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거리두기'의 딜레마

@김기태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이사 입력 2020.06.18. 18:14

대화 당사자 간 거리는 소통의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지가 곧 관계의 질을 좌우한다. 비언어적 메시지로서의 거리를 관찰하면 대화하고 있는 사람 사의의 관계를 유추할 수도 있다. 인류학자 헐(E. Hull)은 거리 개념을 이용하여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먼저 접촉 상태에서 약 45cm까지의 거리를 유지하는 '친교적 거리'로서 연인 또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거리이다. '개인적 거리'는 약 45cm에서 120cm까지의 거리로 일반 사교 또는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친구 사이의 거리를 말한다. '사회적 거리'는 120cm에서 360cm까지의 거리로 교실 안의 교사와 학생, 사장과 비서, 경찰과 범인 사이에 유지하는 거리이다. 마지막으로 '공공적 거리'는 대중 집회에서 연사와 청중 사이의 거리 등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거리 개념은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가 곧 관계와 소통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대방과 유지하고 싶은 관계의 정도나 깊이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런 상황에 의도치 않은 변화나 균열이 발생하면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깨지는 경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지침 중 주변 사람과의 거리두기는 필수 항목이다. 현재 창궐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확진자의 침방울에 의해 전염 가능성이 높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숙주의 이동과 착근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일정한 거리두기 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병원체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2m 이상 날아가며, 공기중에서는 3∼4시간 지나야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방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따라서 방역 당국에서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손씻기, 마스크 착용하기와 함께 일정한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밀접한 곳을 피하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호흡기 질환의 사람들에게서 속히 멀어져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자 정부는 방역 단계를 심각 수준으로 격상하고 보다 강력한 지침을 공표했는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준수 사항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여기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능하면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 자체를 최소화하라는 즉,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였다. 이런 차원에서 각급 학교를 비롯해서 종교 및 사회 시설은 물론이고 시장이나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문제는 일시적인 물리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심리적 거리두기를 넘어 점차 실제 서로 멀어지는 경우까지 생겨난다는데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가능하면 멀리하는게 좋다는 방역 지침에 따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동안 서로 만나던 사람, 모임, 집회 등과 거리를 두게 된다. 처음 얼마동안은 일시적인 조치로 곧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일시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실제로 서로간 '거리'를 만들고 다시 관계의 불편함이나 단절로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시 '거리두기'가 끝난다고 해도 다시 복원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물론 부작용만 있는게 아니고 매우 좋은 기회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만날 필요가 없었거나 만나서도 별 의미가 없었던 만남을 습관적으로 지속해왔던 경우라면 이번 기회에 과거 만남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터이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각종 온라인 시스템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형의 만남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오프라인보다 더 유용한 온라인 소통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거리두기를 권하는 이 시대에 그동안 모든 만남과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 얼마나 건강하고 의미있는 관계와 만남을 유지해왔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김기태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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