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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4> 장성 축령산 꿩 정식(上)
입력 : 2016년 06월 03일(금) 00:00


친구와 청담 나누며 꿩 코스요리 '꿩 먹고 알 먹고'

미리 준비된 손님맞이 상에 야채샐러드와 해바라기씨앗 그리고 꿩알이 놓여있다

첫 번째 음식은 꿩 육회와 만두가 나온다.

두 번째 음식은 꿩의 뼈를 우려낸 국물에 각종 버섯과 꿩 완자가 들어있는 쟁개비(음식을 끓이는 조리기구)가 나온다. 꿩의 가슴살을 저며 샤부샤부용 고기를 담은 접시도 함께 나온다.

세 번째 음식은 전골이다. 된장을 풀어서 간을 맞춘 국물에 꿩고기, 목이버섯,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양파, 당면 등이 들어있다.

네 번째 음식은 샤부샤부용 육수에 끓인 떡국이다.

감잎차가 후식으로 나온다. 담백한 떡국으로 지운 욕심을 다시 한 번 말끔히 씻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비와 학문의 숲을 찾아간다. 전남지역에서 선비가 많고 학문이 높은 곳을 가리킬 때 흔히 ‘광나장창’이라고 일컫는다. 그건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의 앞 글자이다.

오늘은 절친한 차동민 소아청소년과 원장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맛과 멋 기행’ 길에 올라, ‘광나장창’ 중의 한 곳인 장성의 필암서원부터 찾는다. 이곳은 흥선 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사원이며,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그는 문묘에 배향된 18명의 현인 중에서 전라도 출신으로 유일한 선비이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흥선 대원군이 호남을 평하면서 ‘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장성 지역은 하서 김인후를 필두로 노사 기정진과 망암 변이중 같은 당대 거유(巨儒)를 배출한 고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필암서원에서 가까운 곳에 청백리인 아곡 박수량을 기리는 백비(白碑)가 있어서 더욱 자랑스럽다.

내가 장성을 찾을 때마다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성은 선비와 학문의 숲이기도 하지만 청백리의 기개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박수량은 청백리의 대명사이다. 그는 황희, 맹사성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청백리라고 일컫는데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일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이런 청빈한 삶이 곧 멋이 아니고 무엇일까.

아주 옛날, 소현령(蕭縣令)이 부구옹(浮丘翁)에게 말하기를, 고을을 다스리는 여섯 자의 비결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섯 자 모두가 청렴할 염(廉)자였다. 박수량은 벼슬살이를 하던 중에 오로지 ‘염’을 화두로 삼으며 일평생을 살았으니 길이 사표(師表)로 받들어야할 분이다.

김인후가 지은 박수량의 묘지명을 보면 “삼정승 육판서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초가삼간조차 없었던 청렴한 선비”라고 했다. 그리고 명종은 그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기 위해 비를 내리면서 함부로 글을 새기면 그의 청렴함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칠까봐 한 글자도 새기지 못하게 했다.

아곡 박수량이 그리운 세상이다.



***만두에서 생명 존중 사상을 배우다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225(홍길동로 388-10).

꿩 정식을 판매하는 ‘산골짜기’라는 식당의 주소와 도로명이다. 사장은 김두현(52) 씨와 박영숙(50) 여사 부부이다.

내가 이 식당을 처음으로 찾아온 게 아니다. 수년전에 장성고등학교 반옥진 교장(당시) 친구가 데리고 왔고, 이후에는 광주·전남 산림조합 최창호 본부장(당시)이 안내하여 꿩 정식을 사주어서 먹었던 곳이다. 나는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해서 ‘맛과 멋 기행’의 주요 장소로 이곳을 택했던 것이다.

‘산골짜기’ 식당은 팀당 따로 마련된 방에서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음식을 먹으며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친구와 청담을 나눌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된 손님맞이 상에 야채샐러드와 해바라기씨앗 그리고 꿩알이 놓여있다. 그 가운데 꿩알이 눈에 번쩍 띈다. 때마침 꿩 산란기라서 맛볼 수 있는 귀물이다. 크기는 메추리알보다 크고 달걀보다 적다. 맛은 제법 고소하다.

어린 시절, 보리밭이나 풀숲에서 꿩알을 주우면 운수 대통한다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세시풍속에 따르면, 정월 열 나흗날이나 대보름날에 꿩알을 주우면 그해에 풍년이 들거나 운수대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꿩알을 줍는 것은 불가능하다. 꿩의 산란기가 4~7월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꿩 정식은 코스요리다. 첫 번째 음식은 꿩 육회와 만두가 나온다. 박영숙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육회는 꿩 가슴살과 오이를 고추장으로 버무린 거라고 한다. 만두의 소는 꿩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함께 넣는다고 한다.

