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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강의 ‘맛과 멋 기행’<1> 무등산 보리밥(上)
입력시간 : 2016. 04.15. 00:00


톡톡 터지는 보리알, 그때 그시절 '추억을 부르는 맛'

증심사 위쪽 계곡 여기저기

등산객들 사랑 한몸에 받아

정화사업으로 이주, 사라져

지금은 지산유원지 일대 유명

70년대 초까지 딸기밭·보리밭 천지

지금은 개발바람 타고 상전벽해

동그란 쟁반에 열세 가지 반찬

열무잎과 고추, 시래기 된장국

갖은 나물·참기름·고추장 넣고

더불어 살아가듯 신명나게 비벼

독특한 맛 만들어내는 묘미 쏠쏠

살아가다 지칠때면 한번 드셔봐!

겨울을 슬기롭게 견뎌낸 청보리가 봄볕 아래서 쑥쑥, 자란다. 키가 자란다기보다 푸른빛이 날로 솟구친다. 그 푸른빛은 곧 생명의 찬란함이요 인내의 표상이다.

오늘 나는 ‘보리밭’이라 쓰고 ‘추억’이라고 읽는다.

그때 그 시절, 보릿고개를 만난 동네 개구쟁이들은 뱃속이 텅 비어있어서 어지럼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있지 않았다. 뒷산으로 올라갔다. 진달래꽃, 찔레 순, 삘기를 뽑아먹었다. 옹달샘의 물을 두 손바닥으로 떠서 벌컥벌컥, 들이키곤 했다.

배고픔을 어느 정도 달래면 노랗던 하늘이 미치도록 푸르게 느껴졌다. 뒷산 보리밭과 들녘도 온통 푸르렀다. 개구쟁이들은 그런 풍경 속에 앉아서 보리누름이 어서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눈망울을 떼굴떼굴 굴렸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 속의 종다리들이 푸른 하늘로 곧장 치솟았다. 그 녀석들의 알이 욕심났다. 개구쟁이들이 새알을 찾으려고 보리밭이랑 사이를 거닐다가 보리줄기를 잘라 보리피리를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었던 그 보리피리 소리는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봄바람 속에 함초롬히 묻어있다. 추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바람처럼 흐르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는 오미(五味)가 있다

광주광역시의 오미는 한정식, 오리탕, 떡갈비, 보리밥, 김치를 말한다. 오늘 나는 광주시의 브랜드 음식이라고 일컫는 ‘보리밥’을 찾아서 지산동 ‘무등산 보리밥거리’를 찾아간다.

무등산 보리밥으로 유명했던 곳은, 증심사 위쪽에서 보리밥과 막걸리 등을 팔던 ‘팽나무집’을 비롯하여 계곡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음식점들이었다.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던 그 보리밥집들이 증심사 일대의 자연환경 정화사업에 따라 계곡 아래의 상가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자취를 아예 감춰버려서 아쉽기 짝이 없다.


이젠 지산유원지 일대에서 그때 그 시절의 보리밭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 보리밭과 딸기밭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부인네들이 딸기밭을 찾아 화전놀이를 즐기곤 했다.

박선홍의 '무등산'이라는 책을 보면, 화전놀이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옛날 광주지방에서는 관원들의 화전놀이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지금의 무등극장 부근인 광주 동헌에서 목사를 비롯하여 관헌들이 날을 받아서 음식을 마련하고 삼현육각을 갖추어서 무등산으로 화전놀이 행차를 떠난다…….”

화전놀이가 끝나면 청사초롱에 불을 밝히고 ‘지화자’를 구성지게 부르며 성안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구 지호로를 따라 무등산의 품에 안겨있는 지산유원지로 들어간다. 문득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 시는 1953년 서울신문에 발표되었고, 그에게 ‘보리피리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는 계기가 되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 ㄹ 늴리리.

그 옛날, 딸기밭과 보리밭이 널려있었고, 지금쯤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해있을 지산유원지 일대는 개발 바람이 불어 주택과 상가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고, 신양파크호텔과 무등파크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상전벽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무등산이 ‘무유등등’ 의연하다. 그 아래 동그마니 앉아있는 향로봉과 그 꼭대기에 앉아있는 팔각정 전망대가 정겹다. 산세는 옛날 그대로인데 주변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져있다.

무등산의 지산동 계곡은 맛과 멋의 자궁(子宮)이다. 광주 오미 중의 하나인 보리밥으로도 유명하지만,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이나 '땅의 연가'라는 시집을 펴낸 문병란 시인이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림동 일대와 더불어 광주의 대표적인 예술의 메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맛과 멋은 어원이 같다. 맛에서 멋이 나왔고, 또 멋에서 맛이 나왔기 때문에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지산동 계곡이 품고 있는 맛과 멋에 흠뻑 취해볼 작정이다.

---더불어 살아가듯 비벼보자

지호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벽화들과 ‘무등산보리밥거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무등산 둘레길(무돌길)의 3구간이며 ‘나무꾼길’ 시작점인 장원삼거리 부근이다.

어느 보리밥집으로 들어갈까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팔도강산’을 택한다. 취재 처와 사전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미리 교섭하게 되면 음식의 진면목을 보기 힘들고, 또 업주들에게 염려나 피해를 끼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당 안은 점심시간이 지나서 약간 한가하다. 취재하기 편해서 좋다. 보리밥을 주문한다. 동그란 쟁반에 열세 가지 반찬(열무김치, 쪽파나물,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버섯조림, 머윗대나물, 어묵조림, 가라나물, 콩나물, 무생채, 부추겉절이, 제육볶음, 미나리무침)이 나온다. 쌈을 싸먹을 수 있도록 열무 잎과 고추가 곁들여지고, 시래기 된장국도 준다.

오늘의 주인공인 보리밥은 대접에 담겨있다. 보리쌀로만 지은 꽁보리밥이 아니라 쌀과 보리를 3대 2의 비율로 섞은 보리밥이라고 한다.

이병헌 사장(45)의 어머니인 김연심 여사(67)의 말에 따르면, “보리를 초벌로 삶아 소쿠리에 담아두었다가 쌀과 섞어서 밥을 짓는다”고 한다. 식재료를 준비 당일 구입하여 다듬고 삶는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넓적하고 운두가 낮은 대접에 보리밥을 담아서 내놓은 이유는 ‘보리비빔밥’으로 만들어서 먹으라는 뜻이다. 물론 비빔밥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먹어도 된다.

갖은 나물, 참기름, 고추장을 넣고 비빈다. 우리 모두가 어깨동무를 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신나게 비빈다. 하얀색의 도라지나물이면 어떻고 붉은색의 제육볶음이면 어떠리. 쌉싸래한 머윗대면 어떻고 달짝지근한 쪽파나물이면 또 어떠리. 동서가 화합하고 남북이 통일되듯이 신명나게 비벼댄다.

비빔밥은 비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여럿이 하나가 되어 독특한 맛을 새로 만들어내는 묘미가 숨어있어서 늘 새롭다. 비비고 또 비빈다.

한 입 맛본다. 광주 오미인 무등산 보리밥 시식 평을 너절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씹히면서 톡톡, 터지는 보리알에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고소하게 피어오른다는 것이다. 그 추억은 실루엣처럼 흐릿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생생한 그리움이다.

혹시 살아가다가 지칠 때면 ‘추억을 부르는 맛’인 무등산 보리밥을 드셔보시라. 지나간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도 찾아오는 법이다.

박혜강(소설가. 전 광주전남 소설가협회 회장).시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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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전문기자 zmd@chol.com        시민전문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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