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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6> 광양 백운산 숯불구이
입력시간 : 2016. 07.01. 00:00


'천하일미 마로화적' 그 명성 그대로

광양불고기는 특이한 조리법을 갖고 있다.

불고기에 쓰이는 재료는

어린 송아지나 암소고기이다.

그리고 고기를 가로로 살짝 칼질하여

마늘 등의 양념이 잘 배도록 해놓았다가

구리로 만든 석쇠에 올려

참숯불로 구워야한다.

불고기집치고 준비상이 대단하여

내 눈이 번쩍 뜨인다.

백운산이 품고 키워낸 제철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감자조림, 메추리알조림, 콩나물, 가지나물,

죽순나물, 오이나물, 도토리묵, 열무김치,

그중에서 묵은 김치와 취나물장아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식탁 위에 백운산 냄새가 그득하다.

장마전선이 북상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뚫고 광양시를 향해 달린다. 나는 그곳에서 만나야할 ‘맛과 멋’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광양에는 옥룡사에서 35년간 주석했던 도선 국사의 풍수지리가 있고, 신재 최산두 선생의 글 읽는 낭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바람결에 묻어있고, 피를 토하며 절명시를 썼던 매천 황현의 예리한 눈빛이 여전히 번득이고 있다. 그리고 독특한 광양말씨를 쓰면서 ‘맹랑하고 야무지게’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고 주동후 선생의 '광양으로 오게'라는 시가 차창에 새겨졌다가 지워지고, 또 새겨지곤 한다.

광양으로 오게

태어나는 곳과 사라지는 것이

삶과 죽음이

거리에서 들에서 바닷가에서 山속에서

무엇으로 되고 어떻게 되는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가진 고을

여기서는 그걸 볼 수 있지.

광양(光陽)의 뜻은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다. 그 뜻에 걸맞게 광양은 전국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오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장맛비를 뚫고 광양으로 가고 있다. 하필이면 왜 오늘처럼 기상이 좋지 못한 날에 광양으로 가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무슨 상관이랴. 광양은 생각만 해도 한없이 포근해지는 내 고향인 것을, 사랑하는 어머니 품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 앞문을 열면 숭어가 뛴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다. 숯불구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 지곡산장으로 가려면 봉강면 성불계곡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옥룡면 동곡계곡 안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그 이유는 백운산의 위용이 잘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단 중앙부에 우뚝 솟은 산이 하나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백두산 용왕담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거대한 용(龍)처럼 꿈틀거리며, 낮았다 뛰었다 휘돌곤 하다가 잠시 멈추게 된다. 그리고 호남정맥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져 나온 한 줄기가 남도 땅을 휘돌며 흘러내리게 된다. 그 호남정맥의 끄트머리에서 창공으로 불쑥 치솟은 명산이 하나 있는데 그게 곧 광양 백운산(1,222m)이다.

백운산은 ‘맛과 멋’을 동시에 갖춘 산이다.


우선 ‘멋’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라면, 앞서 거론했던 도선 국사, 신재 최산두, 매천 황현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시대에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고시(古詩)에서 해동제일이라고 칭송을 받았던 김황원, 문화시중을 역임했던 김약온 등을 키워냈던 산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던가.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과 독립운동가이며 의병장이었던 황벽학 등의 위인을 무수하게 낳기도 했으니 백운산(광양) 아래서 함부로 인물 자랑을 하다가 큰 코 다칠 수 있을 것이다.

백운산은 ‘맛’도 한껏 품고 있다. 물론 광양 사람들의 이야기일 테지만, “전주 음식이 좋다지만 광주만 못하고, 광주 음식이 좋다지만 광양만 못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빈말은 아닐 듯싶다.

자고로 음식 맛이란 식재료가 우선 좋아야하는 법인데, 광양은 그런 면에서 아주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건 광양지역에서 전해오는 “앞문을 열면 숭어가 뛰놀고 뒷문을 열면 노루가 뛴다”라는 이야기만 소개해도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운산은 전남에서 지리산 노고단 다음으로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식생이 다양하고 보존이 잘 되어있어서 사계절 끊이지 않고 각종 산채와 버섯류를 채취할 수 있다. 그리고 5대강 중에서 가장 청정한 섬진강에는 은어, 참게, 다슬기, 재첩, 장어 등의 식재료가 널려있다.

예전의 광양만에는 꼬막, 백합 등의 패각류는 물론이고 김을 비롯한 해초류 그리고 숭어와 전어 등의 생선이 풍부했다.

