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 (12)하동호- 삼화실 구간
‘왜 걷느냐’고 물었더니
징검다리는 ‘말줄임표’라 하네
하동호에서 삼화실로 가는 구간 역시 감나무길이 많다. 감나무에는 줄기가 휘어지도록 똘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길바닥도 낙과로 가득하다.
길은 험하고 힘들수록 보고 느끼는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발길은 가벼워지고 비로소 길을 걷는 즐거움을 몸이 받아들인다. 어차피 오늘 중에는 가게 될 테고 어두워지면 손전등을 켜면 될 일이다.

녹 슬은 양철대문집의 할머니가 손자·손녀에 둘러싸여 마당의 화덕에 불을 피우고 있다. 여름휴가를 내어 찾아 온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위해 씨암탉이라도 앉힐 모양이다.
입술연지까지 바르고 혀를 길게 내민 지하여장군의 표정이 어린 조카를 놀리려는 어른처럼 짓궂다. 길섶의 때 이른 구절초가 까르르 웃는다.
입력시간 : 2016. 09.23. 00:00


횡천강의 징검다리. 여울이 이는 한 아름의 다릿돌 사이로 피리가 떼지어 다니고 주변의 산그리메는 강위로 내려와 쉬어간다.
하동호 관리사무소가 있는 하동댐 제방 끝에서 ‘하동호- 삼화실’구간이 시작된다. 위태마을에서 오전 11시 시작한 길은 오후 3시30분께 하동호 관리사무소에 닿았다.

길은 뒷길에서 앞길로 이어지지만 몸과 마음은 매듭 하나를 짓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벚나무 가로수 그늘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채비를 새로이 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바나나에 죽염을 섞어 탄수화물과 염분을 보충하고 신발 끈을 풀어 양말을 바꿔 신었다. 기운이 나름 새롭다. 관리사무소 위에 자리한 ‘비바체리조트’는 막바지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물놀이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흥겹다.

하동호 둑을 내려와 평촌마을로 가는 길은 횡천강이 동행한다. 횡천강은 청암천이라고도 부른다. 햇발은 여전히 맹렬하다. 오른쪽 인조잔디가 깔린 청암체육공원의 축구장엔 바람 빠진 축구공 하나가 심드렁하다.

평촌마을에 닿기 전 횡천강변에 나팔모양의 확성기가 우뚝 서있다. 하동호 방류 등에 대비한 재난 방송용일테다. 가뭄으로 바짝 야윈 하동호를 보며 확성기는 무슨 말을 하고플까. 확성기도 나처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할까 싶다.

지리산둘레길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과실나무는 단연 감나무다. 둘레길을 가는 길 내내 감나무는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이른 봄날에 붉은 빛이 도는 새잎이 돋는가 싶으면 금새 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가는 지고 여름 햇살아래 푸른 똘기는 옹골차다. 머잖아 감나무는 빨갛게 빛나는 열매를 매달고 루미나리에를 연출할 것이다.

하동호에서 삼화실로 가는 구간 역시 감나무길이 많다. 감나무에는 줄기가 휘어지도록 똘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길바닥도 낙과로 가득하다.

하월마을의 벚나무 당산. 서늘맞이를 즐기는 동네 할머니들의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낙과는 감나무의 지혜

낙과는 열매가 지나치게 많이 열릴 때 감나무가 스스로 벌이는 현상이다. 적당한 열매를 남겨 제대로 키우기 위한 지혜다.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는다는 것을 감나무도 안다. 나무의 자각이 인간보다 나을 때도 있는가. 떨어진 똘기를 차마 밟지 못하고 간다.

하동호에서 30여분쯤 가다보면 평촌마을에 닿는다. 청암면소재지로 청암치안센터와 우체국, 보건지소, 농협 등이 즐비하여 웬만한 읍내 분위기다. 하동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다니는 길목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민박과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다.

