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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8> 영산강 구진포 장어구이
입력시간 : 2016. 07.29. 00:00


맛 좋고 영양가 높은 복달임 음식 '기운 센 천하장어'

예로부터 영산강 구진포 장어가 맛있다고 소문난 이유가 있다. 구진포 장어들이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찬 중에서 으뜸은 장어내장 볶음과 장어뼈 튀김이다. 또 하나 정체를 얼른 파악하기 어려운 반찬이 놓이는데, 홍어뼈를 잘게 다져 양념으로 무친 것이란다.

장어 육수에 각종 한약재 넣어서 만든 양념이라서 고추장으로 만든 걸쭉한 양념에 비해 묽은 것이 특징이란다.

나는 강이다. 이름은 영산강(榮山江)이다. 뜻풀이를 하자면 ‘꽃뫼가람’이다. 사람들은 나를 ‘남도의 젖줄’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젖줄’이라는 단어보다 차원이 높은 ‘생명의 핏줄’이라고도 말한다.

수년 전부터 복중(伏中) 무더위가 밀려오면, 나는 납작하게 엎드린 채 부글부글 끓기만 한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면서 무더위를 물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다.

1981년에 하굿둑이 축조되었다. 그 이후,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내 허리쯤에 죽산보와 승촌보 두 개를 걸쳐놓음으로써 그만 발이 꽁꽁 묶여버렸다.

나는 이제 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젖줄’도 ‘핏줄’도 아닌 셈이다. 나는 호수처럼 변해버렸다.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나는 원래 모습처럼 시원하게 흐르는 강이고 싶다.

복사꽃 필 무렵이면 나를 항상 찾아오던 황복을 비롯하여 은어, 숭어, 황어, 민물장어 등등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지금은 그들이 나를 찾아올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둑으로 막힌 건너편의 먼 바다를 기다림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곡(哭)하지 마라

오늘은 맛보다 멋이 앞서는 기행이다. 이 일대에는 조선시대 천하의 로맨티스트인 백호 임제의 자취가 곳곳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호에게 낭만과 풍류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백호는 남다른 뭔가를 또 갖고 있다.

이곳은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진 곳에 있다고 하여 ‘구부나루’나 ‘구진포’라고 했다. 물길이 앙암바위를 돌아 다시 굽이친다고 하여 ‘회진’이라고 부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영모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벗들은 언제쯤 올까? 이번 ‘맛과 멋 기행’은 6인회 회원들이 동행해주기로 했다. 그 모임을 결성한 지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우리는 앞으로도 강물처럼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치고 저 바다까지 용용하면서도 쉼 없이 흘러갈 것이다.

나는 벗들에게 구진포 장어구이 맛뿐만 아니라 백호의 멋에 이은 또 다른 면을 소개하려고 한다. 벗들이 도착할 시간은 아직 멀다. 영모정에서 내려가 좌측 편에 서있는 물곡사비(勿哭辭碑) 앞에 우뚝 선다.

“四夷八蠻皆呼稱帝(사방팔방 오랑캐들은 저마다 황제라 칭하거늘)/ 唯獨朝鮮入主中國(오직 조선만 중국에 들어가 주인으로 섬기는데)/ 我生何爲我死何爲(나 살면 무엇하고 죽은들 어떠하리)/ 勿哭(곡하지 마라)”

복중 무더위가 일순간에 걷히고 찬 서리가 내리는 듯하다. 사람들이 백호를 생각할 때, 황진이라는 기생의 무덤 앞에서 시를 짓고 제를 올려준 것만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백호는 임종 순간에 우리의 자주(自主)를 유언으로 남긴 위대한 분이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백호의 자주정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드 배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놓고 백호의 자주정신을 곰곰이 되새겨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영모정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백호문학관을 찾는다. 우측 편에 ‘무어별 시비(無語別 詩碑)’가 수줍음을 머금은 아가씨처럼 서있다.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 남이 부끄러워 말 못하고 헤어졌구나/ 돌아와서 중문을 닫고/ 배꽃 사이의 달빛을 보며 눈물 흘리네.”

만고의 절창인 ‘무어별’을 읊조리며, 영산강 구진포 장어구이를 맛볼 수 있는 ‘제일장어’ 음식점으로 향한다.



***장어는 신비에 싸인 어류였다

예로부터 영산강 구진포 장어가 맛있다고 소문난 이유가 있다. 구진포 장어들이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어는 갯장어(하모), 먹장어(곰장어), 붕장어(아나고), 뱀장어(민물장어)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 모든 장어들은 여름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그리고 장어가 스태미나 식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단백질과 비타민 A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5~6년생 장어에는 소고기에 비해 1천 배나 되는 비타민 A가 들어있다고 한다.

