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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 (2)주천- 운봉 구간
입력시간 : 2016. 04.22. 00:00


구룡치 진달래길-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진달래 꽃길은 오리가 넘도록 이어지고~
길섶엔 진달래·생강나무꽃, 각기 紅·黃 뽐내며 봄 산을 깨우고

“인심은 좋은 곳인디, 아무것도 없어. 논농사가 전부여!” 버스정류장에서 주천으로 가는 ‘요놈’을 가리켜주었던 할머니 말씀이 새롭다.

원수중에서도 상원수가 아니고서야 지뢰를 밟을지언정, 어찌 놓인 꽃잎을 짓밟고 갈 수 있겠는가. 소월은 눈꼽만큼도 ‘고이 보내 드리고’싶은 마음이 없었나 보다. 내심 ‘꽃잎을 뿌려 놓으면 너는 죽어도 못 갈 것이다’라는 계산된 배짱이 아니었을까.

못 보고서는 없다고 하는 것이 어찌 길가의 양지꽃 뿐이랴. 소망이나 행복이라는 것도 그럴 터이고 신의 음성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4월 초순의 아침 공기는 서늘했으나 햇살의 따스함에 이내 녹아들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길 건너 ‘여기서부터 남원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 제1구간 시작점’이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 반갑다.

광주에서 아침 7시반께 출발하여 2시간만에 둘레길 출발점에 도착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달려 남원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공터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주천행 마을버스로 갈아탄 길이다.
노치마을에서 바라 본 지리산 능선- 산맥은 바래봉에서 정령치까지 병풍처럼 기다랗게 ~


지난해 말에 확장 개통된 고속도로는 차량이 많지 않아 여유로웠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길에도 도격(道格)이 있을 터. 옛 이름인 ‘88고속도로’에 비해 ‘광주-대구 고속도로’는 도격이 개과천선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광주의 ‘빛고을’과 대구의 ‘달구벌’에서 초성을 차용한 ‘달빛고속도로’라고 이름 지었다면 더 멋진 명품 도로가 탄생했을 법도 하다는 개인적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의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주천행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나에게 ‘요놈이 주천으로 간다’고 알려주었다. ‘요놈’은 20여분 쯤 달려 둘레길 1구간 출발지에 도착했다. ‘함께 잘 해보자구, 친구!’ 등산화 끈을 조이며 수고할 두 발에게 부탁을 겸한 인사를 두 눈이 건넸다.
남원 8경 가운데 제 1경으로 꼽히는 구룡폭포


주천-운봉 구간은 주천면 소재지인 외평마을에서 시작된다. 외평마을은 옛날 한양으로 가는 큰 길에 터를 잡고 있다.

길은 개울과 그 개울보다 조금 더 큰 하천을 잇따라 건너면서 시작됐다. 하천의 이름은 원천천(源川川)으로 지리산 구룡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여러 지류가 모인다.

원천천을 건너 처음 만나게 되는 내송마을을 지나 왕복 2차선의 콘크리트 차도를 건너면서 길은 농로로 이어졌다. 산길 초입에서 뒤돌아 본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논들로 가득 찼다.

“인심은 좋은 곳인디, 아무것도 없어. 논농사가 전부여!” 버스정류장에서 주천으로 가는 ‘요놈’을 가리켜주었던 할머니 말씀이 새롭다.

해발 500m쯤 되는 주천과 운봉은 예상과 달리 논농사가 생업의 주를 이룬다. 여든여덟번의 손이 가야 벼가 쌀이 된다는 논농사의 그 고단함을 내 어찌 다 가늠할 수 있으랴 싶다.
행정마을의 서어나무숲


농로가 끝나면서 길은 숲으로 접어들고 곧이어 개미정지라는 쉼터다. 개미정지는 뿌리를 드러낸 채 서있는 늙은 서어나무 몇 그루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히기 위해 옷가지 하나를 허물 벗듯 벗겨낸다. 오래전 운봉읍으로 장보러 가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그들의 지난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쁜 숨을 골랐으리.

