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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10> 경자년의 동물, 쥐의 고고학

입력 2020.01.15. 18:10 수정 2020.04.02. 16:55
영물에서 식량 약탈 상징까지 변화무쌍
고양이와 쥐, 기원전 1295-1075년, 석회암, 이집트 테베출토,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사진;Brooklyn Museum, Ancient Origins)

2020년 새해는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사실 쥐 한마리로 시작되었다. 큰 산이 소리를 내며 흔들려서 큰 폭발이라도 일어나는가 했더니 작은 쥐 한마리가 나왔을 뿐이라는 속담. 예컨대 소란이 큰데 비해 걷잡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비유한다. 아직도 법과 원칙이란 단어로 가려진 욕망과 광기가 팽배한 까닭이다. 정권과 정부는 주권자인 시민의 요구를 충실하게 실현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태산이라고 쓰고 있어서 중국의 명산인 태산으로 생각하고 이 속담을 중국기원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출전은 서양이다. 우리에게 명언 ‘카르페 디엠’을 남긴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이다.

올해는 경자(庚子)년 쥐띠해이다. 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12종류의 동물풍속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며 무덤의 둘레에 돌려져 방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생김새나 움직임이 징그러워 부정적인 경향도 있지만,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긍정적인 면이 강하여 쥐해에 태어난 쥐띠는 부지런하고 근면하여 평생 부자로 산다고 믿었다. 이러한 속설은 특히 여성들의 결혼관에서도 존중되었다. 산업화시대 쥐띠부인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쥐는 인류보다 오래된 포유동물로 약 3,600만 년 전에 출현하였다. 인간과 가까이 살며 극지대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 지역에 분포한다. 인류가 채집과 사냥으로 생활하던 구석기시대에는 중요한 단백질 보충원으로 식용되었다. 그러다가 쥐가 인간의 대척점에 서게 된 것은 농경생활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쥐는 인간의 모든 식료품을 두고 인간과 경쟁하였다. 인간의 식량은 쥐에게도 필수 불가결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농업분야에서 식량의 약탈과 파괴가 시작되자 쥐들은 악마의 동물로 간주되었다. 이미 인간과 쥐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쥐가 여신이나 태양신인 호루스에게 바쳐지기도 하고 선과 악의 증표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고고학적으로 알려진 유물자료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쥐 미라다.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의 사제였던 네페린푸의 석관 안에서 봉헌물로 바쳐진 쥐가 발견되었다. 희생된 쥐를 린넨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서 만든 미라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미라가 당시 이집트에서 쥐가 신성한 동물이었으며 봉헌과 관련된 의식이나 숭배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나타내는 분명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람세스 왕조의 이집트 테베지역에서 출토된 얇은 석회암에는 사제복장을 하고 앉아 있는 쥐에게 고양이가 서서 제물을 바치는 그림도 출현한다.

기원전 6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에서 출토된 점토판은 쥐가 인간의 의료행위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점토판의 쐐기문자는 임신한 여성이 유산을 막기 위해서는 몰약으로 채워진 특정한 종류의 식용 쥐를 3일 동안 지니고 있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민간의 의료비법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리스의 아폴로 동상이 쥐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도 연결되는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가 의술의 신인 까닭에 손안의 쥐가 병의 치유와도 관련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쥐는 식량약탈의 상징으로서 유물에 등장한다. 대구 현풍에서 출토된 5세기경의 집모양 가야토기가 유일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이 유물은 위쪽에 다락, 말하자면 곡식창고가 배치된 살림집을 표현한 것으로 갈대지붕을 올렸으며 커다란 굴뚝이 달려있다. 자세히 보면 쥐 2 마리가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곡식을 훔치러 올라가다가 지붕위에서 나는 고양이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지붕위의 고양이가 낌새를 차리고 낸 야~옹! 소리의 날카로움만으로 사다리위에 노출된 쥐들은 갈팡질팡! 얼마나 황급하였을까? 1500년 전 가야장인의 순간포착 센스를 능가할 이만한 작품은 없다.

고고학자에게 쥐는 가끔 치명적인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른바 유적현장에서 이루어진 유물의 교란이 그것이다. 교란은 본래의 위치에 있었던 유물이 움직여지기도 하고 다른 시기의 유물과 혼합되어 시기와 종류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된다. 쥐구멍을 통해 교란되는 유물은 굴을 따라 위에서 내려오는 것도 있고, 쥐가 채집한 자료가 새로 추가되기도 한다. 교란행위가 수평적일 때 보다는 수직적인 양상일 때 문제가 크다. 이 경우에는 최초의 유물양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될 때 까지 이 교란사실은 바로잡을 수가 없다. 동물교란은 퇴적물이 균일화한 유물의 공간배치를 애매하게 한다.

사실상, 조개더미와 같이 성글게 형성된 유적의 퇴적층위는 대부분 들쥐의 소굴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곳에서 콩이나 팥과 같은 두류, 볍씨나 볏짚과 같은 농사자료가 출토되었다면 반드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쌀과 볍씨가 출토되어 우리나라 벼농사의 시작연대를 상당기간 올려보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지만, 얼마 안가 출토된 자료가 쥐 등에 의해 후대에 혼입되었음이 밝혀진 사례도 있다. 하마터면 쥐들이 가져온 유물이 획기적인 역사가 될 뻔 한 것이다. 물론 유적의 발굴과 유물의 취급에도 정교함이 요구되지만 여러 교란의 증거를 배제해야만 안정된 자료를 얻어낼 수 있다. 역사적 기록과 서술은 더욱 그렇다.

조현종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현재는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광주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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