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사생활의 기능

@정지아 소설가 입력 2021.12.26. 16:45

어릴 적, 오십 호 남짓한 고향마을에 미친년(양해하시길. 그 시절의 인권의식이란 이런 수준이었다)이 있었다. 아이들은 미친년이 지나갈 때마다 "미친 년이다!" 소리치며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그이의 아들이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수줍음 많고 말수도 적었지만 공부를 곧잘 하는 친구였다. 그 아이는 읍내 중학교에 다니다 어머니가 미친년이라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밤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다. 1970년대 시골의 풍경은 대개 그러했다. 시골에서는 비밀이 없었다. 누구 아버지가 마누라를 두들겨 팼네, 어느 집 며느리가 남의 호박을 몰래 땄네, 어느 집 딸내미가 서울 가서 어떤 놈 애를 뱄네, 하루가 머다고 소문이 돌았고, 소문의 당사자들은 때로 고향땅을 영영 밟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시골이 싫었다.

사람들이 시골의 정 운운할 때도 나는 여전히 시골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폭력에 가까운 시골 사람들의 입방아와 푸짐한 인심이 샴 쌍둥이와 같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이웃집 수저가 몇 벌인지도 다 안다. 서로를 나처럼 잘 알기 때문에 농촌공동체에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생활 없는 시골이 오래도록 끔찍했다. 이제 시골은 텅 비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평생 함께 늙어온 노인네들 몇밖에, 달리 뒷담화할 사람도 없는 탓이다.

뒷담화 무성하던 시골 마을의 풍경이 요즘은 인터넷 상으로 옮겨온 듯하다. 유튜브를 보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연예인의 사생활부터 평범한 직장인의 사생활까지, 유튜브는 온통 남의 뒷담화로 들끓는다. 일전에 결혼식 전날, 여자친구가 직장동료와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안 남자가 여자친구의 카카오 친구들에게 사실을 폭로한 일이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여성의 직장은 물론 신상과 얼굴까지 유튜브에 나돌았다. 사람들은 입에 담지 못할 댓글로 그 여성을 비난했다. 여성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동네방네 소문이 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여성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들키지 않은 채 떵떵거리고 산다 한들 바람을 피우거나 말거나 그건 사생활이다.

우리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은둔의 영역을 사생활이라 부른다. 의관을 정제하던 반듯한 사람도 사적 영역에 들어가면 팬티만 입고 활보할 수 있는 것이며, 점잖은 부부도 부부끼리 유치하거나 잡스러운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건 죄가 아니다. 그걸 엿보려는 호기심이 옳지 않은 것이며,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해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예의다. 더 나아가 새디즘이든 매조키즘이든 그 또한 사생활이다.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된다. 맞고 싶지 않은 사람을 때려서 자기 욕망을 채우면 범법이지만, 때리고 싶고 맞고 싶은 사람이 만나면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누구든 24시간 타인을 의식하고 긴장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을 때 실수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시간 덕분에 나머지 긴장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실수, 그것도 사생활의 실수에까지 쌍심지를 켜고 심판하려는 요즘의 세태가 나는 무섭다. 이런저런 말이 들릴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욕먹을 것 천지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사생활의 영역은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도록 눈감아주는 세상이면 좋겠다. 프랑스 대통령은 고등학교 시절, 유부녀이던 선생, 그것도 친구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친구의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마크롱과 재혼했다. 그런 사람도 대통령이 된다. 한국에서라면 마크롱도 브리지트도 사회적 매장을 당했을 것이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아내를 두고 줄리니 뭐니 말들이 많다. 나는 우리 사회가 그런 전적을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로 그런 직업을 갖게 되었든, 한때 그런 직업을 가졌던 사람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면 좋겠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아내는 사생활 외에도 수많은 범법의 의혹을 받고 있다. 그것만 법대로 심판해도 충분하다. 사생활로 비난하고 매장할 것이 아니라 법으로 심판해야 하는 것이다. 사생활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오롯한 개인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도 나도 숨을 돌리고 퍽퍽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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