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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 (5) 금계- 동강구간
입력시간 : 2016. 06.10. 00:00


지리산둘레길 함양안내센터에서 바라본 의탄교 너머로 의평마을이 보이고, 멀리 지리산 주봉위로 흰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지리산에 섬이 있었네

“늙은 당산목은 기억하리라. 한국전쟁 당시 불타던 마을의 화염과 칠선계곡에 메아리치던 총성의 날카로운 울림을. 풀잎보다 가벼이 스러지던 목숨들을”

“여름이 점령군처럼 밀려오는 오월의 산천은 눈부신 연초록의 배냇내로 가득하다. 시간속에서 계절의 순환은 변함없이 오고 또 가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생명은 늘 새롭다”

남원을 넘어 함양에서 떼는 첫걸음은 금계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를 건너면서부터 시작한다. 내는 ‘임천’이라 불린다. 폭이 넓어 하천이나 계곡보다는 강에 가깝다. ‘운봉- 인월’구간에서 피바위의 전설을 안고 있는 람천이 이곳으로 이어진다.

추성, 의평, 의중, 세동마을 등 칠선계곡 일대에 자리한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금계마을에서 임천의 ‘의탄교’를 지나야 한다.

의중, 의평, 금계 마을을 합쳐 의탄리라고 한다. “‘의탄’은 고려시대 숯을 구어 공납하던 의탄소(義灘所)가 있었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라고 (사)숲길에서 펴낸 ‘지리산둘레길’책자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숯을 가리키면서 숯탄(炭) 자를 사용하지 않고 여울탄(灘) 자를 쓰는 까닭은 알 수 없다.

현재는 숯보다 옻칠 등 옻나무를 이용한 제품 생산으로 유명하다. 길을 가다 보면 옻나무를 키우는 밭과 야생 옻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의탄교를 지나 의중마을 어귀에는 500년의 세월동안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가 일산(日傘)처럼 그늘을 드리우며 쉬어가길 권한다.

늙은 당산목은 기억하리라. 한국전쟁 당시 불타던 마을의 화염과 칠선계곡에 메아리치던 총성의 날카로운 울림을. 풀잎보다 가벼이 스러지던 목숨들을.

한국전쟁 당시 의중마을을 비롯한 칠선계곡 일대의 마을들은 빨치산 토벌을 위한 국군의 소개 작전으로 모두 불태워졌다. 지리산둘레길 함양안내센터의 주차장은 당시 마을 주민들이 임시 움막을 짓고 이주했던 학교 운동장이기도 하다. 금계마을을 ‘노디(징검다리를 지칭하는 지방어)목’이라 부르며 정겹게 오갔을 산촌마을의 아픔이 새삼스럽다.

의중마을의 당산은 용유담으로 직행하는 숲길과 벽송사를 거쳐 용유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용유담으로 바로 가는 길은 임천을 왼편에 두고 산기슭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여행자가 선정한 ‘둘레길 베스트 숲길 5’에 들 만큼 걷기에 편하고 또 아름답다. 예전에 지났던 길이어서 이번에는 벽송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한남대군이 단종복위 사건으로 위리안치된 뒤 3년만에 숨을 거둔 ‘새우섬’- 섬은 육지로 변했으나 강은 지금도 가끔씩 소리 내어 운다.


서산대사와 벽송사

벽송사 길은 오른쪽 칠선계곡을 끼고 천왕봉 방향으로 직진하여 오르는 호젓한 숲길이다. 칠선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와 숲속의 우짖는 새소리에 취하다보면 가파름 정도야 금방 잊는다.

산새들의 노래는 명료하고 단순한 이어부르기의 반복이다. 이 산의 테너가 “쑥국! 쑥국!” 2음절의 노래를 뽑아내면 계곡너머의 소프라노가 “삐이익! 삐이익!” 3음절로 받고 다시 4음절의 베이스가 “꾸구구국! 꾸구구국!” 화답하면 저 숲에서 5음절의 알토가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이어가며 한 소절을 마무리한다.

“휘이익! 휘이익!” 휘파람 소리로 소프라노의 흉내를 내어 보는데 “삐이익! 삐이익!” 화답이 들려온다. 산새는 유쾌히 속아주고 나는 산새의 속아줌이 유쾌하다.

