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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 <13> 여수 구백식당의 서대회무침과 군평선이구이
입력시간 : 2016. 10.14. 00:00


여수 10味 중의 하나… 곰삭은 풍미에 '군침이 꿀꺽!'

서대의 등뼈만 골라내고 길게 썰어낸 살점 맛은 다른 횟감에 비해 찰기가 부족하고, 식감이 늘컹거린다고 표현하는 게 알맞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회보다 무침으로 해먹는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대는 칼륨과 인이 풍부해서 혈압을 낮춰주고,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군평선이라는 생선은 본서방에게 주지 않고 불륜 관계인 샛서방에게나 몰래 주는 에로틱한 생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기 맛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군평선이를 한동안 씹어본다. 양념 맛이 벗겨지고, 불을 입힌 맛도 사라진다. 이젠 진짜 속살 맛만 오롯이 남는다. 이곳사람들이 영광 굴비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늘도 ‘맛과 멋 기행’을 떠난다. 그런데 승용차를 타고 달린다기보다 어깨 양쪽에 각각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날개를 달고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한희원 화백의 1983년 작품인 ‘여수로 가는 막차(캔버스에 유채)’ 그림 속을 유영하면서 여수로 향한다.

바로 그 ‘여수로 가는 막차’ 그림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설핏 떠올리게 만드는 수많은 ‘별’들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잘 모르긴 해도, 그 별무리들은 한희원 화백에게 ‘인간’ 즉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생(生)의 근원적인 문제들이요, 삶의 여정(餘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몰래 피어나는 밤꽃 같은 그리움으로 매달려있는 것일 테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그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점점 다가오고 있는 미지의 순간이나 실루엣으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모습들도 그리움에 함초롬히 젖은 채 가슴팍에서 부딪치며 낑낑대고 있다.




***한려수도를 마무리 짓는 여수 앞바다

여수(麗水)는 그 이름처럼 곱디고운 항구도시이다. 여수를 그토록 곱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힘은 앞바다에 떠있는 오동도, 돌산도, 장군도, 경도 그리고 거문도와 백도 등의 섬들일 것이다. 그 모든 섬들은 자태만 고운 게 아니라 그리움과 꿈에 함초롬히 젖은 채 바다 위에 별처럼 둥둥 떠서 한려수도를 멋지게 마무리 짓는다.

여수 앞바다의 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앞바다가 윤슬로 반짝인다거나 울긋불긋한 까치놀로 희번덕거릴 때면 부지불식간에 그런 기분 좋은 착각 속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대학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쯤이었다. 그때 나는 여수를 처음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버스에 탄 채 철부선에 올라 바다를 건넜다. 돌산도였다. 향일암이 그 섬의 끄트머리에 커다란 별처럼 매달려있었다. 그 별에 올라앉아서 먼 바다를 싫도록 바라보았다.

향일암에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 머리 속에는 ‘허벌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가 수평선을 바라본 첫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향일암1’과 ‘향일암2’라는 습작 시(詩) 두 편을 낳았는데 지금은 그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내 공부방의 책상과 책꽂이에는 여수 앞바다의 해조음(海潮音)이 질펀하게 널려버렸다. 지금의 내 서재에도 그날의 해조음이 여태 살고 있다.

오늘도 승용차를 탄 채 바다를 건넌다. 예전에 없던 거북선대교 덕분에 돌산도의 품에 편하게 안길 수 있다. 돌산공원의 해상케이블카가 매우 분주하다. 한 번쯤 타보고 싶지만 내 차례가 쉽게 오지 않을 듯싶다. 주차장이 만원이다.

돌산공원길 가장자리에 승용차를 잠시 정차해놓고 여수 앞바다를 내려다본다. 발아래의 돌산대교를 보면 소인국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섬 둘레(해안선의 길이)가 6백 미터인 장군도가 멋들어진 분재 작품처럼 보인다.

장군도 건너편, 여객선 터미널의 정문 근처에 오늘 찾아가야할 구백식당이 있다. 그리고 ‘서대회무침’과 ‘군평선이구이’라는 여수가 자랑하는 맛이 기다리고 있다.

곱디고운 항구에 취해 발바닥이 도로 위에 붙어버린다.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수는 한국의 나폴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젠 ‘나폴리가 이탈리아의 여수’다..




서대회가 아니라 서대회무침이다

여수시 여객선터미널길 18(교동). 구백식당(대표 : 손춘심).

