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 일간지'조보'소개 눈길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에 담겨
입력시간 : 2019. 01.10. 00:00


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보(朝報)'를 아시나요?

한국국학진흥원은 '조보-조정의 기별'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를 발행했다.

조선시대 조보는 매일 아침 왕과 신하들의 회의가 끝나고 나면 승정원의 관리가 '조보소(조방)'에서 그 날의 주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는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을 종이에 옮겨 조보를 만들었다.

한양에 있는 양반들은 매일 아침 조보를 받았다. 지방의 관리나 양반은 5~10일 정도 걸렸다.당시의 어려운 교통환경을 고려하면 조보 발행에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조보를 통해 중앙과 지방이 긴밀히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조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 중 1508년 3월14일 중종실록 5권에 처음 나타나지만 1515년 중종이 "조보는 예로부터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뤄 조보의 기원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기별(奇別)'은 조보의 다른 이름으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라는 속담에 쓰이기도 했다.

중종실록에 의하면 조보는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물이 전하지 않아 1650년 독일에서 발행된 '아이코멘데 차이퉁'이 그동안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알려져 왔다. 2017년 4월 경북 영천에서 선조 10년(1577) 활판인쇄로 발행된 민간조보의 실물이 발견됐다. 아이코멘데 차이퉁보다 83년이나 앞선 일간신문이다.지난 2일 민간조보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 521호로 지정됐다.

민간조보가 탄생하게 된 것은 왕과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조보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갈망을 배경으로 한다. 백성들은 조보를 읽을 수 없었지만 알 권리 충족을 위해 1577년 민간조보를 탄생시켰다.

조보는 손으로 쓰여졌지만 민간조보는 활판으로 인쇄됐다. 백성들은 돈을 주고 구독했다.

민간조보는 관의 허락을 받았지만 발간된 지 3개월 만에 선조에 의해 폐간됐다. 조보 발행인들은 가혹한 형벌과 유배에 처해졌다.

민간조보가 유통된 일에 대해 선조가 크게 노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번 웹진 1월호 필진인 노병성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18세기 한문단편집 '동패낙송'에 실린 소설 '조보'를 통해 조보의 흥미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뉴시스
이 기사는 무등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ho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root@ho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