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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3> 함평 육회비빔밥
입력시간 : 2016. 05.20. 00:00


함평 비빕밥 거리
육회비빔밥 그릇 속에 함평천지 질주하던 ‘바람의 영혼’ 고스란히

육회가 부족했던 그때 그 시절

비빔밥에 돼지비계를 넣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돼지비계는 비빔밥의 고소함을

배가시켜줄 뿐만 아니라

콜라겐까지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해풍을 쐬는 너른 들녘에서

초록을 수놓고 있던 신토불이 미각들도

그 그릇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 모든 재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느끼고

도와주면서 최상의 맛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함평의 ‘咸’ 자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그 모든 것들의 ‘과학적인 조합’과 궁합이

곧 함평 육회비빔밥의 맛이요 멋의 전부

함평천지로 들어선다. 산은 기산(箕山)이요, 물은 영수(潁水)다.

요임금이 나라를 준다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은거했다는 허유와 소부의 설화가 떠오른다. 이런 ‘멋지고 맛깔스러운’ 상황에서 '호남가' 한 소절 신명나게 읊조리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때/ 흥양에 돋는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에 아침안개, 영암에 둘러있다…….”

키가 그만그만한 산들과 인심 좋은 이웃 아저씨의 너른 가슴팍 같은 들녘이 눈앞에 펼쳐진다. 서해의 짭짜래한 갯벌 냄새를 머금은 해풍이 시나브로 밀려온다.

들녘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온갖 푸성귀들의 쌉싸래한 맛들도 입맛을 벌써 돋우기 시작한다.

---모든 만물은 서로가 서로를 느낀다

기각사거리를 지나고 영수교를 건넌다. 과녁빼기에 기산공원(함평공원)이 있다. 세심정이라고 하는 정자에 오르니 ‘기산영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조 높은 선비, 이안의 영파정은 좌측에 있다. 영선정이라는 2층 팔각정이 발아래에 버티고 서서 영수천(함평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기산에는 생명의 찬란함이 5월의 녹음으로 펼쳐져있다. 녹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영수천은 인간의 귀나 마음을 감히 씻어내기 송구스럽고 아까울 정도로 해말갛다. 청풍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윤슬이 일렁대고, 물에 잠긴 한 그루의 왕버들이 선풍(仙風)을 자아내고 있다.

기산공원 일대에는 흥선 대원군의 척화비와 기미년 3·1의거 열사기념비를 비롯하여 5·18민중항쟁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에 이르기까지 함평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있다. 그리고 여기가 지조의 고장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나비축제 때, 도올 김용옥의 강연이 있었다. 도올은 함평의 ‘함(咸)’자를 주역으로 풀이하면서 “모든 만물은 서로가 서로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함평이라는 지명에 삼라만상의 이치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 세상의 어느 것이 감히 삼라만상의 이치를 벗어나랴. 자연의 법칙이란 서로가 서로를 느끼면서 영향력을 주고받게 되어있다. 오늘 취재하게 될 ‘육회비빔밥’ 역시 음식의 여러 재료들이 서로 아우러지고 서로를 느끼는 과정에서 한 차원 더 높은 맛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비빔밥에서 음식 재료들이 섞이며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잘못이다. 각 재료의 고유하고 독특한 맛은 그대로 유지하되, 서로의 맛을 도와주거나 보충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차원 높은 맛으로 올라서는 효과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 찬란하게 핀다
함평비빕밥 거리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비빔밥이다. 그런데 지역마다 비빔밥의 재료와 조리 과정이 다르고 특색 또한 다양하여 비빔밥이 ‘천의 얼굴을 가진 음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800년대 말엽,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에서 비빔밥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책에서는 ‘부뷤밥[골동반(骨董飯)]이라고 하여 밥에 나물과 볶은 고기, 전유어, 튀각 등을 넣고 소금과 기름을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고 웃기(고명이나 꾸미라고도 함)로 알지단과 고기 완자를 얹었으며, 쇠고기와 내장을 끓인 잡탕국을 곁들였다'고 되어있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다. 전주비빔밥은 물에 데친 콩나물과 소 양지머리 고운 물로 밥을 짓는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진주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고명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이 첨가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거기에다가 화려한 맛과 모양을 강조하는데 그 모양이 매우 아름다워서 ‘백화요란(百花燎亂 :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 찬란하게 피어난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밖에도 ‘헛제삿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안동비빔밥, 밥을 볶아서 비비는 것이 특징인 해주비빔밥, 삶은 닭고기를 넣고 고추장 대신에 고춧가루를 넣는 평안도닭비빔밥, 멍게젓을 넣고 고추장 대신에 김가루, 깨소금, 참기름에 비벼먹는 거제도멍게젓갈비빔밥, 꼬막과 무순 등을 넣고 비벼먹는 벌교꼬막비빔밥, 돼지비계를 넣어서 비비는 함평육회비빔밥 등이 있다.
영수천(함평천)


