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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7) 수철- 성심원구간
입력 : 2016년 07월 08일(금) 00:00


사제 간의 정 따라, 경호강의 물길 따라
- 살아가는 길에 남명과 덕계같은 그런 스승, 그런 제자 하나 둘 수 있음은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리라. -

- 강돌 하나 골라 씻은 발 올려놓고 구겨지고 눅눅해진 마음도 함께 꺼내어 강바람에 말려 볼 일이다. 어느새 물기 말라 고들고들해지는 것이 어찌 젖었던 맨발뿐이겠는가. 길에서는 잃어버린 나를 찾기도 하지만 두 손에 움켜쥐고 있던 나를 버리기도 한다.-

- 웅석봉 산줄기는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마을로 내려오고 한 낮의 햇살을 품은 빨간 보리수 열매는 더없이 매혹적이다. 피운 꽃 떨궈내고 푸르게 익어가는 유월의 산하는 성숙한 여인을 닮았다.-


수철마을에서 등성이 하나를 넘으면 지막마을로 이어진다. 언덕 너머 필봉산의 필봉이 눈에 밟혀 자꾸 뒤돌아 보아진다.
여행자의 발소리에 놀랐나 보다. 논두렁 풀섶에서 쉬고 있던 개구리들이 모내기를 끝낸 논의 물속으로 일제히 쏟아졌다.

한 순간 뛰쳐나오는 수백 마리의 개구리떼는 마치 조용한 호수 위로 뛰어드는 여름날의 소나기 같았다.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신분증을 방금 교체한 어린 개구리들의 신바람이다. 어른 엄지손톱만한 크기지만 작은 뒷발을 오므렸다 뻗었다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는 헤엄 솜씨만은 손색없는 수영선수다. 이 녀석들이 자라면 시골마을의 밤은 연인을 부르는 별밤의 세레나데로 깊어갈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서 기적임을 본다.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과 그 설렘으로 둘레길 순례를 그만두어도 오늘하루, 후회하지 않을 성 싶다.

어린 생명들이 저마다 여름밤의 향연을 누리길 바라며 수철마을에서의 지리산둘레길은 시작됐다. 수철리는 가야왕국이 쇠를 구웠다는 전설과 함께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었다는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다.

마을회관 옆 도랑 길을 따라 등성이를 올라가면 시야가 일순 트이면서 오른편에는 웅석봉 줄기가 길게 뻗어 내리고 왼편에는 푸른 논들이 펼쳐진다. 모내기를 마친 논은 잘 깎아놓은 잔디밭이나 당구장의 당구대를 연상시키고 뒤돌아보면 멀리 왕산과 필봉산이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산꼭대기의 바위가 붓의 끝을 닮았다 해서 필봉이다. 필봉을 스치는 작은 깃털 하나라도 내게로 와서 이 까마득한 원고를 소담스레 채울 수 있다면 더 무얼 바라겠는가. 바람으로 가다가 멈춰서서 보고 또 보며 길을 간다.

지막마을의 ‘자연동천’

수철마을을 지나면 길옆 물레방아가 인상적인 지막마을을 만난다. 사제 간의 이야기가 향기로 서려 있는 마을이다. 처사의 삶을 살던 남명 조식선생과 제자인 덕계 오건선생의 이야기다.

둘레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샛길을 타고 건너편 지막마을로 들어서면 좁은 길가에 ‘춘래대(春來臺)’ ‘자연동천(紫煙洞天)’의 글귀가 새겨진 암벽을 볼 수 있다. 덕계가 스승 남명을 모시고 ‘산안개가 담배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웅석봉 줄기의 빼어난 풍치를 보며 사제 간의 정을 나누던 곳이다.

또 덕산에 은거하고 있던 남명은 공부를 마치고 산청으로 돌아가는 제자를 십리 밖까지 배웅하며 나무 그늘에서 술자리를 베풀었고 감읍한 제자가 취한 탓에 집으로 돌아가는 말위에서 떨어져 이마를 찧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남명은 64세였고 덕계는 43세였다.

