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일제 탄압에 완강히 맞선 의병들 넋 깃들어

입력 2022.08.01. 14:54 이석희 기자
[판결문 속 한말 호남 의병] ⑤피로 물든 팔영산 만경암 전투
험준한 산세 유일한 겹산 안성맞춤
군 서기 출신의 의병장 신성구 비롯
120명 규모 의병부대 활동 근거지
일제 급습, 16명 전사 처절한 전투
1907년부터 2년간 50여회 의병전쟁
만경암지(송호철 선생 제공)

[판결문 속 한말 호남 의병] ⑤피로 물든 팔영산 만경암 전투

고흥, 필자가 어렸을 때 나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한 소록도를 먼저 떠올렸다. 최근에는 우리 기술로 위성 발사체를 제작해 발사한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흥반도에 들어서는 순간 멀리 바라다보이는 기암괴석 여덟 봉우리로 구성된 명산의 위엄에 압도된다.

고흥의 진산으로 다도해 해상공원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팔영산을 말한다.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팔영산은 봉우리가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특이한 산세에다 다도해를 조망하는 경관이 빼어나 1998년 도립공원 지정된 데 이어 2011년 1월 1일 다도해 국립공원에 편입됐다. 최근 여수 화양에서 조발대교 ·둔병대교 ·낭도대교 ·팔영대교를 잇는 연륙·연도교가 건설됨으로써 여수~고흥이 곧바로 연결되어 관광객 발길이 늘고 있다.

하지만 팔영산이 한말 고흥 의병부대의 거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찾는 이는 많지 않다. 팔영산 등반로 입구에 있는 능가사(楞伽寺)라는 명찰(名刹)이 있다. 능가사에 딸린 암자였던 만경암, 서불암, 칠봉암 등지에서 1907년 말 일어난 후기 의병(정미의병) 때부터 일본군과 의병부대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10월 2일 자에 "흥양군에서 의병이 벌떼와 같이 일어났다", "일본인 우체부의 구전에 의하면 (필자주 : 9월) 16일 밤 의병 500~600명이 봉기해 일본인 및 단발한 자를 만나면 즉시 포살하매 우편소와 경찰분파소의 직원들이 피난했다" 등의 기사가 있다. 이 기사들을 통해 고흥 의병 전쟁 열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07년 8월 1일 군대 해산 명령이 내려진 후 해산군인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전쟁이 본격화됐다. 고흥에서는 불과 2개월도 되지 않아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준비되고 있음을 신문기사는 말해주고 있다. 고흥에서는 이미 1906년부터 의병운동이 본격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이러한 열기가 1907년 전국적인 의병 전쟁 때 고흥이 주도적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07년 10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만 2년 동안 50여회에 달하는 의병 전쟁이 고흥 관내에서 전개됐다. 1907년 11월 9일 의병 60명의 공격을 받은 흥양(고흥) 분파소가 2시간 방어했으나 패퇴했다는 황성신문 기사가 당시 고흥 의병들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고흥에서 일어난 전투를 보면 안규홍 등이 고흥에 와서 전투를 치른 장면이 여럿 보인다. 이는 보성과 고흥 의병 부대가 연합작전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고흥 의병이 일본군과 치른 수많은 전투 가운데 가장 처절한 전투가 1909년 7월 7일 의병 16명이 전사한 만경암 전투였다. 이 전투 상황은 일본군 전투일지에 상세히 나와 있다.