어디 그뿐이랴.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퓨전비빔밥이 어떤 조리사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빔밥은 지역의 특산물을 주 재료로 사용하고, 조리법 또한 지역 나름대로 독특하다. 그런데 비빔밥이라는 이름 아래 공통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건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를 한데 섞어서 비벼먹는다는 점이다.

나는 영양가 만점인 온갖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서 꽃처럼 피어나는 비빔밥의 모습을 보면 원효 대사의 화쟁사상과 공자의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기산공원 5.18민중항쟁 사적지 표지석


---함평 오일장터의 한우비빔밥거리에서

살아가다가 때로 지치거나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면 오일장터를 찾아가보라. 오일장터는 물건을 팔고 사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그곳은 지역의 문화공간이요, 정보교환의 장소요,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오일장터에는 언제나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서 장터를 한 바퀴 돌다보면 삶이 아무리 팍팍할지라도 열심히 살아가고픈 마음이 어느새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일장터는 생기(生氣)요 화엄(華嚴)이다.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한 바퀴 돈다. 함평천지를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바람의 영혼’과 들녘을 초록으로 수놓던 온갖 미각(味覺)들이 좌판과 큰 대야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서해를 자맥질하던 어류들이 까치놀을 흠뻑 둘러쓴 채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함평 한우비빔밥거리는 오일장 안쪽에 있으며, 영수천의 방죽길과 나란히 놓인 골목길이었다. 경복궁, 화랑식당, 대흥식당 등에서 육회비빔밥을 팔고 있었다. 착한식당 44호점으로 지정되었고, 백종원의 3대 천왕에서 소개된 화랑식당으로 들어간다.
함평 한우우시장


기본 반찬은 특이한 게 없다. 배추겉절이, 묵은 김치, 무채지, 동치미, 선짓국이 전부이다. 특이한 것이라면 돼지비계가 한 접시 나온다는 점이다.

육회가 부족했던 그때 그 시절, 함평 사람들은 비빔밥에 돼지비계를 넣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돼지비계는 비빔밥의 고소함을 배가시켜줄 뿐만 아니라 콜라겐까지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바람벽의 안내판에 함평 육회비빔밥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혀있다. 고추장 적당량, 돼지비계 한 두어 젓가락을 비빔밥에 넣어서 비비면 되고, 취향에 따라 무채지나 겉절이도 함께 비벼서 먹으라고 한다.

비빔밥을 비빈다. 함평 육회비빔밥은 ‘백화요란’이나 ‘화반(花飯)’이라는 단어를 동원해야할 만큼 화려하지 않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 입 맛본다. 화려하거나 쌈빡한 맛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타 지역의 육회비빔밥보다 우월하게 느껴지는 점을 꼽으라면 비빔밥 재료인 육회를 비롯하여 채소들이 모두 싱싱하다는 점이다. 또 유난히 고소한 맛이 난다는 점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육회비빔밥 그릇 속에는 함평천지를 질주하던 ‘바람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풍을 쐬는 너른 들녘에서 초록을 수놓고 있던 신토불이 미각들도 그 그릇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 모든 재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느끼고 도와주면서 최상의 맛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함평의 ‘함(咸)’ 자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함평 육회비빕밥 거리 안내판


또 하나, 함평 우시장의 건강한 한우들도 맛과 멋을 보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의 ‘과학적인 조합’과 궁합이 곧 함평 육회비빔밥의 맛이요 멋의 전부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미 소의 영각을 뽑는 소리에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는다. 김기택 시인이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라는 시를 읊었다.

영각 소리 들려오는 서글픈 늦봄, 영수천 방죽길에 올라 하천 건너편의 우시장을 황소 눈으로 바라본다.

박혜강(소설가·전 광주전남 소설가협회 회장·시민전문기자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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