여름이 점령군처럼 밀려오는 오월의 산천은 눈부신 연초록의 배냇내로 가득하다. 시간 속에서 계절의 순환은 변함없이 오고 또 가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생명은 늘 새롭다.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벽송사의 목장승. 변강쇠보다 무서운 세월이 목장승의 머리에 내려 않고 있다.


길섶의 꽃들이 반가이 아는 체를 한다. “너는 붗꽃, 너는 둥글레, 너는 비수리라고도 하는 야관문, 너는…노루발이지? 금은화도 오고 현호색과 싸리꽃도 왔구나. 근데 너는 누구였더라?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의 빈약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채우는 그들의 얼굴은 해맑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성인이 되어 찾아온 제자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듯 길섶의 꽃들과 눈 맞추며 가는 길은 싱그럽다.

1시간쯤 지났을까. 오르막의 끄트머리에서 서암정사 어귀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벽송사 아래 위치한 사찰로 천연 암석을 뚫어 만든 법굴암으로 유명하다. 사찰 앞에 서면 칠선계곡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낮게 깔리는 스님의 염불 소리에 대웅전의 황목련 꽃이 조용히 지고 있다.

벽송사로 가는 길은 서암정사에서 내려와 새롭게 시작된다. 벽송사는 한국불교 최고의 종가답게 가는 길을 쉬 내주지 않는다. 10여분 이상 가량 콘크리트 포장길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벽송사 가는 길 중간쯤에 길 양 켠으로 목장승이 마주보고 서있고 벽송사 안에도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한 쌍의 목장승이 보존돼 있다. 사찰 안의 목장승은 원래 사찰 초입에 세워져 수문과 호법의 신장상(神將像)의 역할을 했으나 보존을 위해 경내로 옮겨 놓았다.
벽송사의 미인송과 도인송- 도인을 향한 미인의 마음은 여전히 애잔타.


벽송사의 목장승은 가루지기타령에 나오는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호기심을 끈다. 가루지기타령에는 ‘변강쇠가 옹녀와 지리산으로 들어와 살면서 나무대신 장승을 땔감으로 사용하다 혼쭐이 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요 무대가 벽송사를 중심으로 한 함양군 마천면 일대라는 것이다.

현재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곳을 놓고는 함양군과 남원시가 서로 ‘변강쇠의 고장’을 주장하고 있다. 함양군은 오도재에 ‘변강쇠 공원’을, 남원시는 백장계곡에 ‘쌈지공원’을 각각 조성해 놓고 있다. 남원시는 ‘강쇠주’와 ‘옹녀’라는 민속주까지 생산하고 있다.

“강은 끝없이 뻗어 올라가고 양켠의 기암괴석은 뒤틀려 불끈 튀어나오거나 날카롭게 일어선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치솟으려 용틀임하는 용의 비늘 또한 저러하리라”

“팽나무는 500여 년 전 이곳을 지나던 패기에 찬 젊은 관리가 무덤에서 꺼내어져 다시 죽임을 당할 줄 알았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시간들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새우섬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에 섬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세조반정과 관련된 한남대군의 유배지였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곳

‘천하의 잡놈’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변강쇠와 그에 버금가는 옹녀다. 그런 남녀가 오롯이 한 곳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테니 이들의 행적에 따라 남원과 함양이 역할을 나누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벽송사는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팔도도총섭으로 승병 출정식을 거행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불교 출가 스님의 대부분이 서산문파와 부휴문파에 속한다고 하는데 벽송사가 이들 선맥의 근원이다.

하지만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다 국군의 토벌작전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안고 있다. 지금도 절터 주변을 일구다보면 간혹 인골이 발견된다고 하니 당시의 참혹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벽송사 선방 뒤에는 수령이 300년 쯤 되는 ‘미인송’과 ‘도인송’이라는 소나무 두 그루가 전설을 안고 서 있다. 미인송이 도인송을 향해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미인이 도인에게 연정을 품고 유혹을 했으나 도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미인은 연정을 버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곁에서 바라보기로 했다’는 것이 이들 소나무에 얽힌 전설이다. 그렇지만 미인송은 사모의 마음을 마저 버리지는 못했나 보다. 버팀목에 의지해가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도인송을 향해 기울고 있는 미인송의 마음이 애잔타.

용유담으로 가는 길은 벽송사 장승각에서 산길로 접어들며 시작된다. 용유담까지 2.7km다.

