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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8> 푸른 남해, 송도패총과 흑요석

입력 2019.11.10. 14:14 수정 2020.04.02. 16:59
남해안 신석기 생활상 보여주는 기념비적 유물

여수 송도패총 발굴조사광경(1989년)

송도패총을 발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은 발굴초기에

정말 갑자기 출토되어 조사원들을 흥분시킨 흑요석(obsidian)이었다.

칠흑처럼 검은 흑요석은 조사당시 이름만 기억될 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상상속의 광물일 뿐이었다.

흑요석은 화산분출시에 생성되는 아주 특별한 암석.

경도가 높아 쪼개내면 칼날처럼 날카로운 날을 얻을 수 있어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걸쳐 손칼이나 작살의 날 등으로 사용되었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자르는데 사용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선사시대 칼날! 나는 셀 수 없이 이 흑요석 칼을 만져보고 입을 맞추었다.

1989년, 나는 전라남도 여천군(지금 여수시) 송도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를 발굴하였다. 여수 송도는 한국 10위의 큰 섬인 돌산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돌산도의 소재지인 군내리에서 25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당시에는 노 젓는 뱃사공의 작은 목선이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해안 섬에 대한 발굴조사는 흔치 않는 일이어서 발굴 자체에 거는 학술적 성과 못지않게 눈부시게 푸른 남해바다에 대한 동경은 설레임의 순간들을 조성했다. 말하자면 발굴은 처음부터 기대만발이었다.

패총은 옛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모여 있는, 즉 쓰레기더미이다. 실제로는 조개뿐만 아니라 많은 생활용품들이 함께 버려진 채 쌓여 있어서 유물창고를 발굴하는 것처럼 고대 문화의 편린들을 얻어낼 수 있다. 아직 농업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던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해안가나 큰 강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잡아 먹고살았다. 남해안 지역의 여수의 여러 섬들에 남아 있는 패총유적들은 이러한 신석기인들이 남긴 삶의 안식처였다.

송도패총은 내 고고학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975년 담양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고고학이라는 학문과 접촉하게 된 나는 돌산도에서 군생활을 하는동안 청동기시대의 지석묘를 확인하고, 송도패총을 포함한 유적의 현상들을 최초로 보고하였다. 그리고 1989년 나는 내가 보고한 전라남도 최초의 신석기시대유적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를 담당하는 행운을 얻었다. 사실 전라남도 남해안지역의 도서에 대한 고고학조사는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바 있지만, 지표조사가 중심이어서 문화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내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은 참신하고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최초의 발굴이 주는 막연한 불안감의 장애라는 난관에 봉착하였다. 난관은 과제들과 정면으로 직면하게 하였으며 이미 알려진 다른 지역의 발굴보고서를 읽고, 출토가 예견되는 신석기시대의 유물들과 패총의 현상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땅속의 세계를 발굴하는 동안 우리는 매시간 마다 신중함이 요구되는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굴이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메시지를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대를 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송도패총에서는 남해안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지금은 전남지방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서남해안에서 가장 연대가 빠른 덧무늬토기, 뗀석기의 전통을 갖는 석기류, 일본열도와 한반도 동남해안을 잇는 이음식 낚시 등과 여러 점의 흑요석을 비롯한 획기적인 유물들이 이때 출토되었다. 여수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러한 유물들은 부산과 통영지역의 패총과 그 시기나 내용의 유사성이 확인되었다. 그 뒤로 나는 안도패총처럼 신석기시대 남해문화권의 중심을 이루는 유적들을 여수의 여러 섬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송도패총을 발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은 발굴초기에 정말 갑자기 출토되어 조사원들을 흥분시킨 흑요석(obsidian)이었다. 칠흑처럼 검은 흑요석은 조사당시 이름만 기억될 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상상속의 광물일 뿐이었다. 흑요석은 화산분출시에 생성되는 아주 특별한 암석. 경도가 높아 쪼개내면 칼날처럼 날카로운 날을 얻을 수 있어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걸쳐 손칼이나 작살의 날 등으로 사용되었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자르는데 사용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선사시대 칼날! 나는 셀 수 없이 이 흑요석 칼을 만져보고 입을 맞추었다.

우리나라의 흑요석은 백두산계가 유일하며, 일본에서는 51개소의 흑요석 산지가 있다. 화산섬이기 때문이다. 송도패총의 흑요석은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백두산 원석과는 조성비가 다르고, 일본 구주의 요악(腰岳)에서 건너온 원석임이 확인되었다. 여수 송도까지는 직선거리 250.5Km. 동부 시베리아에서는 이미 8천년 전, 약 2천Km를 이동한 흑요석의 길이 발견된 바 있지만, 기원전 4300년, 송도의 흑요석도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머나먼 길을 건너 온 것임을 상기시킨다.

한편, 2007년 조사된 안도패총에서는 다량의 흑요석과 함께 인골의 팔목에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가 끼워진 상태로 발굴되었다. 이러한 팔찌는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지만 그 산지는 우리나라 남해안지역. 한반도 동남해와 일본 구주지역 신석기시대 문화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신체의 장식뿐 아니라 상징과 주술의 세계를 보여주는 팔찌! 어쩌면 조개 팔찌와 흑요석을 교환한 것은 아닐까? 송도와 안도의 패총유적들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들은 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바다건너 일본열도와, 그리고 서해를 통해서 중국의 발해만지역과도 촘촘하게 연결되고 교류하였음을 시사한다.

흔적으로 남은 유적들에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깨어나지 못한 문화의 속살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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