충무공의 정신이 서려있는 진남관을 둘러보고 구백식당으로 간다.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비게이션의 능력을 빌리지 않아도 가능하다. 교동시장에 바투 붙어있어서 시장 골목의 식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점심때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불쑥 찾아와서 ‘맛과 멋’ 취재를 하겠다고 나서면, 주인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을 테다. 하지만 나는 벌써 열세 번째의 취재에 나섰기 때문에 이젠 얼굴이 제법 두꺼워져있다. 방으로 들어가서 앉으라는 것을 마다하고 식당 입구에 놓인 탁자를 고집한다.

입구 벽면이 너절하다싶을 정도로 ‘표창장’과 음식 경연대회에서 받은 ‘상장’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런 종이들은 뻐기고 있다기보다 구백식당의 오랜 연륜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까운 중앙동에서 25년간, 교동으로 옮겨와서 벌써 8년째나 식당 문을 열고 있다 하니 곰삭은 맛이 생기지 않을 턱이 없었을 것이다.

오랜 연륜만이 곰삭은 풍미를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주방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음식 맛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구백식당은 순춘심 사장이 주방에 직접 들어가서 조리를 하고 지도감독을 하고 있으니 그녀의 손끝에 맹물만 닿아도 곰삭은 맛이 피어날 듯싶다.

여수 10미(味) 중의 하나인 ‘서대회무침’이 나온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모내기철에 일꾼들의 점심밥을 지어 들녘으로 나가는 소쿠리 속에 서대회무침 반찬이 꼭 끼어있었던 듯싶다.

서대는 회로 떠서 맛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까 서대의 살점을 떠서 막걸리식초, 각종 야채와 함께 무쳐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와 무침을 따로 구별하지 않게 되었을 테고, 식당에 가서 서대회를 주문하면 으레 서대회무침이 상 위에 올라오곤 한다.

서대의 등뼈만 골라내고 길게 썰어낸 살점 맛은 다른 횟감에 비해 찰기가 부족하고, 식감이 늘컹거린다고 표현하는 게 알맞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회보다 무침으로 해먹는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대는 칼륨과 인이 풍부해서 혈압을 낮춰주고,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




샛서방고기를 아시나요?

서대회무침에 이어서 상에 오른 것은 그토록 고대하던 ‘군평선이구이’다. 이 생선 역시 여수가 자랑하는 열 가지 맛 중의 하나이며, 이곳사람들은 군평선이(딱돔)를 ‘금풍생이’이나 ‘금풍쉥이’라고 부른다. 때로 술기운이 거나해지게 되면 군평선이를 ‘샛서방고기’라고 말하면서 히쭉히쭉 웃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 ‘샛서방’을 찾아보면, 새로 얻은 서방이 아니라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편 몰래 관계하는 남정네를 일컫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군평선이라는 생선은 본서방에게 주지 않고 불륜 관계인 샛서방에게나 몰래 주는 에로틱한 생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기 맛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여자에게 샛서방으로 낙점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샛서방이 되려면 일단 여러 면에서 능력이 뛰어나야한다. 또 바람을 피우려면 모든 것을 각오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런 조건들을 갖추는 게 매우 어려운 법이다.

이젠 샛서방이 되어 군평선이 얻어먹기 힘들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수에 갈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그 좋은 때를 놓치지 말고 군평선이구이를 맘껏 시켜서 실컷 뜯어먹고 볼 일이다.

손으로 군평선이를 찢어서 맛본다. 영념 맛이 진하다싶다. 군평선이의 진짜 속살 맛에 취한 나머지 샛서방이 되어보려고 발버둥치지 마라는 깊은 뜻에서 고기 맛을 숨겨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웃음이 피식 새어나간다.

군평선이를 한동안 씹어본다. 양념 맛이 벗겨지고, 불을 입힌 맛도 사라진다. 이젠 진짜 속살 맛만 오롯이 남는다. 이곳사람들이 영광 굴비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군평선이는 ‘불에 구운 평선’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평선’이라는 관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고 군평선이는 기름기 많은 생선이나 식감이 차진 생선과 달리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무척 깊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흔히 어두육미(魚頭肉尾)라고 해서 생선은 머리가, 육류는 꼬리 쪽이 맛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선의 맛을 그렇게 한 마디로 표현해버리면 안 된다. 흰 살 생선은 머리가, 등 푸른 생선은 꼬리 쪽이 맛있다고 다시 나누어서 말하는 게 옳다.

대접에 담아온 공깃밥에 서대회무침을 얼마간 덜어 넣고 비빈다. 잘 비벼진 밥 한 숟가락을 뜨고 그 위에 손으로 뜯은 군평선이 살점 하나 올려놓고 한입 먹는다. 맛과 멋이 입안에서 소쿠라진다. 별들이 굴러다닌다. 여수는 모든 게 곱디곱다. 소설가·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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