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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15> 백화수피의 고고학

입력 2020.06.17. 10:08 수정 2020.06.17. 19:45 @김혜진 hj@srb.co.kr
자작나무, 신화 넘나들며 고고학 유물이 되다
경주 천마총출토 천마도(자작나무껍질,국립경주박물관)

2005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몽골의 노인·울라유적을 답사하였다. 울란바토르 북쪽 100㎞ 거리에 위치한 유적은 200여 기가 넘는 몽골 최대의 흉노고분군이다. 내부는 이른바 파지리크 양식의 적석목곽묘. 1924년부터 소련의 조사가 있었으며 나의 방문은 러시아와 몽골의 합동발굴때였다. 유물은 토기와 목기 외에 2천년 전 중국에서 온 칠기, 청동기, 옥, 거울 등과 비단, 차마구 등이 알려지고 있다. 파지리크 고분처럼 노인·울라의 무덤도 내부에 물이 차고 그 뒤로는 얼음이 되어서 놀랄 만큼 유기물이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의 관심은 이 유적이 온통 자작나무 숲속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색의 나무숲과 발굴현장, 노인·울라의 자작나무숲 발굴캠프는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백색의 껍질을 가진 나무여서 백화수(白樺樹)라 부르는 자작나무는 온대에서 아한대까지 널리 분포하며, 성장이 빠른 교목으로 높이 20~39m, 자름 1m까지 자란다. 지구의 북반구에는 한국, 중국 동북부, 몽골, 시베리아, 러시아, 북유럽, 영국, 북미에 이르는 자작나무숲이 있다. 인류가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이탈리아 볼차노의 사우스티롤뮤지움에 전시된 5천년 전의 남자 「외찌」의 불쏘시개와 석제단검의 손잡이도 자작나무껍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세기 경의 인도의 불교경전도 자작자무껍질에 쓴 것이다. 몽골이나 바이칼 주변의 샤머니즘은 자작나무를 신성시하여 그 껍질에 문자로 쓴 각종 민간신앙의 경서 및 기원을 담은 백화문서가 12~15세기까지도 유행하였다. 지금도 중국 동북지방이나 몽골, 바이칼, 핀란드, 북미지역에서는 자작나무의 껍질, 즉 백화수피를 활용한다. 껍질의 채취는 나무에 물이 오른 시점에 이루어지며 몸통에서 용도에 따라 가로나 세로로 사각형 또는 나선형으로 길게 떼어낸다. 껍질은 편평하게 펴고 이어서 집안의 벽체나 바닥으로 사용하고 크고 작은 용기를 만들기도 한다. 자작나무 수액은 타르나 자일리톨의 귀중한 원료이다.

경주 천마총출토 채화판(위 서조문, 아래 기마인물문, 자작나무껍질, 국립경주박물관)

한반도의 자작나무는 지리산 고지대와 태백산, 백두산 지역에서 자생하며 거제수나무 등의 유사종도 11종이나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생활용기나 제작기술은 알려진 바 없다. 1973년, 경주 황남동 155호분의 발굴조사에서 6세기경의 순금제 금관과 관모, 금제 허리띠, 그리고 천마도가 그려진 백화수피제 말다래 1쌍이 1만2천여점의 유물과 함께 출토되었다. 그래서 155호분은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정식명칭을 얻게 된다.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는 장니(障泥)라고도 한다. 말이 달릴 때 발굽에서 진흙이 튀어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천마도는 자작나무의 껍질을 가로로 떼어내서 다듬은 뒤 상하 두매를 누벼서 만든 바탕판(75x56㎝) 위에 연백과 진사 등의 안료로 그린 것이다. 그림 속의 동물이 기린이라거나 껍질이 진짜 자작나무인가의 논의가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천마이며 자작나무 껍질이어야 한다. 샤머니즘의 나라인 신라에서 왕의 신성함, 그것은 천마나 자작나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조문(瑞鳥文)과 기마인물문(騎馬人物文)이 그려진 백화수피제 채화판이 보여주는 문양의 상서로움도 비교할 수 없다.

광주 신창동유적 출토 자작나무껍질 세부

한편, 1995~97년 광주 신창동저습지 발굴조사에서도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기원전 1세기의 자작나무 껍질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총수는 8점이며 길이는 30.4~7.1㎝ 정도. 그 가운데 2점은 길이 20㎝, 평면 장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20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구멍에 끈을 꿰어 연결하면 군대 반합과 같은 용기나 그 뚜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광주 신창동유적의 기원전 1세기경 생태환경은 자작나무의 생육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자작나무 껍질은 외부에서 유입되어야 한다. 실제로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상당한 종류의 수입품이 있다. 평양지역의 고조선식 수레기술이나 낙랑토기, 중국제 청동화살촉과 화폐, 일본열도의 야요이(?生)시대 토기, 동남아시아의 유리 등 이미 국제적 교류의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유물은 나무껍질로 만든 2개의 수피권(樹皮捲)! 너비 5㎜, 두께 1㎜ 정도의 이 유물은 감거나 묶고 꿰매거나 결합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테이프처럼 생겼다. 낱개로 둥글게 감은 뒤 철사 묶음처럼 십자로 매어 놓은 제품(?)같이 보였는데, 그러나 십자매듭은 사라지고 테이프만 남았다. 고고학 발굴은 늘 아쉬움만 가득하다. 이 테이프의 재질은 자작나무 껍질로 생각되지만, 벚나무일 가능성도 있다. 신창동유적의 유명한 칠기칼집에도 이 테이프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외부에서 완제품으로 수입되었음이 틀림없다. 기원전 1세기,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질이 어떻게 우리의 유물이 되었을까? 그 답은 아마 지역간 물자의 교류에 있을 것이다.

샤머니즘의 수도 경주의 천마도나 채화판의 자작나무 껍질도 중국 동북부나 몽골에서 초원길을 따라 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납작하게 펴서 가공하기 좋게 만든 자작나무 껍질, 그것은 어쩌면 몽골이나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보이는 신성수 이미지 그대로, 즉 하늘과의 교감을 매개하기 위한 상징물로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울란우데의 부리야트인들이 부활시킨 샤머니즘 의례가 제장(祭場)의 중심에 자작나무를 세우고 있는 것도 기능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자작나무는 인간의 기원을 전달하고 하늘의 신탁을 내려 주는 세계수이기 때문이다. 신라도 샤머니즘의 나라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샤머니즘은 오래전 우리 역사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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