살아가는 길에 남명과 덕계같은 그런 스승, 그런 제자 하나 둘 수 있음은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리라.



동네 마실길 같은 둘레길은 평촌 1, 2교를 지나 대장마을로 이어진다. 평촌마을의 뒤로 휘돌아가는 금서천은 얕지 않아 여름날 멱 감고, 깊지 않아 겨울 날 썰매지치기에 적당할 듯싶다. 개울로 떨어지는 벼루는 화순 동복댐의 적벽을 닮아 운치를 더한다. 효자 형제가 아버지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오가는 길에 쉬어갔다는 전설이 어린 쌍효암이다.

평촌마을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진 오르막 그늘 아래에서 지나던 바람을 불러 함께 놀던 정자가 반가이 손짓한다. 수철마을을 출발한 이래 쉴 수 있는 첫 공간이다. 땀을 식히며 배낭을 정리 한 뒤 길을 나서는데 담벼락 초피나무에 녹두 모양의 열매가 무리지어 햇살을 받고 있다. 두어 개 따서 손가락으로 으깨니 이국적 진한 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하지만 여행자는 아직도 초피와 산초를 구분하지 못해 그게 어쩌면 산초였는지도 모르겠다.

길은 곧바로 왼편으로 꺾어지며 대장마을을 향한다. 대장마을로 가는 길에는 온갖 과수들이 다가올 날들을 위한 채비로 분주하다. 포도와 머루는 한 공간에서 해바라기하고 꽃들을 버린 사과와 배, 호두, 복숭아, 감 등의 똘기들이 가을의 벅찬 꿈에 부풀어 있다.

보리수와 앵두는 한낮의 햇발에 취해 빠알갛게 농익고 진동하던 밤꽃도 향기를 덜어내는데 길가 뽕나무의 오디는 여름날을 이기지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봄날의 꽃들이 피고 진 자리에 수많은 알갱이들이 자기 빛깔로 익어가고 있다.

경호강에 발 씻고

개울 건너 왼편의 산청 금서 제2농공단지를 보며 길은 대장마을을 지나 ‘대전통영중부고속도’아래의 경호강에 다다른다. 경호강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지리산 북서면을 흐르는 물길과 합류, 진주 진양호를 거쳐 남강으로 이어진다. 하상구배(河床句配)가 큰 탓에 유속이 빨라 여름철 래프팅 장소로 명성이 높다.

길은 강 따라 산청읍을 향해 들어가다 경호1교에서 다시 되돌아 나온다. 강의 흐름을 따라 걷는 강변길이다. 계속된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걷느라 고생한 두 발을 위해 물가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어떠 하리’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산을 안고 흐르는 강물과 그 산 위에 얹히는 흰 구름의 무심을 헤아리는 여유로움도 ‘거울처럼 맑은’ 경호강이 주는 기쁨이다. 강돌 하나 골라 씻은 발 올려놓고 구겨지고 눅눅해진 마음도 함께 꺼내어 강바람에 말려 볼 일이다. 어느새 물기 말라 고들고들해지는 것이 어찌 젖었던 맨발뿐이겠는가. 길에서는 잃어버린 나를 찾기도 하지만 두 손에 움켜쥐고 있던 나를 버리기도 한다.

경호강을 오른편에 두고 웅석봉 자락을 보며 걷던 길은 산청고등학교를 지나 내리교를 건너면서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은 경호강 강변길을 따라 바람재를 거쳐 성심원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지곡사를 거쳐 바람재와 성심원으로 가는 숲길이다.

강변길은 지곡사 방향의 숲길과 합류하는 바람재까지 2km가량 강바람을 쐬며 걷는다. 어린아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거님길로 알맞다. 강변의 한밭마을 등에는 래프팅과 AVT를 즐기려는 이들을 위한 펜션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반면 오른쪽은 길은 강변길보다 두어 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선녀탕 등 웅석봉 계곡의 풍치와 시원한 숲길이 늘어난 시간을 보상한다.

