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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 16 : 시인 대통령, 대통령 시인의 ‘홀로 한 하야(下野)’ - ‘황지의 풀잎’ 박봉우 시인
입력시간 : 2016. 10.17. 00:00


분단된 하늘 아래 눕고 일어서고 나부끼는 '광목폭 깃발'

중·고등학교 때의

박봉우 시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시를 쓰던 모습보다는

‘축구’하던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그를 대단한 돌파력을 지닌

‘오늘쪽 날개’로 기억한다

축구선수로 나섰더라면

큰 성공을 거뒀을 지도 모른다



박봉우 시인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역사의 가장 큰 흐름과 함께 했다

이런 그의 삶을 스승인 김현승은

‘비단으로 만든 손수건’과는 무연한

‘광목폭을 찢어 만든 깃발과 같은 것’

이라고 평했다



아직도 ‘휴전선’

엄밀히 따지면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평화협정’이다. 남과 북은 ‘평화’의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정전’, ‘휴전’ 상태에 놓여 있다.

한창 무르익던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는 대결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위정자(爲政者)들의 섬뜩한 발언은 소름을 돋게 만든다. 다만 이런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시민 의식에서 그마나 역사의 진보를 읽을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당시에는 아무리 빼어난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시기가 지나면 ‘박물관’에 옮겨져 유물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나는 박봉우 시인의 시편들, 특히 '휴전선'이나 '나비와 철조망'과 같은 대표작들이 시평(詩評)이나 시평(時評)에서 물러나 ‘시문학사’에서나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오늘 새롭게 꺼내 읽은 '휴전선'은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발하고 있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휴전선 1연)



싸우는 자세로 멈춰선 채 각자의 ‘꽃’을 피우고자 최선을 다해 달려왔던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이렇게 핀 꽃은 ‘열매’를 기약하기 힘들다. 시인의 간곡했던 바람이 ‘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간절하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 어머니 시론

박봉우 시인은 1934년 광주 학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이자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그에게 어머니는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광주 서중에 입학해 '진달래' 동인을 결성하고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친다.

중·고등학교 때의 박봉우 시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시를 쓰던 모습보다는 ‘축구’하던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그를 대단한 돌파력을 지닌 ‘오늘쪽 날개’로 기억한다. 축구선수로 나섰더라면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다재다능했던 그는 언제나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지만, 그가 선택한 학과는 의외로 정치외교학과였다. 그는 정말 대통령을 꿈꾸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갈망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닿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재학시절에 '전남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목포로 취재를 갔다가 그곳 불량배와 시비가 붙는다. 이때 머리를 크게 다치는 불운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평생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된다. 세속적인 성공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시뿐이다. 그래서 그의 산문의 한 대목은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의 시론(詩論)’에 어긋날 때에 나는 변솟간에 들어가 네 개의 벽을 치고 통곡하며 부드러운 손에 피를 흘려보리…… (산문 '가난한 코리아의 어느 호텔에서', 시집 '4월의 화요일')



그에게는 현실과의 타협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작은 호사마저도 진실하지 못한 것, 곧 어머니의 시론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어머니의 시론의 요체가 궁금해진다.



‘나의 어머니의 시론과’

‘나의 어머니의 경제학’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이 막내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영 가신 나의 어머니의 영혼 앞에 두고 ‘시와 우정과 영혼의 대화’를 읽어 드리며 선사하오리다. (산문 '가난한 코리아의 어느 호텔에서')



그에게 어머니는 ‘전쟁을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태초의 휴식’(사미인곡)과 같은 존재이다. 또 '푸른 계절'은 ‘어머니 같은 이야기’이고, 시인이 ‘나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인류에 향하는 시론과 꿈과 사랑을’ 가장 먼저 종알거릴 수 있는 ‘목숨과도 같은’ 대상이 ‘나의 어머니’(창은)다. 그의 시는 절대적 존재인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런 어머니의 상실은 실하지 못했던 그에 정신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 홀로 ‘하야’

박봉우가 ‘신난곤난’한 서울 살이를 접고 남쪽으로 향한 것은 1975년이다. 남행을 결심하면서 작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광주였다. 그는 도중에 전주에 머물게 된다. 그를 아끼던 고교 동창이 전주 도서관에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무작정 광주로 향하던 길이었으니 잠시 전주에 머물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서울을 떠나면서 지은 시의 제목이다. '서울 하야식', ‘하야(下野)’라는 말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



이 못된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옥토를 지키는 것

봄은 오는데

긴 겨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랜 역사의 악몽 속에서

어서 깨어나 어서 깨어나

보리밭에 녹두밭에 석유냄새 토하며 쓰러질

서울 하야식

외진 남산 기슭의 진달래야

찬 북녘바람은 알겠지

소금장사

쌀장사

갈 곳도 없는

어서 서울을 떠나야지

서울을 떠나야지

- 서울 하야식-전문



박봉우는 ‘시인 대통령, 대통령 시인’, ‘노벨 문학상’의 꿈을 이루겠노라며 상경한 서울에서 대부분을 잃고, 육신의 병약과 정신의 깊은 상처만을 얻어 떠나게 되었다. 그것을 그는 ‘하야(下野)’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울 같은 것은 이제 시인이 버리는 것이다.



광목폭 깃발, 황지의 풀잎

지척에서 고향 광주를 그리며 그는 계속 전주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는 어떤 호구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80년 광주의 오월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그의 고통은 형언하기 힘들었다. ‘피바다가 되어도/ 피바다가 되어도/ 나는 바보처럼 웃고만 있었다/내가 가는/꼭/5월 어느 날 있을 것이/ 시인이 마땅히 죽어야 했는데’(광주)라고 쓰고 있다.

박봉우 시인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역사의 가장 큰 흐름과 함께 했다. 이런 그의 삶을 스승인 김현승 시인은 ‘비단으로 만든 손수건’과는 무연한 ‘광목폭을 찢어 만든 깃발과 같은 것’이라고 평했다.

38선 그리고 한국 전쟁과 휴전선, 4·19, 유신독재,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황지에서 그는 ‘황지의 풀잎’과 같은 삶을 자처했다. ‘조그마한 풀잎의 욕심으로/혁명을 모독하고/더욱 사랑하련다/혁명의 아침을……’(황지의 풀잎)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황폐가 공존하는 오늘, 황지의 풀잎은 광목폭 깃발은 오늘도 분단된 하늘 아래 눕고, 일어서고, 나부낀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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