. 강둑길을 이용하여 입석마을로 가는 길에 비해 두 배 가량 멀다. 지난해 강둑길을 타고 입석마을을 거쳐 형제봉을 넘었던 만큼 이번엔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평사리 들녘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가는 길에 소설 속 최치수를 만나거들랑 “그토록 외롭고 깐깐하게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더냐”고 물어 볼 심사다. 최참판의 허망한 가치와는 달리 평사리 들녘은 변함없는 생명의 가치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평사리 들녘은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무딤이들’이라고도 부른다. 끝없이 펼쳐진 가을의 들녘은 절정에 이른 황금빛으로 물들어 풍요롭고 또 장엄하다.

지리산 남부능선과 백운산이 강강술래 하듯 둘러싸고 있는 평사리 들녘은 섬진강 500리 물길이 부려놓은 가장 너른 들이기도 하다. 83만평이라고 하는 수치는 평사리 들녘을 드러내는데 오히려 초라하고 타인처럼 낯설다.



풍요롭고 장엄한 평사리 들녘



축지교에서 강둑길을 타고 백운산 방향으로 가던 길은 곧바로 평사리 들녘의 논길로 들어선 뒤 동정호에 닿는다. 벼들은 실하게 익어 추수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나락이 익어가는 동안 태풍이 비껴가고 일조량이 풍부해 여느 해 못지않은 대풍(大豊)이다.

하지만 ‘풍년’의 단어는 넉넉함의 상징에서 내려온 지 오래다. ‘과잉생산’이라는 천덕꾸러기로 변해 ‘농민의 시름’과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다. 풍년의 아픔에 고향의 노모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흉년보다야 더 하겠는가 싶다.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농부의 땀방울에 감사할 일이다.

감사함을 아는 이들이 들녘에 허수아비로 섰다. 허수아비들은 마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들녘으로 나와 풍년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무리속의 더벅머리 허수아비 총각과 연지·곤지 찍어 바른 허수아비 처녀가 방글 상글 웃음을 주고받는다. 기념촬영을 하던 관광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여민 마음으로 시간이 주는 축복을 본다.

들녘 한가운데에는 키 작은 잡목 숲이 섬처럼 자리한 곳에 소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우뚝 서있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모델인 부부송이다. 노란 들녘과 푸른 소나무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허수아비들이 축제를 벌이는 논길을 따라 걷다보면 평사리 들녘의 끄트머리에서 동정호와 만난다. 동정호는 자연 습지를 복원한 생태공원의 호수다. 부부송과 함께 평사리 들녘의 가치를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명인 ‘악양’이나 ‘동정호’는 중국 악양의 소상팔경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설이 현실이 된 최참판댁

길은 지방도가 지나는 ‘최참판댁 정류장’으로 이어져 차도를 타고 입석마을로 향한다. 길 건너편은 정류장 이름의 ‘최참판댁’으로 가는 어귀다.

소설이 현실이 된 최참판댁은 이른 시간인데도 꽤나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객들의 발길에 맞춰 옷 가게며 기념품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고, 약초며 산나물을 파는 노점상의 손길도 바빠진다.

양파 그물망에 수확한 밤을 담아 길가에 쌓아놓고 팔던 할머니 한 분이 맛보고 가라며 생밤을 깎아 내민다. 갈 길이 멀어 배낭의 짐을 줄여야 하지만 할머니의 손등에 보굿처럼 새겨진 세월의 주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1만원을 주고 2포대를 샀다. 할머니가 가진 삶의 무게가 내 등으로 옮겨왔다.

내가 물었다. “햇밤이 참 실하고 맛있습니다.” 할머니가 답했다. “아흔이 다 됐어. 죽을 때 지났지 뭐…” 내가 다시 물었다. “할머니께서 농사지은 거예요?” 할머니가 대꾸했다. “이거 팔아서 약값 해!” 귀가 먼 할머니와 나는 동문서답으로 통했다. 할머니가 웃고 내가 따라 웃었다.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 등을 둘러본 뒤 내려오는 길에 문을 연 커피숍이 보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길에서는 따뜻한 커피 한 잔도 큰 호사다. 커피숍 2층 발코니에 앉으니 지나왔던 평사리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축마을이 보이고 노란 들녘 가운데에 자리한 부부송 너머로 멀리 섬진강도 자태를 드러낸다.

최참판댁에서 시간 남짓 보낸 뒤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데 박경리문학관에 전시됐던 낡은 만년필과 닳아진 우리말 사전, 몇 번씩이나 고쳐 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토지’ 친필원고 등의 잔영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언젠간 다시 ‘토지’에 들어가 서희와 길상이도 만나고 용정의 월선이네 국밥집에도 들려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홍시의 꿈으로 깊어가는 가을



지리산둘레길이 이어지는 ‘최참판댁’정류장에 다시 서니 시간은 오전 10시30분을 지나고 있다. 찻길을 따라 10여분쯤 걸어 길은 대촌마을의 악양농협 앞에서 마을 깊숙이 들어선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행사장에 동원된 군중처럼 무심히 손을 흔들고 있다.