지곡사 방향의 길은 내리교에서 오른쪽 길 따라 즐비한 펜션단지를 지나 내리저수지까지 2km가량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여름 날 걷기에는 만만찮다.

숲과 그늘은 내리저수지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저수지 둑길은 왼편의 에움길로 이어져 저수지를 반 바퀴 돈 다음 개어귀에 이른다. 지곡사 들머리이다.

웅석봉의 절경 ‘선녀탕’

지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한 때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수행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절터에 산신각과 돌우물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재의 지곡사는 지곡사지 한참 위에 위치하며 이름만 같을 뿐 본래의 지곡사와는 무관하다. 지곡사지에는 자귀나무 꽃이 한창이다. 가지위에 내려앉은 분홍 꽃들이 나비떼를 닮았다.

지곡사지에서 웅석봉을 향해 1km쯤 오르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계곡의 선녀탕을 이정표 삼아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비로소 숲길이 시작된다. 웅석봉 임도다. 한국자연보존협회가 ‘한국 명수 1백선’으로 선정한 선녀탕은 웅석봉의 절경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선녀가 몸을 씻고 산의 숨탄것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탕은 숲에 가려 은밀하다.

선녀탕에서부터 시작한 웅석봉 임도는 햇발을 받으며 걸었던 지난 발걸음을 보상하듯 숲 그늘 속 평지로 이어져 십자봉5거리까지 2km가량 계속된다.

숲길이 끝나는 십자봉5거리에 서면 내리교에서 헤어졌던 경호강 물길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도 조망된다.

길은 밤나무 길과 대나무 길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바람재3거리에서 경호강 강변길과 합류하여 성심원으로 향한다. 성심원까지는 2.4km를 남겨놓고 있다.

웅석봉 산줄기는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마을로 내려오고 한 낮의 햇살을 품은 빨간 보리수 열매는 더없이 매혹적이다. 피운 꽃 떨궈내고 푸르게 익어가는 유월의 산하는 성숙한 여인을 닮았다.



길 안내

1. 수철- 지막(0.8km)- 평촌(2.0km)- 대장(1.4km)- 내리교(3.2km)- 내리한밭(1.2km)- 바람재(1.5km)- 성심원(2.4km) 등 12.5km의 구간

2. 수철- 지막(0.8km)- 평촌(2.0km)- 대장(1.4km)- 내리교(3.2km)- 지성(0.6km)- 지곡(1km)- 내리저수지(0.4km)- 지곡사(0.5km)- 선녀탕(0.5km)- 십자봉 5거리(2km)- 내리3거리(0.5km)- 바람재(0.6km)- 성심원(2.4km) 등 15.9km의 구간

수철- 성심원 구간은 산청고등학교 건너편 내리교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경호강 강변길과 지곡사길로 구분된다.

강변길은 수철에서부터 시작해 경호강의 물길을 따라 웅석봉을 바라보며 성심원까지 가는 평탄한 길이다. 하지만 길을 걷는 내내 그늘 없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연속이다.

반면 지곡사길은 계곡과 숲길이 포함되나 거리가 강변길에 비해 3.4km가량 더 길다. 어느 길을 선택하나 대장마을 건너편에서부터 내리교까지 ‘교집합’의 강변길을 걸을 수 있다. 체력과 시간이 된다면 지곡사 방향을 선택하라는 의미다.

다만 두 갈래 길 모두 간이휴게소인 ‘둘레길 쉼터’가 없으므로 충분한 식수와 함께 태양빛을 피하는 수단을 채비로 갖춰야 한다. 대신 숙박시설은 민박보다는 펜션위주로 잘 갖춰져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산청시외버스터미널에 주차(무료 주차가능)한 뒤 군내버스나 택시로 갈아타고 둘레길 시작하는 수철마을회관까지 가면 된다. 수철마을까지의 군내버스 배차 간격이 2시간 정도로 조금 불편하다. 택시를 탈 경우 비용은 8천원이다. 지리산둘레길 산청안내센터(070- 4227- 6921)와 성심원안내센터(055- 974-0898)가 있다.시민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