‘청학동수퍼’라고 쓰인 길모퉁이 허름한 구멍가게에 들려 메론 맛이 상큼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었다. 냉장고 안에 진열된 캔 맥주에서 시선을 뗄 수 있을 만큼 아이스크림은 격하게 상큼하다.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에 마냥 행복해하는 내가 즐겁다.

평촌마을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영정이 봉안된 경천묘(敬天廟)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왕조의 끝자락을 정리했던 임금의 슬픈 눈길을 마주하고 싶었다. 경순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둘레길에서 벗어나 청학동수퍼를 끼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한 사당의 문은 굳게 잠겨있고 담장 안으로 보이는 사당은 적막하다.

경천묘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금남사(錦南祠)가 이웃해 있다. 고려말 경천묘를 세우고 경순왕의 영정을 모셨던 이색, 권근, 김충한 등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의 마지막 신하들이 신라의 마지막 왕에게 제사를 지낸 마음은 무엇인가. 망해가는 나라를 보며 역시 망해가는 신라의 운명을 지켜봐야 했던 경순왕의 마음을 역지사지로 헤아렸던 것은 아닐까. 사당에는 허망의 비애들이 늦여름의 햇살아래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익살맞은 표정의 존티재 부부장승


사당에는 허망의 비애만 가득

다시 청학동수퍼로 내려와 이온수로 갈증을 달래고 길을 나서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시간은 오후 4시 반을 지나고 있다. 목적지인 삼화실까지는 7.5km를 남겨놓고 있다. 족히 3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중간에 하룻밤을 지샐만한 민박집이 없어 출발한다면 삼화실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평촌마을에서 몸을 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기운은 방전상태지만 홀로 맞아야 하는 긴 시간이 두려워 결국 삼화실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평촌마을에서 찻길따라 걷던 길은 도로변의 화월버스정류장에서 해가 떠있는 3시 방향으로 꺾어지고 이내 밭두렁길을 걷다 횡천강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징검다리는 횡천강에 점 점 점 말줄임표로 놓여있다. ‘삶은 말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징검다리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 아름의 다릿돌 사이로 산그리매가 내려와 쉬어가는 횡천강은 ‘길은 왜 걷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여울이 이는 다릿돌 주변엔 손가락만한 피리들이 떼 지어 다니고 저 만큼서 왜가리는 홀로 한가롭다.

징검다리 건너 강변길이 다다른 곳에 화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월마을 당산에서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늘맞이를 즐기고 있다. 당산나무는 아름드리 벚나무다. 제철에 꽃피고 질 때면 마치 봄날의 눈처럼 고울 듯싶다.

평야지대의 화월마을을 지나면 남은 길은 삼화실까지 대부분 오르막 포장 임도다. 느긋한 마음이 아니면 쉽지 않은 길이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관점마을 경로당을 넘어 명사마을로 가는 길은 더욱 그렇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1만2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오직 두 발로 걸었던 퇴직 언론인이다. 그는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다”라고 했다. 올리비에의 수준이야 못되더라도 걷는 그 자체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어려운 길은 어떠하며 쉬운 길은 또 어떠할까 싶다.

길은 험하고 힘들수록 보고 느끼는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발길은 가벼워지고 비로소 길을 걷는 즐거움을 몸이 받아들인다. 멀리 있는 삼화실은 그만 잊기로 했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어차피 오늘 중에는 가게 될 테고 어두워지면 손전등을 켜면 될 일이다.

길옆 명호천에서는 마을 어른들이 천렵을 즐기고 녹 슬은 양철대문집의 할머니는 손자·손녀에 둘러싸여 마당의 화덕에 불을 피우고 있다. 여름휴가를 내어 찾아 온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위해 씨암탉이라도 앉힐 모양이다.

‘2000년 환경보전 우수시범마을’ 현판이 자랑스레 걸려 있는 명사마을회관을 지나 길은 발 아래로 다랭이 논이 계단처럼 펼쳐진 하존티마을을 굽어보며 상존티마을로 들어선다. 상존티마을 길옆 비닐하우스엔 철지난 취나물이 쑥대밭처럼 무성하고 오르막 대숲길은 터널을 이뤄 어둠살이 내린다.

