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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 (10)덕산- 위태
“천평교를 건너면 길은 곧바로 덕천강변길을 타고 유(U)턴하듯 이어진다.
되감기 화면처럼 강 너머로 덕산시장과 산천재가 보이고 웅석봉 줄기도 아스라하다.
발로 밟고,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지났던 순간들이 벌써 그리움이 된다.”
“산청사람은 중태재라하고 하동사람은 위태재라고 하는 갈치재는 한국전쟁 당시의 생채기를 안고 있다.
가끔 마을로 내려오는 빨치산과 매복해 있던 군경간의 치열한 전투가 발생, 주검이 넘쳐 났던 곳이다.”
“높이 치솟아 보이지 않는 끝자락 어디쯤에 잔가지나 푸른 잎이 있어 하늘을 보리라. 바람이 불면 야윈 소나무는 대나무처럼 흔들린다.
어찌하랴. 산다는 것은 애증으로 부대끼며 이리 닮아가는 것임에야.”
대숲에선 솔도 대나무처럼 운다
입력시간 : 2016. 08.19. 00:00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덕천강변길을 따라 걷던 길은 덕산고등학교 앞에서 천평교를 돌아 건너편 강변길로 되돌아 나온다. 멀리 천왕봉이 아스라하고 덕천강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천엽을 즐기고 있다.
산천재를 나와 덕천강을 따라 걷다보면 길은 ‘덕산약초시장’을 지나 다리 하나를 만난다. 원리교로 사실상 덕산- 위태구간의 시작점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계곡을 거쳐 내려오는 시천면 방향의 물줄기와 지리산 동쪽 대원사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삼장면 방향의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류하여 덕천강의 몸집을 불린다. 원리교 아래로는 대원사계곡의 물줄기가 흘러든다.

길은 원리교를 지나 왼편으로 꺾어진 뒤 덕산고등학교 앞에서 또다시 왼편의 천평교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중산리계곡의 물줄기가 덕천강으로 흐른다.

남명은 이곳 두물머리를 보고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듯고 이제 보니/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는 옌가 하노라’라는 ‘두류산양단수’를 지었다. 그 시비가 원리교와 천평교 사이에 세워져 있다.

천평교를 건너면서 길은 곧바로 덕천강변길을 타고 유(U)턴하듯 되돌아간다. 되감기 화면처럼 강 너머로 덕산시장과 산천재, 남명기념관, 선비문화연구원 등이 다시 펼쳐진다. 웅석봉 줄기도 아스라하다. 발로 밟고,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지났던 순간들이 벌써 그리움이 된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덕산시장은 지리산의 각종 약초와 곶감으로 그 정체성을 갖는다.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강에서는 아주머니 두 분이 물속에 앉아 옴지락옴지락하고 있다. 아마도 다슬기를 잡고 있을게다. 덕천강에는 지금도 은어, 꺽지, 쏘가리, 메기 등이 천엽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물이 그만큼 맑고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아둔한 탓이겠지만 ‘꺽지회’도 덕산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강 이쪽으로는 덕천강을 따라 넓은 논밭이 펼쳐진다. 냇가에 자리한 들녘이라 하여 ‘천평(川坪)’이다. 풍수에서 명당을 가리키는 금환락지(金環落地)로 꼽힌다.
버려진 천둥지기에 벼 대신 대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대숲에 들어서면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해를 삼킨다.


덕천강의 ‘꺽지회’

바람 없는 강변길은 고요하고 중복을 사나흘 앞둔 햇발은 맹렬하다. 길옆 과수원의 감나무도 땡볕에 기운을 잃었다. 여름하늘이 푸르러 강물도 푸르고 들녘도 푸른데 덕천강 둔치의 참나리는 제 혼자 붉음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1시간쯤 걸어 길은 덕천강과 헤어져 오른쪽 중태마을로 향한다. 중태마을은 오래전부터 닥종이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지금은 닥종이 소비가 끊기면서 닥나무 대신 감나무가 들어섰다.