동곡계곡에서 차를 멈추고 백운산을 바라본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장맛비가 산허리에 운해(雲海)를 펼쳐놓았다. 백운산이라는 이름씨처럼 아름답고 장관이다. 그런데 이 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과 멋’의 산임에 틀림없다.

*** 천하일미 마로화적을 아시나요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광양불고기’라는 간판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광양 사람이 이곳에 와서 불고기집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광양불고기 비법을 배워오기라도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튼 그런 간판이 널려있다는 것은 광양불고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반증일 테다.

광양불고기는 ‘천하일미(天下一味) 마로화적(馬老火炙)’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서 ‘마로’는 광양의 옛 지명이고, ‘화적’은 불고기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의 맛이 광양불고기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고기의 유래는 고구려의 ‘맥적(貊炙)’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음식디미방》에 ‘설야멱(雪夜覓)’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지금의 불고기와 유사한 것이다. ‘설야멱’이란 눈 내리는 밤에 벗과 화로를 마주하고 앉아서 고기를 굽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시의 전서》에는 ‘너비아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아무튼 광양불고기는 특이한 조리법을 갖고 있다.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불고기에 쓰이는 재료는 어린 송아지나 암소고기이다. 그리고 고기를 가로로 살짝 칼질하여 마늘 등의 양념이 잘 배도록 해놓았다가 구리로 만든 석쇠에 올려 참숯불로 구워야한다.

그밖에도 광양불고기만의 특이한 비법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광양불고기라는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똑 같은 광양불고기는 아닌 셈이다.

***백운산 맛, 광양의 맛이다

봉강면 성불계곡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광양시 봉강면 성불로 71-8. 지곡산장. 정삼석 사장이 운영하는 지곡산장에 도착하자, 이 지역 모 대학교의 교수이며 평론가인 문호성 후배와 언론에 종사하는 김귀진 죽마고우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반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광양시 전 시장이며, 얼마 전부터 모 대학교를 이끌어가는 이성웅 총장께서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함께 자리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쉽기 그지없다.

취재를 잘 하도록 식당 방과 음식이 이미 예약된 상태였다. 불고기집치고 준비상이 대단하여 내 눈이 번쩍 뜨인다. 백운산이 품고 키워낸 제철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감자조림, 메추리알조림, 콩나물, 가지나물, 죽순나물, 오이나물, 도토리묵, 열무김치, 그중에서 묵은 김치와 취나물장아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식탁 위에 백운산 냄새가 그득하다.

나는 여행할 때면 그 지역이나 국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고집한다. 타지에 가서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여행의 재미를 절반이나 잃어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역이나 국가의 음식이란 곧 그곳 사람들의 살덩어리요 혼이나 마찬가지다.

참숯불이 나온다. 구이용 고기가 나온다. 오늘의 맛 기행은 전국에 유명세를 떨친 광양불고기의 식재료인 소고기가 아니다. ‘백색고기’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잘 저며진 닭고기이다. 탄력이 느껴지고, 분홍색 살코기에 크림색 껍질 상태인 것으로 보아 신선도 만점이다. 모래주머니와 내장 등의 부산물도 보인다.

부지불식간에 침샘이 자극된다. 음식이란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게 아니다. 좋은 음식이나 맛있는 음식은 눈으로만 봐도 금세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닭고기가 참숯불 향내를 한껏 둘러쓰고 있다. 정삼석 사장의 부인이 숙달된 솜씨로 고기를 직접 구워준다. 불고기류는 굽는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고향이 이곳인 내 입맛은 정확하다. 이 맛이야말로 백운산 맛이요 광양의 맛이다.




***벽사의 닭울음소리 들려온다

창밖에서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우리는 참숯불에 둘러앉아 맛깔스러운 닭 불고기를 한 점도 남김없이 해치운다. 그리고 닭 뼈를 우린 국물에 끓인 녹두죽 그릇도 바닥까지 긁는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는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의 매화향기를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소나 돼지에 비해서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한 닭고기의 효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동의보감》등의 의서를 인용하여 너절하게 늘어놓으면 사족에 불과할 것이다. 단 한마디로 표현해서, 백년지객인 사위가 찾아오면 장모가 잡아주는 게 닭이 아니던가.

식사를 잘 마친 우리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카페로 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복이지만,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크나큰 복이다. 백운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차 한 잔 나누며 ‘백운(白雲)’의 깊은 의미를 새긴다.

장맛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백운산에 내리는 장맛비는 ‘초록비’고 ‘비꽃’이다. 어디선가 벽사(辟邪)의 닭울음소리 들려온다. 여기는 모든 게 맛과 멋이다. 박혜강(소설가·전 광주전남 소설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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