오르막 숲길은 좁고 구불구불 휘어지며 가파르게 벽송산을 넘는다. 서산대사도 넘고 승병들도 넘었을 것이다. 목탁대신 창을 들어야 했던 스님들은 얼마나 참담했으랴. 내 산하를 지키기 위함이지만 입가의 ‘나무아미타불’은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오르막이 가파르면 내리막 또한 가풀막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 벽송산 정상에서 용유담까지 1.8km의 내리막 숲길 역시 오르막 못지않게 가파르다. 길섶 곳곳에 하얀 쪽동백이 은하수로 내려 앉았다. 밟으면 별들이 소리 내어 울 것 같아 떼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모전마을의 용유담에 닿기 직전, 아치형의 모전교 아래 계곡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새롭게 가야 할 동강마을까지의 7km가 넘는 길은 뙤약볕 아래의 콘크리트 포장길의 연속이다. 세동마을까지 ‘지리산둘레길 전설탐방로’가 계곡 따라 샛길로 조성돼 있으나 말 그대로 ‘잠깐’이다.

벽송사를 경유하여 용유담 방향으로 가게 되면 정작 용유담을 비켜 지나치기 십상이다. 용유담은 모전마을 이정목에서 동강마을 반대방향으로 100여m 쯤 떨어져 있다.

용유교에서 바라 본 용유담에는 옥색의 푸른 물빛에 푸른 하늘과 푸른 지리산이 그림처럼 담겨 있다. 강은 끝없이 뻗어 올라가고 양켠의 기암괴석은 뒤틀려 불끈 튀어나오거나 날카롭게 일어선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치솟으려 용틀임하는 용의 비늘 또한 저러하리라.

지금도 수달이 살고 지리산 계곡에만 산다는 가시어가 산다고 한다. 근래에 지리산댐(문정댐) 예정지로 선정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리산 최고의 명승지 가운데 하나인 용유담이 홍수조절댐으로 바뀌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동강마을의 우람한 팽나무- 500여 년 전 천왕봉으로 오르던 김종직의 땀을 씻겨주었을 것이다.


한남대군과 눈물의 ‘새우섬’

길은 닥종이 생산지로 유명한 세동마을을 지나 운서마을과 구시락재의 언덕배기를 거쳐 목적지 동강마을에 닿는다. 마을 초입에는 수령 600년의 팽나무 4그루가 쉼터를 만들고 있다. 나무에는 위엄이 어리고 그늘은 짙다.

조선조 성종 때 김종직이 지리산 기행을 마치고 남긴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그가 이곳을 거쳐 구시락재를 넘고 운서마을을 지나 천왕봉으로 올랐다고 적고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조의제문’으로 사후 부관참시 된 비극의 인물이 김종직이다. 팽나무는 500여 년 전 이곳을 지나던 패기에 찬 젊은 관리가 무덤에서 꺼내어져 다시 죽임을 당할 줄 알았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시간들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어지는 동강- 수철 구간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새우섬’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에 섬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세조의 계유정난과 관련된 한남대군의 유배지였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수양대군과 단종, 김종서와 한명회, 사육신과 생육신, 살생부, 세종의 고명대신이면서도 후대에 나물의 이름이 되어버린 신숙주... 계유정난과 관련된 이름과 단어들이 어지럽게 다가온다.

계유정란은 정난(政亂)이라 하지 않고 정난(靖難)이라 쓴다. ‘난리를 안정시켰다’는 뜻이다. 성공한 쿠데타이기 때문이리라. 역사는 돌고 도는가. 5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신군부도 ‘광주를 안정시켰다’고 했다.

한남군은 세종대왕의 18남 4녀중 12번째 왕자로 조카인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새우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됐다.

그는 단종복위를 함께 도모했던 여섯째 형(금성대군)이 둘째 형(세조)에 의해 유배지에서 사사되고 첫째 형(문종)의 아들인 단종마저 유배지에서 교살된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한남대군은 결국 서른 한 살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새우섬에서 마감한다.

그가 흘린 눈물은 새우섬을 휘돌아 가는 엄천강 어디쯤에서 흐름을 멈추고 있을 텐가. 동강마을에서 새우섬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둘레길 코스에 포함되지도 않는데다 이정표도 하나 없다.

