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전동진의 광주전남 문학지도 그리기문학은 사랑이다:15 경계에서 피워낸 최대치의 ‘서정’- 무심결의 나그네 시인 이동주
입력시간 : 2016. 09.19. 00:00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조선 여인의 삶 노래



이동주를 시인으로 이끈 것은

조지훈의 '승무'다

승무는 여럿이 춰도

오롯이 혼자만 보이는 춤이다

반면 참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빛나는 여인들의 춤이 ‘강강술래’다

이동주 시인은 ‘강강술래’를 통해

최대치의 서정을 펼친다





이동주를 ‘이삿갓’이라고

칭하는 이가 그의 부인이다

그는 앞뒤 말도 없이 집을 나서면

두서너 달 엽서 한 장 없이

지내다 들어오기 일쑤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시인은 '해녀'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서너 번씩이나 제주행을 감행했다





경계에 걸친 삶

이동주 시인은 1920년에 태어났다. 해방을 맞은 것이 20대 중반이었다.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시기에 가장 혼란한 시기를 겪은 셈이다. 그가 품은 인생의 자침(磁針)도 요동쳤을 것임이 분명하다.

해방공간에서 이동주 시인은 이념 갈등에는 크게 휩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통사회의 붕괴와 집안의 몰락이 그의 삶에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증조부는 이조참판을 지냈고, 그는 5천석을 하는 해남의 부자 집안에서 자랐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급기야 그는 외가가 있는 공주에서 보통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의 서울생활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략 1930년대 말로 보인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 서울에서 신문 돌리기, 우유 배달, 빵팔이, 노동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대학 입학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시편을 '조광' 등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문학보다는 생활을 선택했다. 안정된 직장(나랏일)을 얻어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법정학과와 같이 출세에 도움이 되는 학과 입학을 준비했던 것 같다.



시에 배이면 삶보다 독한 것



뜻밖에 그는 혜화전문학교 불교과에 입학한다. '문장'지에 발표된 조지훈의 '승무'를 읽은 후였다고 한다. 한 수필에서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내가 혜화전문에 들어갔을 때,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오색 무지개 속에 감긴 사나이가 나를 황홀케 했는데, 그가 바로 지훈이었다. 나는 이 조 선배로 인해서 하필이면 취직 길도 막히는 그 학과를 택했고 안 할 고생을 숱하게 했지만 여태껏 뉘우친 적이 없다.”('무지개 잡던 시절')

그는 지훈이 떠난 대학을 그만둔다. 1942년 해남에 내려와 머물다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해방 무렵에는 목포시청, 현산면 사무소 등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또한 호남신문 목포주재 기자로도 활약하지만, 어느 것도 그를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생활과 문학 사이에서 시소를 타던 그는 1950년 '문예' 1월호에 '황혼', 3월호에 '새댁', 4월호에 '혼야'가 추천되면서 정식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를 추천한 이가 서정주 시인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2개월 전, 그는 시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승무에서 강강술래로



이동주를 시인의 삶으로 이끈 것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운 조지훈의 '승무'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 만큼 그윽하고도 영롱한 춤이 승무다. 승무는 여럿이 춰도 오롯이 혼자만 보이는 춤이다.

반면 참여하는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빛나는 여인들의 춤이 ‘강강술래’다. 이동주 시인은 이 ‘강강술래’를 통해 최대치의 서정을 펼친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여인의 춤은 단연 강강술래가 아니겠는가!



여울에 몰린 은어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보자

강강술래



뉘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 '강강술래' 전문



‘강강술래’는 남도 전역에서 이루어지던 대표적인 공동체 놀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종잡을 수 없는 원을 그린다. ‘비잉, 빙’은 단순한 반복의 원환성을 넘어서 영원성을 지향해 간다. 영원을 지향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여인의 몸에서 비롯한다.

여인들 한 명 한 명은 두 개의 몸을 동시에 발현한다. 자가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 쪽 몸은 오른 손으로 이어져 뒤에 오는 사람을 이끌고 간다. 다른 한 몸은 왼 손으로 이어져 앞선 이에게 이끌려 간다. 이끄는 몸의 능동성과 이끌리는 몸의 수동성의 균형과 조화에서 거대한 공동체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이 원환의 운동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폭이 찢어질 정도로 격렬하게 ‘뛴다’. 한 마음은 입으로 돋아나 ‘설움’이 되고, 다른 한 마음은 발끝에 ‘신명’으로 돋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우면서 거대한 동그라미 속으로 ‘자발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



텅텅, 비우는 글쓰기



힘을 쓰고, 돈을 쓰면 닳아지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데 끊임없이 비우기 위해서 쓰고, 텅 비기 위해서 한시도 머물지 않고 길에 나선 시인이 이동주다. 이동주 시인을 ‘이삿갓’이라고 칭하는 이가 그의 부인이다. 그는 앞뒤 말도 없이 집을 나서면 두서너 달 엽서 한 장 없이 지내다 들어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은 '해녀'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서너 번씩이나 제주행을 감행했다고 한다. 시인은 자신의 말을 가차 없이 버린다.



망아지가 뛴다 입안에서 박꽃을 물면 벼랑이 무너지는

홍도깨 웃음

그제서야 나도 숨이 가쁜 목동

‘너무 햄쑤다양

마음이 오종종햄쑤다“

놀(波濤)은 캉캉 치는데 백랍(白蠟)이 확 풀리는

물거품……

안아 보고 안아 봐도 뿌연 무지개 가루

나만 노을에 묻히란다

- '해녀' 뒷부분



시의 초반부에서는 뭍에서 온 사내의 말과 해녀의 말이 따로 논다. 홍도깨 웃음을 지나면서 둘의 말은 하나로 어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 시에서 조지훈의 ‘승무’와 가장 대비되는 자리에서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여인들의 춤을 본다. ‘승무’가 날아오르는 춤이라면, ‘해녀’의 잠수는 가장 깊게 들어가는 춤이다.

조선 여인의 삶은 강강술래의 ‘커다란 원환’을 바탕으로 승무의 높이와 잠수의 깊이 사이에서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이동주의 ‘무심결’의 시심에 배어든 것은 다름 아닌 조선 여인의 삶,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동주 시인의 시가 새삼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올해 한가위에도 여전히 달은 높았고, 조선 여인의 삶도 여전히 고단했다.


무등일보 zmd@chol.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