중태마을은 동학혁명 때 마지막 녹두꽃이 떨어졌던 곳 가운데 하나이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 일부가 추격하던 관군을 맞아 이곳에서 목숨을 버렸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관군의 눈을 피해 농민군의 주검을 인근 골짜기에 가매장하여 가족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농민군의 시체가 가매장되었던 골짜기는 아직도 ‘가장골’로 불린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에 들려 방문록에 서명하고 설문지를 작성한 뒤 길을 나선다. 안내소에서는 목도 축이고 숲길체험지도사로부터 둘레길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중태마을에서 1시간쯤 깔끄막을 오르면 유점마을이 나온다.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자리한 마을이다. 예전에 유기(놋그릇)를 만들던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한다고 하나 지금은 관련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 중심에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라는 간판의 소담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38년부터 안식교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어 ‘안식교 마을’이라고도 한다.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인데다 가풀막져 쉽지 않다. 지리산둘레길 ‘덕산- 위태 구간’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다. ‘중태’나 ‘위태’라는 마을 이름이 당치 않게도 쉽지 않는 둘레길의 상태에 빗대어진다.

유점마을을 향해 오르다 보면 포장길 옆으로 중태천이 흐른다. 물이야 높을수록 맑은 것이 당연지사인지라 그 안에 노니는 피리와 다슬기가 평화롭다.

유점마을과 연이어진 대숲길을 지나면 언덕배기에 수 백 년 된 서어나무 네그루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유점마을을 포한한 중태리의 가장 어른 나무다. 임진왜란과 동학혁명도 지켜보고 한국전쟁의 살육도 지켜보았으리라. 늙은 서어나무가 제공한 그늘은 나이만큼 두텁지 않다.

산골마을의 작은 저수지에서는 지나던 구름도 더운지 목욕을 하고 간다.


천하일품 ‘덕산 곶감’

둘러보면 사방이 감나무 밭이다. 산이 감나무 밭이고 감나무 밭이 산이다. 중태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끝없이 펼쳐지는 감나무 밭은 덕산장이 곶감장으로 유명한 이유에 대한 실증이다.

이곳 곶감은 지리산의 고온 건조한 바람과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기운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칠산 앞바다의 조기가 영광에서 굴비가 되듯 지리산의 고종시가 덕산에서 천하일품 곶감이 된다.

유점마을에서 1km쯤 오르면 비로소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선다. 처음으로 만나는 숲길이 반갑다. 서늘한 기운과 등산화를 통해 느껴지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이 살피를 대신한다.

가파른 숲길은 쉽지 않고 길지도 않다. 10여분쯤 오르면 고갯마루에 닿는다. 목적지인 위태까지 2km를 남겨놓고 있다.

고개는 산청과 하동의 분수령이다. 덕산사람들은 소금이나 비료를 구하려 고개를 넘고, 하동사람들은 덕산장을 보기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산청사람들은 중태재라 부르고 하동사람들은 위태재라 부른다. 갈치재라고도 하고 갈티재, 또는 갈퇴재라고도 한다. 고개는 하나인데 이름이 너댓이다.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의 생채기를 안고 있다. 가끔 마을로 내려오는 빨치산과 매복해 있던 군경간의 치열한 전투가 발생, 주검이 넘쳐 났던 곳이다.

둘레길 중태안내소 한성섭 숲길체험지도사는 “시체가 너무 많아 수습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며 “한 때 희생자들에 대한 인골 수습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이 일대의 지형이 변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고갯마루에 아픈 사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웠으면 좋을 듯싶다. 지나는 사람들이 돌멩이 하나씩이라도 올려 넋을 위로하고 땅의 평화를 기원할 수 있도록.

고개를 넘으면 곧이어 밀도 높은 대나무밭을 만난다. 오래전 논밭의 흔적인양 층층의 두렁이 남아있다. 버려진 천둥지기에 벼 대신 대나무가 자라 하늘을 가리고 있다.

대나무 밭에 들어서면 개기일식처럼 어둠살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해를 삼킨다. 대밭 안의 세상은 대밭 밖의 세상과 별개로 움직인다. 마치 시간이동을 한 듯 낯설면서도 또 익숙하다.

