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5·18과 덕의 변증법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1.03.21. 13:10

5·18을 우리는 시민들의 덕이 표출된 사건으로 기억한다. 항쟁의 기간 동안 시민들은 서로 도왔고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었다. 고립 속에서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주었고 서로 나누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시민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공동체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참으로 덕의 공동체였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그런 공동체로서 모범이 되었다.

최근 그리 유쾌하지 않은 보도들이 이어졌다. 지난 1월,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공포됐다. 5월 단체들이 바라던 바였다. 이에 따라 사단법인인 세 단체(구속부상자회, 유족회, 부상자회)는 해산하여 각각 공법단체로 재설립될 예정이다. 그런데 공법단체 설립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생겼다. 서로 다투다가 심지어 '가짜 유공자'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없던 갈등이 이렇게 새로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공법단체가 되면 할 수 있는 수익사업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한때 공동체를 위해 덕을 발휘하며 희생했던 시민들이 이제 덕을 상실하고 물질적 이익 앞에서 서로 다툰다는 상투적 비판처럼 들린다. 물론 덕과 이익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은 5·18유공자와 그 자녀들이 마치 온갖 부당한 혜택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비방한 사람들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익이 숨어 있음을 폭로함으로써 어떤 행위가 마치 도덕적이지 않은 것처럼 공격하곤 한다. 그러나 사익을 포기하는 것이 그 자체로 도덕적인 것이 아니듯, 도덕적이기 위해 반드시 사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지만, 누가 공익을 침해하지 않는데도 사익을 추구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가 5·18유공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성직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탐하지 않고 직분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문제를 종교 공동체가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5·18유공자들이 경제적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치 공동체가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권력을 추구하고 경제적 이익을 탐한다면,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미 사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5·18유공자들이 이권을 두고 다투는 이유도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덕이 가져온 성공이 다시 덕의 타락을 가져온다는 것은 정치사상사의 오래된 주제이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살루스티우스는 공화정 말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로마 시민들의 수고와 정의에 의해 공화국이 성장하고 위대한 왕들이 전쟁을 통해 복속되고 야만적인 부족들과 큰 인민들이 힘에 의해 정복되고 로마 지배의 경쟁자 카르타고가 뿌리째 뽑혀 모든 바다와 땅이 열리자 운명의 여신이 사납게 날뛰고 모든 것을 뒤섞기 시작했다. 노고와 위험, 불확실하고 힘든 상황을 쉽게 이겨낸 자들에게 그들이 과거에 바라던 여가와 부가 주어지자 이제 짐과 고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배에 대한 욕망과 돈에 대한 욕망이 자라났고, 그것들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었다. 탐욕은 … 오만과 잔인을 가르쳤고, 신을 불경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기도록 가르쳤다. 야망은 필멸의 존재들에게 많은 거짓을 행하게 했다. 어떤 것은 마음속에 숨기고, 또 어떤 것은 말로 밖에 드러내게 했다. 친구와 적을 사실이 아닌 이익에 따라 구분하게 했으며, 좋은 성질보다 좋은 외모를 더 중시하게 했다. 이 욕망들이 처음에는 천천히 자라나다가 이따금씩 배척되기도 했지만, 병폐가 마치 전염병처럼 침입한 뒤에는 시민 전체가 변했고, 가장 정의롭고 좋던 지배는 잔인하고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이 발휘한 덕과 그것을 모범으로 여긴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이 함께 발휘한 덕을 통해 지금과 같은 부강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그 덕이 가져온 성공으로 인해 다시 쇠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배와 돈에 대한 욕망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한때 덕스러웠던 시민들을 변하게 하고 있다. 덕의 변증법이 공동체가 몰락한 뒤에 질서가 생겨나고 그 질서에서 다시 덕이 생겨난다고 말한다면, 위대한 정치가는 시민의 덕을 재생시켜 공동체의 몰락을 막는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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