엄천교 앞 ‘동강식당’ 주인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적조암’ 방향으로 강길따라 쭈욱 올라가세요.” 아주머니는 새우섬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어디, 대군(大君)을 뵙기가 쉬운 일이겠는가. 엄천강을 오른쪽에 두고 제방길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데 정면의 햇살이 화살로 살갗에 꽂힌다. 그렇게 30여분쯤 걷다보면 한남군의 이름을 딴 ‘한남교’와 다리 건너 ‘한남마을’을 만나게 된다. 다시 한남마을 앞을 지나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5분쯤 금계방향으로 걸으면 왼쪽으로 급하게 휘어 흐르는 엄천강 너머로 비로소 등굽은 새우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우섬은 이제 삼각주가 되어 위리안치가 풀린 지 오래다. 하지만 새우섬 앞을 지나는 엄천강은 말없이 흐르다가도 비라도 내리면 소리 내어 거칠게 울곤 한다. ‘우--!’. 비정한 권력 앞에 절망해야 했던 젊은 왕자의 복받치는 설움이다.
마적도사의 전설이 흐르는 용유담은 하늘을 담고 산을 담아 비가오지 않아도 등천(登天)할 기세다.


<아홉 마리 용과 마적도사 전설>

용유담 부근에 마적도사가 마적사를 짓고 당나귀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마적도사는 생필품이 필요하면 당나귀 등에 쪽지를 달아 장을 보아오도록 하곤 했다. 장을 본 나귀들이 용유담으로 돌아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아홉 마리 용을 시켜 다리를 놓아 계곡을 건너오도록 했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들을 장에 보내놓고 지리산 산신령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용유담의 용들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바람에 당나귀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당나귀는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울부짖다 지쳐서 그만 죽고 말았다. 나귀가 죽어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나귀바위다.

마적도사는 뒤늦게 화가 치밀어 장기판을 부수어 버렸다. 장기판의 부서진 조각들이 지금도 계곡의 곳곳에 흩어져 있다.

<빗방울 하나가 낙동강까지 가는 여정>

지리산 고리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굽이굽이 흐름 속에 이름을 달리하면서 섬진강과 낙동강으로 흐른다. 고리봉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쪼개져 동남쪽으로 튀면 영남의 젖줄이 되고 서북쪽으로 튀면 호남의 젖줄이 되는 셈이다.

남원의 운봉 들녘을 가로질러 흐르던 ‘람천(濫川)’은 인월읍을 지나 산내면에서 뱀사골계곡과 합류하며 ‘만수천(萬壽川)’으로 바뀌어 함양군 마천면에 닿는다.

만수천은 다시 한신계곡과 칠선계곡를 받아들여 ‘임천(臨川)’이라는 이름으로 용유담까지 흐른 뒤 휴천면까지 ‘엄천(嚴川)’ 또는 ‘엄천강’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용유담은 내(川)가 흘러흘러 강(江)이라는 여의주를 무는 지점이다.

엄천강은 산청으로 흘러 ‘경호강(鏡湖江)이 되고 이어 진주로 가서 남강(南江)으로 바뀐 뒤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엄천강- 바래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굽이굽이 흐름 속에 이름을 바꿔가며 섬진강과 낙동강으로 흘러 이 땅의 젖줄이 된다.


길 안내

금계- 동강 구간은 둘레길 함양안내센터(055-964-8200)에서 시작된다. 지리산둘레길의 영남지역 시발점으로 전설과 전설보다 더한 역사의 생채기를 밟고 지나는 길이다.

금계마을- 의중마을(0.7km)- 벽송사(2.0km)- 용유담·모전마을(2.7km)- 세동마을(2.4km)- 송문교(1.6km)- 운서마을(1.5km)- 구시락재(0.7km)- 동강마을(0.8km) 구간으로 벽송사를 들릴 경우 12.4km에 달한다. 의중마을에서 용유담까지는 3.6km이며, 동강마을에서 새우섬까지는 용유담 쪽을 향한 역방향으로 1.5km가량이 추가된다.

벽송사와 서암정사, 용유담, 새우섬 등은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 금계마을과 구간 종점인 동강마을에 팬션 형태의 민박이 많으나 도중에 음식 파는 곳이 없는 만큼 간식을 챙겨야 한다. 광주에서 둘레길 함양안내센터까지는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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