만두를 보면서 이런 고사를 떠올린다. 송나라의 《사물기원》을 보면, 전쟁에 나섰다가 배를 타고 돌아오던 제갈 공명이 풍파를 만나자, 어떤 부하가 사람 머리 아흔아홉 개로 물귀신에게 제사를 올리자고 했다. 그러자 제갈 공명이 생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하여 양고기를 밀가루로 싸고 사람의 머리처럼 그려서 제사를 지냈더니 풍파가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게 만두의 기원이랄 수 있다.

나는 만두의 기원을 소개하고 싶기보다 제갈 공명의 생명 존중 사상을 높이 사고 싶어서 이런 고사를 소개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모든 생명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인들은 제갈 공명을 평가하면서 귀신도 탄복할 만큼 탁월한 지략가요 정치가라고 하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상이 대단하다는 것도 놓치지 않아야할 점이다. 평소 ‘그의 꿈은 영웅이 아니라 인민이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이 혼탁하다. 박수량에 이어 제갈 공명도 그립다.



***우리 민족은 미식가이다

두 번째 음식은 꿩의 뼈를 우려낸 국물에 각종 버섯과 꿩 완자가 들어있는 쟁개비(음식을 끓이는 조리기구)가 나온다. 꿩의 가슴살을 저며 샤부샤부용 고기를 담은 접시도 함께 나온다.

샤부샤부는 일본어이며 ‘살짝살짝’ 또는 ‘찰랑찰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와 비슷한 중국요리는 훠궈[火煱]이고, 서양요리는 핫팟(Hot pot)이다. 그리고 샤부샤부는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철모에 물을 담고 끓여서 사냥한 동물을 살짝 익혀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각종 버섯에서 숲의 싱그러운 냄새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다. 샤부샤부용 가슴살은 속이 비칠 정도로 얇게 저며진 상태이다. 접시 위에 놓인 모습이 우아한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있는 듯하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다고 했는데 어떨까?

끓는 육수 속에 꿩고기를 이삼초 담갔다가 꺼내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듯 부드럽다. 양념장은 간장에 사과, 무, 배, 겨자 등을 넣고 만들었다고 한다. 완자와 버섯을 건져 먹고 남은 국물은 버리지 않는다. 차후에 떡국을 끓이는데 쓰인다고 한다.

샤부샤부를 모두 먹고 나서, 이번에는 국물 속에서 보물찾기라도 하듯 잘 익은 완자를 꺼내 먹는다. 갑자기 ‘진주탕’이라는 음식이 생각난다.

1680년대의 《요록》이라는 음식 책에 ‘진주탕’이라는 게 있다. 그 음식은 꿩고기를 콩알만하게 저며서 밀가루를 씌워 양념 섞은 장즙(醬汁)에 삶아 내는 일종의 맑은장국이다. 장국 속의 작은 꿩고기 단자가 마치 진주알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세 번째 음식은 전골이다. 된장을 풀어서 간을 맞춘 국물에 꿩고기, 목이버섯,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양파, 당면 등이 들어있다. 다른 전골들을 보면 시금치 같은 야채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는데 이 전골은 버섯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유를 물어본다. 박영순 사장의 말에 따르면, 꿩과 야채가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또 꿩고기는 기름기가 없어서 매운탕 식의 전골로 만들면 맛이 틉틉해진다(액체가 맑지 않고 농도가 진하다는 전라도의 말)고 한다.

전골 음식이라면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철이 제격일 터이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다. 전골은 엣 병사들이 진중에서 조리기구가 변변치 않아 머리에 썼던 철관(鐵冠)에 고기나 생선을 끓여먹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음식은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전골은 즉석에서 음식을 알맞게 익히고 따뜻한 상태로 먹을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요리법이다.

우리 민족은 전골뿐만 아니라 탕과 찌개로 구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불도 구분을 했다. 센 불을 무화(武火), 약하고 뭉근하게 타는 불을 문화(文火), 그 중간 불을 문무화(文武火), 잿불을 여화(女火)나 ‘할미불’, ‘새아씨불’이라고 했다. 아마 우리 민족만큼 대단한 미식가도 없을 터이다.

네 번째 음식은 샤부샤부용 육수에 끓인 떡국이다.

우리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것이 있다.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 대신에 닭고기를 넣어 떡국을 끓인다고 해서 유래한 속담이다.

소고기, 닭고기, 굴을 넣은 떡국은 흔하지만 꿩고기를 넣은 것은 귀물이다. 이미 포만감을 느낀 상태지만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다.

설날에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재물이 굴러온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더 먹는 것도 싫고, 작가인 주제에 재물을 탐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기름기 없는 꿩고기로 만든 담백한 떡국이라서 욕심을 지워주기에 알맞다.

감잎차가 후식으로 나온다. 담백한 떡국으로 지운 욕심을 다시 한 번 말끔히 씻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축령산이 우리를 손짓한다. 벌써부터 피톤치드 향이 후각을 건드린다. 꿩 정식의 맛 이야기는 편백나무 숲을 거닐며 해도 좋을 듯하다.박혜강(소설가·전 광주전남소설가협회장) 시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