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 박사의 고고학산책 <22>고대 유리의 세계

입력 2021.03.17. 16:15 김혜진 기자
부여 합송리유적 출토 유리제 대롱구슬(국립부여박물관)

'신의 선물', 고대 유리의 세계, 동아시아를 넘다


유리는 인류문명이 창조한 물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영롱하게 빛나는 유리구슬을 '신의 선물'로 인식해 자신의 몸을 치장했다. '구슬을 재보로 여겨서 옷에 꿰어 꾸미거나 혹은 목에 걸거나 귀에 매달았으며, 금은이나 수놓은 비단을 보배로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韓條)의 기사는 금은보화보다 구슬을 사랑한 마한(馬韓)인을 설명한다. 실제 기원 전후의 시기에서부터 삼국시대까지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리의 수량은 다른 어떤 유물보다도 많은 편이다.

유리가 처음 어디에서 제작됐는지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초기엔 우연하게 발견한 액체상태의 유약이 도기 표면에 사용됐을 것이다. 규사질의 모래와 탄산수가 결합한 것이 토기가마로 흘러 들어가 형성된 유약에 착안한 지식의 축적결과다. 유물은 기원전 2500년 전 이집트의 유리구슬이 가장 오래됐을 가능성이 있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리그릇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리는 기원전 2세기경 충청남도 부여 합송리유적에서 발견된 대롱구슬(管玉)이다. 1989년 4월, 동검과 동탁·이형동기·정문경 등 청동기일괄유물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국립부여박물관 신광섭 관장은 출토현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흙더미를 체질해 운 좋게도 유리를 찾아냈다. 길이 50.0~62.0㎜, 지름 8.5~10.0㎜, 찬란한 코발트색 대롱구슬 8점! 영원히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한국 최고의 유리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유물은 보존처리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나는 유리 분석을 위해 청동기 권위자인 이건무 박사(전 국립중앙박물관장)를 수행, 수원의 코닝연구소를 방문했다. 코닝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한대(漢代)의 유리와 공통의 화학조성비를 갖는 납-바륨계 유리로 분석했다.

전시 중 유리구슬, 4~5세기(국립경주박물관)

사실, 이 청색의 유리제 대롱구슬은 일본에서 먼저 발견됐다. 1988년 공단 조성에 따라 발굴조사 중이던 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에서 일본 최대의 환호집락이 발견되고 화려한 부장품들이 연이어 출토됐다. 결국, 요시노가리의 공단 조성은 중단되고 국가유적으로 지정하면서 전국적으로 고고학 붐이 일어났었다. 그 중심에는 분구묘 SJ1002호 옹관에서 출토된 일주식(一鑄式) 동검과 신비로운 청색의 대롱구슬 75점이 있었다. 구슬은 길이 20.0~68.0㎜, 지름 5.0~8.9㎜. 출토된 동검과 유리 대롱구슬의 계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분석된 유리는 중국의 유리와 관련성이 강한 납-바륨계로 밝혀졌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수개월 뒤에 합송리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한반도 출토 유리용기 전시광경(국립경주박물관)

당시 한국에서는 충남의 괴정동이나 남성리, 전남의 함평 초포리유적 등에서 일본 야요이문화의 원류인 검·경·옥(劍鏡玉)세트가 출토된 바 있었지만, 유리제 대롱구슬은 합송리유적이 처음이었다. 1989년 규슈에서 학술대회가 열렸고 요시노가리유적에 이어 합송리유적의 유리에 대한 제작기법과 분석치가 소개됐다. 그 후 요시노가리 유리의 중국 직수입설은 사라졌다. 유리는 원료와 제작기술을 분석하면 그 생산지를 알 수 있어 고대사회의 유통망을 복원할 수 있다. 따라서 야요이(彌生)시대 유리제 대롱구슬의 생산지는 한반도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리 소재를 수입해서 직접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함께 출토된 장식성이 강한 일주식의 세형동검은 물론이려니와 옹관이 매납된 분구묘의 판축기법도 그렇고 요시노가리유적에는 한반도와 밀접한 문화적 요소가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 유리제 대롱구슬은 요시노가리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주문하고 수입해 매납됐을 것이다.

청색의 유리제 대롱구슬의 기원은 길림성 횡도하자묘(橫道河子墓) 출토품과 같은 계통의 기술이 확인되는 중국 동북지방이 거론된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지역과 부여 합송리, 공주 봉안리와 당진 소소리유적, 그리고 최근 완주 상운리, 해남 군곡리와 창원 다호리유적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중국계 납-바륨유리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유적들을 연결하면 초기의 납-바륨계의 유리와 그 생산기술은 중국 동북부에서 시작해 한국 서남해안에 정착하고 일본의 요시노가리 지역으로 전달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양상은 청동기시대 이후의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교류내용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

유리구슬 생산용 범(範),지름 7.6cm, 광주 광산구 선암동유적(호남문화재연구원)

우리나라 유리의 일반적인 양상은 초기의 납-바륨계에 이어서 기원후 2세기까지는 청색계열의 포타쉬유리가 사용되며, 3세기 전반이 되면 소다유리가 높은 비율로 등장해 다양한 적갈색계통의 유리구슬이 유행한다. 이즈음 적갈색이 압도적인 마한지역과 감청색을 포함한 푸른색이 성행하는 변진(弁辰)지역의 사회적 경향은 곧 백제, 가야 및 신라지역에서 특징적인 유리제품을 선호하는 기호(嗜好)의 지역성으로 나타난다. 고대사회에서 유리구슬은 단색도 있지만 몇가지 색을 조합해 장식효과를 높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富)를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됐으며 정치와 종교적인 상징물이기도 했다.

최근 유리 연구는 로마나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루트는 물론 광주 선암동과 같은 국내 공방유적에서의 가공과 생산, 그리고 남방지역과의 교역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유리가 소비됐음을 시사한다. 초기의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중국 광서지방과 베트남,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권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유리의 길은 초원을 넘고 바다를 건너 남쪽과 서쪽으로 뻗어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성과가 반영된 전시회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별전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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