길은 구룡치까지 2km 남짓 오르막이다.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중간 중간 트이는 조망을 눈보다 발이 먼저 보고 쉬어가자고 조른다. 길섶에는 진달래꽃과 생강나무꽃이 각기 홍(紅) 황(黃)을 뽐내며 봄 산을 깨우고 있다. 꽃잎 하나 입에 무니, 빨갛고 노란 봄 향기가 나를 물든다.

진달래는 구룡치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켠에선 꽃망울 함초롬히 피어나는데 저켠 양지쪽 꽃잎은 벌써 지고 있다. 꽃망울은 꽃잎보다 붉다. 마치 소녀의 초경처럼 설레고 수줍다.

떨어진 꽃잎의 애잔함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한 함의를 새롭게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라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노치마을회관 앞의 백두대간 표지석


소월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깔아 놓을 테니 그 꽃잎을 짓밟고 가라’고 했다. 한데, 얼마나 모질면 이 고운 꽃잎을 부러 짓밟고 가랴. 꽃잎 하나 입에 물기도 이리 망설여지는데….

그 정도면 님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중에서도 상원수가 아니고서야 지뢰를 밟을지언정, 어찌 꽃잎을 짓밟고 갈 수 있겠는가.

소월은 눈꼽만큼도 ‘고이 보내 드리고’싶은 마음이 없었나 보다. 내심 ‘꽃잎을 뿌려 놓으면 너는 죽어도 못 갈 것이다’라는 계산된 배짱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뢰보다 징한 게 꽃잎이련가. 살포시 웃음이 터졌다.

구룡치에서 회덕마을까지의 길은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만큼 걷기에 편하다. 완만한 내리막 경사는 걷기에 알맞고 ‘사뿐히 즈려 밟고’ 걸을 수 있는 낙엽들은 소복이 깔려 있다.

소월의 마음을 헤아리며 한참을 걷는데 길옆 왼편에 대여섯 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사무락다무락’이다. 사무락다무락은 ‘소망’과 ‘담벼락’이란 지역 방언의 합성어다.



- 못 보고서는 없다고 하는 것이 어찌 길가의 양지꽃 뿐이랴. 소망이나 행복이라는 것도 그럴 터이고 신의 음성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고갯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돌멩이를 하나 둘 쌓으며 소원을 빌던 곳이다. 돌탑마다 쌓인 소원들은 무엇일까. 소원은 이뤄졌을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돌탑에 소망 하나 얹으려고 하는데 돌멩이가 없다. 주변의 돌멩이들이 모두 소원이 되어 탑으로 올라간 탓이리라.

돌멩이 대신 양지쪽 노랗게 핀 양지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은 하나 둘 셋 넷, 네 송이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피었다. 왜 이제야 보일까. 양지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못 본 것이라고 내게 말하고 있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하여 없다고 하는 것이 어찌 길가의 양지꽃 뿐이랴. 소망이나 행복이라는 것도 그럴 터이고 신의 손길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용머리를 닮은 소나무 고목


사무락다무락을 지나 회덕마을 향해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이어진 샛길이 하나 보인다. 구룡폭포로 가는 길이다. 구룡폭포는 비스듬히 누운 30m의 와폭으로 남원 8경중 제1경으로 꼽힌다. 폭포 상단까지는 300여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왕복으로 ‘곱하기 2’라는 계단 수가 버겁지만 폭포의 절경은 허벅지의 뻐근함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산길이 끝나면 작은 개울을 지나 회덕마을이다. 마을 초입, 왼쪽으로 짚 대신 억새를 이용해 지붕을 얹은 샛집 두 채가 보존돼 있다. 평야보다 임야가 많은 탓이다. 전라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회덕마을은 남원장을 보러 운봉과 달궁에서 오는 길들이 모인다고 해서 예전엔 ‘모데기’라고 불렀다.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유명한 노치마을로 이어진다. 노치마을회관 앞에 서있는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마치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장군 동상처럼 듬직하다. 느티나무 밑에는 까만 오석에 새긴 백두대간 표지석과 어른 한아름 크기의 둥근 돌 5개가 놓여 있다. 일제가 백두대간의 맥을 끊기 위해 땅을 파고 묻어 놓았던 돌을 찾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억새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원래는 갈재였으나 한자 이름의 노치(蘆峙)로 바뀌었다. 노치는 섬진강과 낙동강이 나뉘는 분수령으로 비가 내려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으로,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마을회관 앞 쉼터에 앉으니 12시 방향으로 고리봉이 성큼 다가선다. 싸가지고 온 군 고구마가 꿀맛이다. 시간은 낮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정표를 보니 운봉까지 7.3km 남았다. 1구간의 절반 쯤 왔나 보다.