삼화실에서 대축으로 이어지는 길이 밤나무 길의 연속이라면 대축에서 원부춘 구간은 감나무 길의 연속이다. 길에는 설익은 채 떨어진 감들이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더러는 선홍빛 속살을 드러낸 채 부서진 몸으로 가을 햇살을 받고 있다. 땅에 떨어져서도 홍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낙과의 열망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길은 ‘최참판댁’ 정류장에서 출발한 지 1시간쯤 걸려 입석마을을 지나 형제봉으로 향한다. 입석마을은 신석기 시대의 선돌(立石)이 남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풀막진 산길엔 간밤의 비로 단풍이 되지 못한 푸른 잎들이 뒹굴고, 늙은 서어나무는 군락을 이뤄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위병처럼 따른다. 서어나무의 하얀 뿌리는 맹수의 발톱처럼 대지를 파고들고 있다.

걷는 내내 희뿌연 운무로 그윽한 산길은 시간이 지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농도를 더한다. 제한된 시야를 파고드는 근접한 사물은 안개 속에서 포근했다. 경계를 넘듯 어느 순간부터 운무는 확연히 짙어지고 키 큰 나무들이 숨바꼭질하는 숲에서 길손은 서투른 술래가 된다. 형제봉 마루에 다가서고 있음이라.



별당아씨가 숨어든 길



입석마을에서 시간 반쯤 걸려 형제봉 재 마루의 갈림길에 올라섰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재넘이 바람이 서늘하다. 원부춘까지 3.7km를 남겨놓고 있다. 오른쪽은 형제봉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왼쪽은 고소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둘레길은 직진하다 오른쪽으로 형제봉의 북서면 능선을 휘감아 돈다.

산비탈에는 집 채 만 한 바위들이 다시 달릴 날을 기다리고 길 왼쪽은 곧바로 벼랑으로 이어지는 돌너덜길이다. 길섶의 조릿대는 허리까지 차오른다.

‘토지’의 최 참판 댁 별당 아씨가 구천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숨어들다 이 길 어디쯤, 바위 턱에 앉아 가뿐 숨을 내 쉬지 않았을까 싶다.

능선길은 1km쯤 가다 원부춘 마을을 향해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상수리나무로 수종이 바뀐 숲길은 너덜겅으로 이어졌다 끊기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다 계곡 하나 만나 동행한다. 숲 그늘 사이로 비추는 피자 한 토막만한 햇볕이 반갑다.

계곡을 내려오는 물소리가 점차 커져 갈 때 쯤 대축마을 민박집에서 함께 묵었던 일행을 만났다. 아침에 민박집에서 함께 출발한 뒤 최참판댁에서 헤어졌던 길이다. 서울 어느 소방서의 공무원이라는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 딸을 데리고 나선 2박3일의 가족 여행이라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 ‘서울 공무원’이 우거진 숲에서 으름을 발견했다. 아람벌어진 으름은 뽀얀 누에 성충같은 열매를 수줍게 내 보이고 있다. ‘광주 여행객’의 입안은 까만 씨 까지 씹어 먹은 탓인지 원부춘 마을에 닿을 때 까지 떨떠름함으로 가득했다.

원부춘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2시 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침 8시 반께 출발한 길이다.

“할머니, 하동읍으로 가는 버스는 몇 시쯤에 있나요?” 3시반에 하동행 버스가 이곳을 경유한다고 한다. 1시간을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10리길을 내려와 신기정류장에서 하동행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탄 버스는 다시 원부춘 마을을 들려 할아버지 한 분을 내린 뒤 하동으로 갔다.

길 안내

평사리 동정호 경유: 대축- 평사리 동정호(1.7km)- 대촌마을 악양농협(1.0km)- 입석마을(1.9km)- 서어나무숲(2.0km)- 형제봉갈림길(1.2km)- 묵답(2.3km)- 원부춘마을회관(1.1km) 까지 11.2km. 6시간가량 소요된다. 최참판댁을 둘러보는 시간은 별개다.

악양천 둑길을 이용하여 직행할 경우에는 대축마을에서 입석마을까지 2.2km이어진 뒤 원부춘으로 향한다. 1시간 가량 단축된다.

입석마을에서 형제봉을 넘는 길은 둘레길이라기 보다는 험준한 지리산 고개를 넘는 등산로에 가깝다. 지리산둘레길 가운데 성심원에서 운리로 가는 구간의 웅석봉 다음으로 난이도가 높은 구간으로 꼽힌다. 하지만 악양들녘과 지리산남부능선이 주는 정취는 단연 으뜸으로 높은 난이도가 주는 수고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입석마을과 ‘최참판댁’에서는 민박이나 한옥체험이 가능하지만 입석마을을 지나면 목적지에 닿을 때 까지 일체의 휴게시설이나 숙소가 없다.

들머리는 하동시외버스터미널(055- 883- 2663)에서 악양행 버스를 이용, 대축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아침 7시40분차를 시작으로 저녁 8시30분까지 매시 한 대씩 운행되며 소요 시간은 20여분. 원부춘에서 하동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오후 3시30분에 하루 한 번 운행한다. 택시를 불러 원부춘 마을 초입의 신기정류장이나 화개터미널로 간 뒤 하동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시민전문기자kanjoys@hanmail.net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