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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10> 화순 도곡, ‘행복한 임금님’의 퓨전레스토랑
입력시간 : 2016. 08.26. 00:00


고정관념과 틀 깬 새로운 어울림 '소박한 임금님' 밥상

밥 색깔부터 불그스레한 게 퓨전레스토랑답다

쌀을 발효시킨 ‘홍국쌀’로 지은 밥이라고 한다

배추 겉절이, 양념게장, 보쌈 등은 익숙하지만

다른 음식은 식재료를 파악하기 어렵다



콩고기에 비트 색상을 첨가하여

새송이버섯과 조합해서 내놓은 음식, 곤약으로 만든 음식,

우엉 튀김 등이 이채롭다.

메밀이나 잡채도 플레이팅과

데코레이션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퓨전음식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맛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했던 시절, 여름철의 서민들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라고 했을까.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점심때가 되면 서민들은 냉수 대접에 꽁보리밥을 말고,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서 아삭아삭, 씹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추에 꽁보리밥 한 숟가락 올리고 된장에 찍은 풋고추를 넣은 뒤에 대충 싸서 양 볼이 미어터지라고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목울대에서 꿀꺼덕 넘어가는 소리가 나게 되면 냉수 한 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했다.

그런대로 산다는 집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기껏해야 오일장에서 사온 몇 마리 갈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고 졸인 반찬이나 구운 고등어가 상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관혼상제가 닥치거나 명절이 찾아오면 갖은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서 먹고 즐겼다.

그런 음식 중에서 가장 푸짐하고 다양한 것은 떡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음식들이 장만되곤 했다. 고기와 생선을 지지거나 구운 음식들이 채반이나 동고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참기름으로 무친 온갖 나물들도 각각의 양푼이나 함지에 담겨 대청마루에 즐비하게 놓였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로망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다양하고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상을 받는 거였다.



***젓갈의 맛은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다

전라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화순군을 찾아간다. 그곳은 산천경개가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천불천탑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를 위시하여 쌍봉사, 유마사, 만연사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그뿐만 아니라 정암 조광조 적려유허비, 화순적벽, 고인돌 유적지,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 등등 발길 닿는 곳마다 우리 문화와 역사가 잔치음식처럼 풍성하다.

이런 문화유산 위에 우뚝 선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문장가이며 조선회화사의 서막을 열었던 학포 양팽손 선생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진주성에서 순절한 최경회 의병장이 대표적이다.

화순군 도곡면. 이 지역은 동강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임한 김신운 소설가와 지금은 고인이 된 문병란 시인의 고향이다.

특히 이곳 원화리가 고향인 문병란 시인은 뉴욕타임즈에서 ‘화염병 대신 시를 던진 한국의 저항시인’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시인은 고희를 넘기면서 자연에 천착하거나 전라도의 깊은 맛 속으로 시세계(詩世界)를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괴고 삭고 곰삭아서/ 맛 중의 맛이 된 맛/ 온갖 비린내 땀내 눈물내/ 갖가지 소금으로 절이고/ 절이어/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맛……” <전라도 젓갈> 중에서.

그런데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전라도 젓갈의 맛을 읊기만 했던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건 아닐 것이다.

문병란 시인은 고향마을 앞 지석천 너머에 있는 정암 조광조 적려유허비를 생각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자신의 신념이 전혀 풍화되지 않고 오히려 곰삭은 맛으로 승화되어간다는 것을 은연중에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시인이 노래했던 ‘곰삭은 맛’이야말로 진정한 멋일 테다.

흐르는 세월을 핑계 삼아 초심을 버리고, 곰삭지 못한 채 맛이 상해버린 일부 선배 문인들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이런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문병란 시인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유

문병란 시인이 시 '땅의 연가'에서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있는 빈 땅이다/ 누가 내 가슴을 갈아엎는가/ 누가 내 가슴에 말뚝을 박는가?”라고 읊었던 고향 땅 도곡면 원화리 일대는 도곡온천 개발과 함께 옛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 전이다.

인터넷 정보 검색을 통해 찾아낸, 도곡면 원화리 573-70번지(지강로 532)의 한식뷔페 음식점인 ‘봄날’을 찾는다. 길목에 수없이 도열해있는 음식점과 카페의 입간판을 샅샅이 살펴보지만 웬일인지 눈에 띄지 않는다.