노치마을을 지나 덕산저수지를 끼고 길은 다시 산기슭으로 들어선다. 1시 방향의 바래봉부터 5시 방향의 정령치까지 지리산 서북능선이 병풍처럼 오른편으로 기다랗게 펼쳐진다. ‘산맥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실감이다.

산맥의 장관이 보여주는 감탄사가 서서히 줄어들 때 쯤 길은 가장마을의 제방길로 이어지면서 행정마을을 거쳐 마침내 운봉읍에 다다른다.

가장마을에서 운봉까지의 5km 남짓의 공안천 제방 둑길에는 벚꽃나무가 길 왼쪽에 심어져 있어 풍치를 더한다. 둑길은 공안천의 오른편에 있는가 하면 왼편으로 끼고 돌고 어느새 다시 오른편에 위치하며 운봉읍으로 안내한다.

운봉읍 도착 직전의 마을인 행정마을 초입에는 행정교가 놓여있고 여기서 잠시 멈춰 왼쪽으로 방풍림 같은 숲이 보인다. 행정마을의 유명한 서어나무숲 비보림(裨補林)이다.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소망을 빌며 쌓았던 사무락다무락의 돌탑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이곳은 사람이 살터가 아니니 마을의 기운이 허한 북쪽에 나무를 심으라”고 하여 숲이 조성됐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초창기에는 둘레길 코스에 포함됐으나 현재는 보존을 위해 제외됐다.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수상지로 100년 이상 된 7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촬영 배경장소이기도 하다. 춘향이가 치마폭을 날리며 탔을 법한 그네가 놓여있으나 ‘나는 춘향이가 아니라 이도령인걸’, 그네 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운봉읍 허름한 국밥집에 들려 막걸리 한 사발로 지리산둘레길 1구간 완주 기념을 자축했다. 자축에는 인월로 향하는 2구간의 시작도 포함됐다.



길 안내

주천- 운봉 구간은 지리산둘레길의 첫 구간에 해당 된다. 주천(외평)- 내송(1.7km)- 개미정지(0.3km)- 솔정지(1.9km)- 구룡치(0.3km)- 사무락다무락(1.5km)- 회덕(1.2km)- 노치(1.2km)- 가장(2.2km)- 행정(2.7km)- 양모사업장(1.5km)- 운봉읍(1.2km) 까지 15.7km에 달한다. 걷기에 어려운 구간이 아니므로 쉬엄쉬엄 갈 경우 숲길은 시간당 2.5km를 기준으로 삼으면 적당하다.

지리산 서북 능선을 바라보며 주천에서 가장마을 입구까지는 숲길과 농로로 이뤄져있고 이후 운봉읍까지는 제방둑길이 대부분이다.

광주에서는 승용차로 주천까지 1시간정도 소요된다. 초행길이라면 길 안내는 ‘주천치안센터’를 목적지로 설정하거나 ‘지리산둘레길 1코스’를 지정해도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원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주천행 마을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소요시간은 20분 이내이나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30분에서 2시간 간격임을 감안해야 한다. 출발지에 주차장과 깔끔한 화장실 시설이 갖춰져 있다. 시민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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