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으로 여는 미래도시

조세부터 입법, 행정까지 주민 스스로 결정한다

입력 2022.08.30. 18:10 김현수 기자
자치분권으로 여는 미래도시 ⑤스위스 지방분권
지방행정 연방-칸톤-코뮌 구조 구성
연방정부 권한 제한적 지방정부 중심
지방자치제 일환 '코뮌' 자치권 가져
'낮은 세금·높은 서비스'로 정책 대결
"좋은 동네 만들기 책임·자부심 높아"
스위스 한 코뮌 주민 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모습. 베른시 제공

자치분권으로 여는 미래도시 ⑤스위스 지방분권

지난해 11월 새 변이 '오미크론' 감염자가 전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 가운데 스위스에서는 코로나19 면역 증서인 '백신 패스' 법안 채택을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백신 접종을 마쳤거나 감염됐다가 회복됐거나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된 사람들만 공공 장소에서 열리는 행사와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코로나19 증명서 발급을 도입하는 법안을 채택하기 위한 투표다. 이 법안에는 수십억 스위스 프랑을 코로나로 인해 피해 입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투표 결과 62.01%의 찬성표를 얻어 법안이 가결됐다.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코로나19 방역 법률의 타당성을 묻는 국민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와 공중보건을 위해 시민의 생활을 제한하는 국가 정책 사이의 갈등을 전 국민적 차원에서 공적인 투표를 통해 논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민투표를 시행한 나라다.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스위스는 베른주, 취리히주, 제네바주 등 26개 칸톤으로 이루어진 연방정부로 주마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을 그대로 간직해 지방정부의 권한이 더 세다.

칸톤마다 연방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칸톤 자체 헌법을 만들고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별도로 존재하며 여러개의 '코뮌(커뮤니티)'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뮌 역시 지방자치제의 일환으로 행정과 입법은 물론 조세 등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칸톤끼리 연맹이나 연방으로부터의 탈퇴는 금지된다.

연방정부가 있지만, 권한은 극히 제한적으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국가와 지방정부간에 권한은 일명 '보조성의 원칙'에 입각하며 기초자치단체에 우선 배분된다. 학교, 지역 도로, 건설 등 주민 복지와 관련된 사안은 모두 코뮌이 맡고, 이를 해결하기 힘든 사업 등에 관해서만 상급 자치단체인 칸톤이 처리하는 방식이다.

연방은 연방헌법에 따른 업무만 가능하다. 역시 칸톤이 처리하는 어려운 외교, 국방, 통화, 통신, 에너지 정책 등에 관한 역량을 보완해주는 역할만 한다.

스위스 베른시 정부청사에서 레굴라 부크뮐러( Regula Buchmuller)베른시 대통령 직속 대외협력부장과 인터뷰하는 모습. 공동기획취재단

이처럼 스위스의 행정은 강력한 지방자치를 바탕으로 작은 커뮤니티인 코뮌에서 칸톤, 연방에 이르기까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중앙집권화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수직·수평적 협력이 특징이다. 스위스가 이처럼 자치분권이 강화된 까닭은 서로 다른 집단과 계층으로 구분됐기 때문이다. 각 연방 마다 언어, 종교, 문화 등 다양성과 개별성이 조화를 이루며 권력의 분산을 통해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통합 기능을 가진다.

이렇다 보니 스위스의 26개 칸톤은 서로서로 '낮은 세금·높은 공공서비스'를 주장하며 유럽 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한다. 2천700여개의 코뮌도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해당 코뮌에 오래 거주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코뮌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다. 또 마을의 갈등을 해결하고, 세금을 얼마나 걷고 높일지 낮출지, 법을 만드는 과정 등 모든 것을 주민들 스스로 주민 총회를 통한 찬반 투표로 이뤄진다.

레굴라 부크뮐러 스위스 베른시 대통령 직속 대외협력부장은 "코뮌 자체들이 서로 더 잘 살기 위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사람들이 거주하게 만들게 끔 한다. 그것에서 자치의 힘이 나온다"면서 "코뮌에 사람이 많을수록 세율도 낮아져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네를 꾸미고, 이를 이행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크다"고 밝혔다.

더 나은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코뮌끼리의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학교나, 의료 서비스, 소방, 하수, 노인복지, 쓰레기 처리 등을 목적으로 코뮌끼리 협력하고 각종 혜택을 제공받기도 한다. 예로 학교가 없는 코뮌은 이웃 코뮌에 교육을 제공받고, 칸톤내 대학이 없는 경우 대학이 있는 칸톤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코뮌은 광범위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코뮌 간의 '조인'도 이뤄지고 있다.

칸톤 차원에서 다양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최근들에 스위스는 코뮌을 줄이고 다른 코뮌에 가입하도록 권유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베른주도 인근 코뮌간 하나로 합치는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 중이다

스위스 한 코뮌 주민 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베른시 제공

레굴라 부크뮐러 대외협력부장은 "작은 단위 코뮌들은 정부도 세우고 학교도 세워야하는데 사람은 없다"면서 "베른시가 1만8천명 정도되는 코뮌과 작은 코뮌을 조인시키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작은 코뮌 4~5개가 우리나라의 초광역 협력처럼 하나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5개의 코뮌이 1개의 학교나 정부를 공유하는 식의 방법, 민간 부분과 협력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한다.

입법과 행정, 조세 등 모든 것을 주민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데는 스위스의 교육에서 나오고 있다.

스위스는 교육과 복지 서비스 기능을 확대시키고 있다. 정부 인력과 조직 증가는 물론 정책 집행을 위한 예산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스위스 정부가 시민 삶의 질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교육과 복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레굴라 부크뮐러 대외협력부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치분권 교육이다. 어린이, 청소년, 시민 등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힘으로 모든 공동체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민들 책임감 없으면 지방자치가 돌아가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로 인한 자부심도 높다"고 덧붙였다.

서울=김현수기자 cr-2002@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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