해거름 무렵의 삼화초등학교 뒷산 하늘에 피어오른 용 구름이 이채롭다.


연지 바른 지하여장군

청암면에서 적량면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재빼기 존티재를 정점으로 솔가리 가득 쌓인 내리막길이 비로소 시작된다. 존티재에는 익살맞은 형태의 부부 장승이 돌무더기 위에 나란히 서서 여행객을 맞는다. 입술연지까지 바르고 혀를 길게 내민 지하여장군의 표정이 어린 조카를 놀리려는 어른처럼 짓궂다. 길섶의 때 이른 구절초가 까르르 웃는다.

존티재를 내려서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듯 다시 밝은 빛을 만나고 해는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손전등을 켜지 않아도 될 성 싶다. 대신 해가 뉘엿뉘엿하자 산모기가 땀 냄새를 맡고 쉼 없이 달려든다.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 삼화실 뒷길에 닿으니 드디어 삼화실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등촌마을회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화실은 명천, 이정, 동촌, 하서, 중서, 도장골, 동점 등 7개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삼화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너 댓가지의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그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세가지 꽃이 피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즉, 이정마을의 배꽃, 중서마을의 매화, 도장골의 도화를 꼽아 삼화(三花)라고 부른다고 한다. 배꽃과 매화, 복숭아꽃이 어우러진 지리산 산골마을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나의 살던 고향’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아무래도 봄날에 와야 제격일성 싶다.

하동호에서 삼화실로 가는 구간은 삼화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둘레길 삼화실안내소에서 마무리된다. 어둑해지는 기운을 타고 삼화실 안내소 뒷산 하늘에 구름이 용처럼 꿈틀거린다. 용이 구름처럼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놀란 새들이 날개짓을 재촉하며 숲으로 스며든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날은 저물고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탓에 방은 동이 났다. 안채 한 칸을 빌릴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저녁은 생략하고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온종일 혼자 걸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나와 둘이서 걸은 것 같기도 하다. 행복한 것도 같고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 내일 또한 그러하리라.시민전문기자kanjoys@hanmail.net

길 안내

하동호- 평촌마을(2.4km)- 하월마을(0.8km)- 관점마을(1.0km)- 상존티마을(2.6km)- 존티재(1.2km)- 삼화실(동촌마을·1km)- 삼화초등학교(0.3km) 까지 9.3km에 달하는 구간이다.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강변길과 마을안길, 논길, 임도, 숲길 등을 골고루 걸을 수 있다.

들머리는 하동시외버스터미널(055- 883- 2663)에서 청학동행 버스를 이용, 하동호에서 내리면 된다. 소요 시간은 20여분이나 배차 시간이 두 시간 가량인데다 그마저 많지 않다.

승용차로 광주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2시간쯤 소요된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 근방에 주차한 뒤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원점회귀를 가정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신 사전에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여행계획을 잡는 것이 효율적이다.

평촌마을을 지나면 구간 중간에는 민박이나 가게가 없고 목적지인 삼화실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경천묘와 경순왕

후백제의 진훤이 경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새로 왕으로 앉힌 인물이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다. 왕건이 진훤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이기자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하고 나라를 넘겨주었다. 신라는 이로써 건국한 지 56대왕 992년만에 망했다. 최후까지 싸움을 주장했던 태자는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후세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마의태자라고 부른다.

경순왕은 고려로부터 실권 없는 벼슬 하나를 얻은 후 왕건의 장녀와 결혼하여 경주에서 여생을 보냈다. 전쟁으로부터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았던 경순왕의 경천애민의 뜻을 기린 사당이 경천묘다. 경천묘를 세운 사람은 고려말의 목은 이색과 양촌 권근, 수은 김충한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목은과 수은은 물러나 은둔하고 양촌은 나아가 벼슬했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경천묘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등일보 zmd@chol.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