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 <18> 5천년 전 얼음 미라

입력 2020.09.23. 11:15 최민석 기자
사우스 티롤 알프스의 외찌(Otzi)와 그의 선물들
아이스맨 외찌의 발견상태(1991년, 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

1991년 9월, 유럽의 고고학계는 사우스 티롤 알프스의 빙하지대 외쯔탈에서 발견된 아이스 맨, 얼음 미라로 흥분하였다. 통상적으로 고산에서 발견된 사체는 고고학과 관계가 먼 자료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수천 년 전의 아주 오래전 사람일 것이라는 뉴스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라는 곧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의 법의학연구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 작업은 곧 커다란 비난에 직면하였다. 고고학자 없이 법의학자와 산악구조대원만으로 작업이 이루어져 현장의 정보를 놓쳤다는 이유였다. 실제 현장을 촬영한 필름에는 그들의 도구가 삽과 등산용 지팡이뿐 이었으며 누군가 나무 칼집을 집어 들자 그 속에서 단검이 빠지는 장면과 나무 활을 얼음 밖으로 빼내려다 부러뜨리는 것도 찍혀있다.

마침내 법의학은 물론 고고학 및 인류학 연구자가 참여한 미라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미라는 빙하 속에서 냉동 건조된 상태이며 피부와 내장은 물론 혈액의 DNA까지 완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래가 없던 일이었다. 이 즈음 아이스맨, 티롤리안 아이스맨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외찌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발견된 장소인 외쯔탈에서 유래한 것이다.

외찌의 의류들과 착용 상태. 가죽과 풀로 만든 의류와 레깅스(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

외찌의 방사선연대는 기원전 3300년이며, 나이 45세, 키 165cm, 몸무게 약 50kg인 O형의 혈액형을 가진 남자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외찌의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X선 및 컴퓨터 단층촬영(CT), DNA 분석 등을 시도하였다. 외찌의 얼어붙은 몸, 특히 그의 체내에는 편충이 우글거렸으며 75종 이끼류와 식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생태환경이 다른 여러 종류의 이끼들은 그의 마지막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인 동시에 '상처의 피를 멈추게 하는'지혈기능도 제기되었다. 외찌의 마지막 식사는 밀과 고사리, 그리고 염소와 붉은 사슴 스테이크였다. 죽기 30분에서 2시간 전쯤에 거한 식사를 한 것이다.

그는 코뼈와 갈비뼈가 부러졌고 왼쪽 어깨에 화살촉이 박혀 있었으며 피부에서 푸른색의 자국들이 발견되었다. 처음엔 이 자국이 치료로 생긴 상처라거나, 그 위치가 침을 놓는 신체의 위치와 같다는 침술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신 자국으로 보는데 이론이 없다. 역사를 앞당긴 세계 최초의 문신은 외찌의 가슴과 손목, 종아리, 발목 등 전신에 새겨져 있었다. 당시의 문신은 피부에 상처를 내고 그곳에 미세한 석탄가루를 채워 넣은 것으로 푸른색을 띠며 사회적, 치료적 요소를 상징한다고 한다.

당초, 그는 알프스를 오르다가 탈진하여 동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엑스레이가 박힌 화살촉을 찾아내면서 화살에 맞아 살해된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011년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인스브루크대학 고고학자의 말을 빌려 그가 「산에서 추락하면서 치명상을 입고 과다출혈 및 심장마비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화살의 상처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이며 흥미 있는 연구대상이다.

외찌의 가죽 신발과 구리날 도끼(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

외찌의 기본 의상은 사슴을 비롯한 다섯 종의 동물 가죽으로 만든 털옷이다. 그 위에 풀로 엮은 망토와 털모자를 걸치고, 마른 풀로 속을 채운 가죽구두를 신었다. 특히 그의 기다란 가죽 레깅스는 초현대식 디자인에 가깝지만 분명한 신석기시대의 브랜드다.

그는 나무 손잡이가 달린 작은 구리날 도끼와 석제 단검, 깃털이 끼워진 화살촉과 화살통, 주목나무로 만든 활, 풀 망태와 가죽 주머니, 그리고 장비를 운반하기 위한 배낭을 휴대하였다. 그의 주머니에는 야생 베리와 버섯이 들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우리에게 준 탁월한 선물이다. 외찌가 소지한 의류와 도구는 고고학적으로 누구나 전사이고 사냥꾼이던 시대의 문화, 특히 알프스 산록에 살던 이제 막 구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1999년 1월 외찌는 그의 소지품과 함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떠나 이탈리아 볼차노시의 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으로 이동되었다. 수습에서 연구까지 8년여 동안 정성을 다한 오스트리아로선 아쉽고 황당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외찌의 출토지점이 국경에서 92.56m 떨어진 이탈리아 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2014년과 2018년 두 차례 볼차노를 여행하였다. 볼차노는 알프스 남쪽의 이탈리아 도시로 북쪽의 인스브루크와 뮌헨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인구 10만여 명 도심의 오래된 건물은 대부분 합스부르크양식이며, 15세기에 중건된 성모 승천 대성당의 푸른 지붕과 9월의 붉은 백일홍 꽃담이 아름답다. 박물관은 기차역에서 20분 남짓, 길을 걷다 보면 이들 성당과 교회뿐 아니라, 자그마한 골목과 가게들, 특별히 티롤 지방의 목공예를 만날 수 있다.

 복원된 외찌의 모습(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

박물관은 19세기의 헝가리은행 건물을 개조하였으며 3개 층으로 구성된 컬렉션은 오로지 외찌와 그의 선물로만 꾸며졌다. 과학이 만든 중년의 외찌가 나무창을 들고 서 있고, 발견과정과 소지품, 그리고 25년간 진행된 외찌에 대한 연구의 모든 스토리가 전시되어 있다. 주인공 외찌는 영하 6도의 특별한 냉장실에 잠들어 있다. 발견된 그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QR코드로 그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 5천 년 전의 사람을 그리 멀지 않는 시대의 이웃처럼 만드는 전시와 외찌의 소지품을 만들어 만져보게 하는 설명도 감동적이다. 유리 너머로 보는 것보다 만지는 게 좋고 가져가면 더 좋다는 속담이 있지만…. 체계적인 연구와 전문가의 전시 감각, 그리고 해설가의 노력이 만든 박물관은 기획자와 관람객 모두를 즐겁게 한다. 로젠 가르텐의 흰색 산봉우리가 선명한 돌로미티, 남 티롤의 푸른 산들과 아디제강의 도시 볼차노, 그곳의 고고학박물관은 그래서 특별하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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