광주에서 칠구재터널을 통과하여 세량지를 지나쳐 이곳으로 오는 동안 시장기를 느꼈다. 하지만 한식뷔페에 도착하면, 내가 음식을 기다리지 않고 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꿈틀대는 시장기를 간신히 달랬다. 그런데 허허롭기 짝이 없다.

뷔페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유가 아닐까?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담는 재미와 자유가 있고, 뭐부터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고, 생소한 음식과 맞닥뜨리게 되는 별난 경험도 기다리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의 초라한 밥상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마냥 행복에 빠질 수 있는 곳이 곧 뷔페 음식점이다. 그러니까 뷔페는 빈곤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풍족함의 대리만족이요, 첫눈처럼 뜻밖에 맞닥트리는 희열이요 잔치이기도 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봄날’이 보이지 않는다. 근처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물어본다. 그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행복한 임금님’이라는 퓨전레스토랑이 새로 들어섰다고 한다.

‘행복한 임금님’의 주차장에 차를 넣는다. 어디선가 이 간판을 본 듯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은 상호의 음식점이 광주에 세 군데나 있다. 그런데 체인점은 아니다. 가족끼리 힘을 모아 사업체를 만들고, 같은 상호를 쓰고 있다.

요즘 맛집 아닌 음식점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음식이 사람을 기다리는 뷔페건, 사람이 음식을 기다려야하는 레스토랑이건 무슨 상관인가. 골라 담는 재미와 자유가 없으면 또 어쩌랴. 옛말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듯이 맛있게 먹으며 취재하면 그만이려니 싶다.



***새로운 어울림을 위하여

퓨전레스토랑 ‘행복한 임금님’.

퓨전이란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말한다. 그러니까 고정관념과 틀을 깨트리고, 고유의 경계를 해체하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도 극복하고, 새로운 어울림을 통해서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퓨전은 해체를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래지향적인 문화현상이다. 부연하자면 각각의 특성은 살리되 어울림을 통해서 상승효과를 얻어 보려는 것이다.

차림표를 보며 ‘임금님 수라상’을 주문한다. 3인 이상 주문 시 1인당 11,00원이라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이곳은 ‘행복한 임금님’이 아니라 ‘소박한 임금님’인 셈이다.

얼마 전, 청와대의 어떤 오찬이 샥스핀, 송로버섯, 캐비아 등으로 차려진 초호화판이라고 해서 세간에 논란과 분노가 일기도 했다.

'춘향전'에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는 한시가 나온다.

친절하게 풀이해보자면, ‘금 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천 명의 피요, 옥쟁반 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는 뜻을 갖고 있다.

더워도 ‘겁나게’ 덥다. 올해는 늦더위마저도 살인적이다. 하늘도 땅도 사람들도 지쳐간다. 언제쯤 상하좌우의 조합과 조화 그리고 소통을 느껴볼 수 있을까.

음식이 나온다. 밥 색깔부터 불그스레한 게 퓨전레스토랑답다. 최동익 점장에게 물어본다. 쌀을 발효시킨 ‘홍국쌀’로 지은 밥이라고 한다.

배추 겉절이, 양념게장, 보쌈 등은 익숙하지만 다른 음식은 식재료를 파악하기 어렵다. 또 찾아가서 물어본다.

콩고기에 비트 색상을 첨가하여 새송이버섯과 조합해서 내놓은 음식, 곤약으로 만든 음식, 우엉 튀김 등이 이채롭다. 메밀이나 잡채도 플레이팅(접시에 담기)과 데코레이션(고명 등을 얹어 꾸미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요리가 떠오른다. 그 요리의 진수는 양을 중시하지 않고 맛과 멋으로 조화로움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플레이팅과 데코레이션에 신경을 쓴다.

최동익 점장에게 이 음식점의 장점을 물어본다.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고, 빨리 나온다는 게 아닐까요? 또 가격이 저렴하거든요.”

사람들 대부분이 교외로 나갈 때면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퓨전음식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맛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음식점을 나온 후, 문병란 시인의 생가를 찾기 위해 지역 주민에게 물어본다. 생가 조성이 되어있지 않단다. 화순군청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걸어본다. 그 유명한 시인의 생가 조성 계획조차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안타깝다. 우리의 맛과 멋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덥다 ‘겁나게’ 덥다. (소설가·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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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1임금님 밥상김용매2016.08.29 (15: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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