장어는 생태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신비스러운 어류였다.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나갈 때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무려 3천 킬로미터나 헤엄친다. 또 민물에 있을 때는 암수 생식기가 드러나지 않아서 별의별 추측을 낳게 만들곤 했다. 그중 하나가, 그믐밤에 뱀이 가물치와 교미하여 장어로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어는 60센티 정도의 성어가 된 후, 심해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서야 생식기가 출현하고 교미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해서 부화된 새끼들은 다시 민물로 올라오게 된다. 알을 낳는 방식만 따지면 연어나 은어와 정반대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뱀장어를 ‘해만리’라고 적어놓았다. 그 책을 보면 “큰놈의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뱀을 닮았다. 덩치는 크지만 몸은 작달막한 편이고 빛깔은 거무스름하다”고 되어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뱀장어 뼈를 태워 연기를 피우면 담요 속의 좀이 없어지며, 옷장 속에 넣어두면 갖가지 벌레들이 옷을 쓸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또 같은 책의 ‘탕약편’에서, 장어는 자양강장 식품으로 인체의 오장육부 기능을 활성화하고, 결핵 등 만성적이며 소모성질환의 면역기능 강화를 통해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 민족이 보양식으로 즐겼던 것을 꼽으라면 전복, 닭, 보신탕, 민어, 장어 등이다. 그런데 장어가 보양식으로 사랑받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 크며, 장어 요리를 궁중보양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엉터리라고 한다.

벗들이 모두 모였다. 민물장어구이 상차림이 시작된다. 주방에서 장어 굽는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밀려온다. 취재를 한답시고 주방에 들어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장어 굽는 광경 한 컷을 촬영한다. 구미가 저절로 당긴다. 일본의 영향으로 장어요리가 사랑받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맛 좋고 영양가 높은 복달임 음식이면 그만이지 않을까.




***기운 센 천하장어

준비상이 차려진다. 남도의 음식상답게 풍성하고 맛깔스러워 보인다. 전장포구에서 잡았음직한 새우를 비롯하여 마을 뒷산 밭에서 키웠음직한 콩이며 양파가 낯익은 얼굴로 나타난다. 그리고 명이나물 장아찌와 연근 조림도 보인다.

그런 반찬 중에서 으뜸은 장어내장 볶음과 장어뼈 튀김이다. 또 하나 정체를 얼른 파악하기 어려운 반찬이 놓이는데, 벗 중에서 한 명이 금세 알아차린다. 홍어뼈를 잘게 다져 양념으로 무친 것이란다. 홍어로 유명한 영산포가 인접해서 이런 반찬을 내놓을 수 있는 모양이다.

드디어 주인공인 장어구이가 나온다. 우리는 취재의 다양화를 위해 소금구이 3인분과 양념구이 3인분을 주문했다. 그런데 두 가지가 구별되지 않았다. 직접 세팅을 해주는 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제일 장어구이 집의 양념장은 다른 음식점에 비해 특이하다. 그러니까 장어 육수에 각종 한약재 넣어서 만든 양념이라서 고추장으로 만든 걸쭉한 양념에 비해 묽은 것이 특징이란다.

내친 김에 장어 특유의 비린내 잡는 방법을 물어본다. 비방의 한약재 운운할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 비린내를 잡으려면 장어의 피를 완전히 뽑아내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음식점 외부 간판에도 적혀있지만, 이곳은 3대에 걸친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장어구이집이다. 예전에는 구진포 옆 갈대가 우거진 곳의 허름한 집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이젠 신식 2층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사장에게 음식점 자랑을 해보라고 하자, 모든 식재료가 국내산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라면 맛을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취재 전에 공부를 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자연산 민물장어는 구하기 힘들뿐더러 가격도 엄청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국내 양식 장어는 자포니카 종의 치어를 사용한다. 수입 장어는 필리핀이나 북미에서 들어오는 비포라 종과 말모라타 종이다.

여름 보양식으로 장어만 한 게 없는 듯하다.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며, 왠지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 든다. ‘기운 센 천하장사’라기보다 ‘기운 센 천하장어’이다.

벗들과 함께 음식점을 나온다. 나는 백호 임제의 자취가 그윽하게 서려있고, 기운 센 천하 장어가 꿈틀거리고 있는 구진포에서,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부모님을 떠올린다.

매천 황현의 《매천속집》을 보면, 박기재의 할머니가 풍진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장어가 좋다고 했다. 한 겨울에 뱀장어를 구할 도리가 없어, 박기재가 얼음을 손으로 긁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장어가 나타났다. 그 뱀장어를 올리니 할머니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맛있다고 포장해서 가져가봤자 무엇하리. ‘반중 조홍감이 좋아 보이나,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와 마찬가지 상황이니 말이다.박혜강(소설가. 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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