익숙함은 중국무협영화이다. 대나무 밭은 이완감독의 ‘와호장룡’이나 장이머우 감독의 ‘연인’에서 나오는 대숲 싸움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주윤발과 장쯔이가 휘청거리는 대나무위에서 춤추듯 칼을 겨누는 장면이나 맹인 무사 장쯔이를 쫓아 복면자객들이 대나무를 거꾸로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대밭이 주는 기시감이다.
위태마을 ‘정돌이 민박집’에서 바라본 앞산의 능선. 자로 잰 듯한 능선위로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지평선과 수평선은 의미를 잃은다.


대숲에 사는 소나무

문득 푸른 대숲에서 홀쭉한 갈색 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인줄 알았던 갈색 기둥은 다시 보니 드문드문 숨바꼭질하듯 대숲에 섞여 있다.

살기다툼으로 대나무와 키 재기를 하고 있는 소나무 줄기이다. 옆으로 뻗은 잔가지도,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바늘잎도 다 버리고 대나무를 닮은 매끈한 몸통만 드러내고 있다.

높이 치솟아 보이지 않는 끝자락 어디쯤에 잔가지나 푸른 잎이 있어 하늘을 보리라. 바람이 불면 야윈 소나무는 대나무처럼 흔들린다. 어찌하랴. 산다는 것은 애증으로 부대끼며 이리 닮아가는 것임에야. 대숲에서는 솔도 대나무처럼 운다.

복효근은 그의 시 ‘어느 대나무의 고백’에서 ‘(전략) 아아, 고백하건데/ 그 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을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고 노래했다. 대숲에서는 소나무의 꿈도 대나무만큼 서글픔을 본다.

대밭을 나오면 세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밝은 하늘이 열리고 땅에는 실한 벼들이 푸르다. 대밭을 타고 내려온 물은 실개천으로 흘러 위태마을 뒷산 기슭에 아담한 저수지를 이룬다. 거울처럼 맑은 저수지에 뭉게구름이 쉬어가고 건너편 산기슭의 오리나무도 슬며시 내려온다. 왼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능선은 마치 자를 대고 하늘에 선을 그은 듯 반듯하다. 능선이 하도 반듯하여 산위로 뜨는 보름달이 수평선의 해돋이와 다를 바 없을 듯하다.

목적지인 위태마을은 예전에 상촌으로 불렸다. 청암면에서 옥종면으로 편입되면서 위태로 지명이 바뀌었다. 마을회관이 있는 진등을 비롯하여 안몰, 중몰, 괴정지 등 여러 작은 마을로 이뤄졌다.

둘레길의 다음 구간인 위태에서 하동호까지는 진등마을회관 앞을 거쳐 위태 정류장이 있는 차도를 건넌다. 마을어귀의 네모진 저수지(상촌제)를 지나 건너편 산기슭아래 ‘민박’이라고 쓰인 담장을 길라잡이 삼으면 된다. 한낮의 길었던 해도 어느덧 민박집 지붕을 넘고 있다.

길 안내

덕산 시외버스터미널- 원리교(2.0km)- 천평교(0.3km)- 중태마을(2.6km)- 유점마을(2.1km)- 중태재(1.3km)- 위태마을회관(2km) 까지 10.3km에 달하는 구간이다. 산청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덕산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천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설정하면 된다.

광주-대구 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경유하며 광주에서 2시간쯤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 741- 6039)에서 대원사나 중산리 방향의 차를 타고 가다 덕산에서 내리면 된다. 50여분 소요되며 배차간격은 30분이다.

목적지인 위태에서 되돌아 나오는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위태마을회관 건너편 위태정류소에서 옥종이나 진주터미널로 간 뒤 다시 덕산행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이나마 하루 세 번밖에 없다.

위태마을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지리산 밤하늘의 별들이 민박집 평상위로 쏟아져 막걸리 잔에 담기기도 한다. 행운이 있길!시민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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