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산책] <25> 문신과 타투, 그 기원과 문화적 현상들

입력 2021.07.27. 19:15 김혜진 기자
문신과 타투, 그 기원과 문화적 현상들
파지리크 2호분 출토 미라의 오른팔 문신, 기원전 5세기, 에르미타주박물관.

문신(文身)은 피부에 상처를 내고 그곳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넣은 것으로 타투(tattoo)의 우리말이다. 약간은 비밀스런 문신이 전시를 통해서 대중에게 신체예술로서 공개된 것은 2014년 파리의 케브랑니박물관 특별전인 'TATTOO'였다. 에펠탑 부근 센강변 언덕의 이름을 딴 이 박물관은 프랑스인들이 교양으로 삼는 문화의 다양성과 예술적 구현을 접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건축가 장누벨이 설계하고 질 클레만이 정원을 기획했다는 박물관의 외관은 충분히 실험적이고 생태적이다.

전시품은 대부분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수집한 자료들이며 이 박물관이 소위 포스트 식민주의시대에 프랑스가 내건 비유럽이라는 역사적 타자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창구라는 관점은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전시된 수집품들의 유입경로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 약탈의 역사를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화된 '타투'라는 용어가 서구에 알려진 것도 이러한 맥락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타투라는 단어는 18세기의 사모아인들의 말로 타투(tattau)이며, 이는 '타투하다'라는 뜻이다. 바늘이 달린 부분을 살갗에 대고 작은 막대로 두들겨 무늬를 새겨 넣을 때 나는 소리인 '타타 타타'에서 온 말이 틀림 없다.

마오리족의 두상, 실제 두상의 복제품, 1966, 파시피카박물관, 인도네시아 발리.

이 말은 타투의 유행과 더불어 곧 서구에 알려졌으며 지금은 전세계적인 공용어가 되었다. 당시 서구 타투 수집붐은 단순한 밑그림 뿐 아니라 문신이 새겨진 피부는 물론, 심지어 얼굴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처음엔 사자(死者)의 얼굴(人面)을 수집하다가 점차 현지에서는 수집상들에 의해 산자의 머리사냥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각지에서 수집된 문신은 그것의 배경인 종교나 의례, 또는 비밀스러운 행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기능과 관계없이 식민지문화를 보여주는 단순 오브제로 전락하여 관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인류학적 수집품을 예술품으로 기획한 케브랑니의 새로운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비서구의 박물관들이 제국주의의 폭력과 자국민의 수난을 포함한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고 있는 흐름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문신은 현재 전세계 어느 사회에서나 확인되고 있는 현상이지만, 확실히 그것이 최근의 경향만은 아니다. 기능적으로 고대 사회에서 문신은 일종의 증명서다. 그것은 대개 주술적인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인데 일반적으로 통과의례를 통하여 문신을 새기고 부족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때로는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예술적이거나 개성의 취향을 표현한 다양한 형태의 문신들이 존재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들 세계에서 문신은 설렘과 호기심, 슬픔과 불명예, 아니면 자긍심이 충만한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필리핀 부스칼란 마을의 문신을 새기는 모습. '아시아의 타투'(2017),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그럼, 과연 인류는 언제부터 문신을 하기 시작했을까? 고고학 증거들에 나타난 문신의 역사는 비교적 오래전에 확인된다. 인간사회에 문신문화가 존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바로 미라이다. 미라는 자연상태에서 건조되거나 냉동상태에서 부패하지 않고 보존되기 때문에 당시 피부의 모습을 소상하게 알 수 있다. 알프스계곡에서 발견된 아이스맨 외찌는 이미 5천300년 전에 57개의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필자의 고고학산책 18참조).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11왕조의 여성 미라와 동시대의 여성 조각상에는 당시에 이집트여성들이 문신을 했다는 증거들이 남아있다. 제사장의 무덤으로 알려진 기원전 5세기경의 알타이지방의 파지리크(pazyryk)고분에서는 냉동상태의 미라가 출토된다. 러시아 남부와 몽골의 서부 접경지에 위치한 이곳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미라에서는 호랑이나 수사슴, 산양과 같은 동물들이 수놓아진 화려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역시 시베리아의 우코크(Ukok)에서도 여사제로 보이는 이른바 얼음공주가 발견되었다.

1995년 중앙박물관에도 다녀간 이 미라의 어깨와 팔에도 스키타이-시베리아 양식의 동물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렇다고 여성만이 문신을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문신행위는 성별의 차이가 구별되지 않는다. 러시아 우코크 연구자 플로스막(Н. В. Полосьмак)에 의하면 신분이 높을수록 문신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한다.

'아시아의 타투' 전시포스터. 포스터 속 여인은 미얀마의 라이뚜친족.

중국에서는 기원전 1천년 이전부터 범죄자의 얼굴에 글자를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른바 경형이다. 중국의 고전에는 문신과 관련된 여러 글자가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경형이다. 형벌로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으로 죄명을 새겨넣는 것을 가리켜 '경을 친다'고 하였다. '경을 칠놈'이라는 말의 연원이다.

우리나라도 고대부터 문신의 습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 '후한서' 와 같은 중국의 고대사서에 나오는 '동이열전'이 대표적이다. '(馬韓)남자들은 간혹 문신을 한사람도 있다', '(弁辰)왜(일본)와 가까운 지역이므로 남녀가 문신을 하기도 한다'. 이 기록을 신뢰한다면 공간적으로 왜와 가까운 지역인 마한과 변진지역, 즉 지금의 한반도 남부지역에 문신습속이 존재했고 성별의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은 3세기 이전에 문신이 행해졌고 그것이 자체적인 고유한 관습이라기보다는 왜의 문화적 영향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 '삼국지'는 '왜의 남자는 어른과 아이 구별 없이 얼굴과 몸에 문신을 하는데, 원래는 어부들이 문신으로 큰 물고기와 바다짐승을 피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점차 장식이 되었다'며 문신의 위치나 크기, 신분에 따른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왜의 항목에는 경면이라는 독특한 용어의 문신과 배경, 목적, 기능, 형태, 그리고 변천과정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당시 왜국에서 문신풍속의 유행을 함의하는 정보들이다.

문신에 대한 케브랑니박물관의 기억은 이후 아시아 문신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패션화된 문신 말고도 아직도 아시아의 여러 부족사회에는 문화적 현상으로서 전승되는 문신풍이 남아 있다. 필리핀이나 타이완,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이들을 찾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문신연구의 실질적 과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문신연구에 관한 한 세계적인 전문기관으로 육성시키면 될 것이다.

사실, 몇 해 전 나는 이런 소망으로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연구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2년간의 현지조사를 토대로 기초단계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아시아의 타투'(2017)가 그것이다. 지금은 과거가 되었지만, 연구기관의 힘은 지속성에 있다. 문신연구의 진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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