팔영산

"(1909년) 본월(7월) 7일 관내 흥양주재소는 폭도 혐의자로서 체포한 이운택 등의 자백으로 흥양군 점암면 팔경산(필자주 : 팔영산) 만경암에 폭도 120명이 집회 잠복하고 있고, 적괴 안진사의 부하로 흥양군에서 의병 수괴로 활동한 군서기였던 신성구 당 29세 등이 같은 면 성주동에 잠복함을 확인하고, 흥양수비대 14명, 벌교수비대 8명, 헌병 1명, 헌병보조원 2명 등 25명으로 구성된 일본군 연합 토벌부대는 의병부대를 야밤에 기습공격하고자 이날 오후 6시에 만경암으로 출동했다. 만경암 공격에 앞서 수괴 신성구가 잠복한 성주동을 포위하고 체포하려 했으나 의병의 보초에 노출돼 신성구와 부하 4명이 먼저 사격을 가하며 도주했다. 이에 계속 전진한 일본군 토벌부대는 계속 전진해 마침 저녁 식사 중인 폭도 120명을 급습했다. 이에 암자를 근거로 해 의병부대는 완강히 저항했으나 교전 1시간 후 격파됐다. 죽은 시신 16, 화승총 12, 군도 1, 탄약 약간과 피복 2점을 버리고 흩어졌다. 이에 계속 추격했으나 추가 전과는 없어 이튿날인 8일 오후 8시 일단 부대로 돌아왔다.(일본군 폭도토벌 상보, 한국독립운동사자료 15)

만경암 전투는 폭도 혐의자로 체포된 이운택의 자백을 통해 의병부대의 행적을 파악한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부터 비롯됐다. 전직 순사로 의병 활동을 지원했던 이운택은 일본군에 피체된 후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백했던 것이다. 팔영산 만경암에 의병 120명이 넘는 대규모 병력이 있었다는 것은 이곳이 의병본부였음을 말해준다.

팔영산은 산세가 험한 데다 고흥 유일의 겹산으로 의병들이 주둔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전남 중남부를 장악한 '호남의소'의 사령부가 있었던 영암의 국사봉도 팔영산과 마찬가지로 겹산이었다. 거기에다 팔영산 주변은 평야 지대로 사방을 조망하기가 좋아 일본군 기습을 예방에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팔영산 만경암에 주둔한 의병부대의 지도자가 신성구였다. 신성구는 전직 군 서기이고, 당시 나이가 29세라고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병들의 움직임을 일본군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본다. 수괴 신성구를 안 진사 부하라 했는데, 안 진사는 보성을 중심으로 활약한 안규홍 의병장을 말한다. 곧 신성구가 안규홍의 부하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신성구를 수괴라고 했고, 그가 만경암에서 독립부대를 120명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성구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고 하겠다. 곧 안규홍과 연합의진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1909년 7월 8일 아침 식사를 하던 중 기습공격을 받은 고흥 의병은 일본군과 1시간 넘는 대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 16명의 의병이 장렬히 전사했다. 신성구가 이끄는 의병부대는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었다. 그는 의병장 김경윤과 함께 8월 10일 과역 시장에서 보급활동을 한 후 동강으로 이동했다. 김경윤과 신성구가 연합의진을 구성했음을 말해준다. 김경윤은 1909년 9월 26일 일본군에 피체됐으나, 신성구는 두만강 건너편으로 망명을 가 그곳에서 의병 전쟁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족보인 '고령신씨세보 시중공파' 세보(世譜)에 "(성구가) 국운이 기울어지자 역학에 통달해 의병장에 선임되어 나라를 잃기 전후로 국경 및 노만(露滿) 각지에서 사투한 지 30년이었다. 1941년 4월 20일 졸"이라고 적혀 있다. 곧 신성구가 국경 및 노만 국경에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이 족보에 적혀 있어 그대로 신빙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노만 근처의 국경에서 활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신성구가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두만강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했음을 말해준다.

신성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고흥 향토사학자 송호철 선생의 연구를 통해 대략을 살필 수 있다. '영주연방선생안'이라 해 고흥의 역대 향리 명단을 수록한 책에 '신성구'라는 이름이 보인다. 여기 적힌 신성구가 의병장 신성구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그곳에 적힌 향리 계보와 신성구 가계가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안'에 나오는 신성구가 의병장 신성구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신성구가 향리 신분이었고, 그의 조상 대부분이 향리의 역을 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성구 부친 신창모는 향리를 거쳐 1906년 전라남도 관찰부 주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갑신정변에 연루돼 고흥 여도에 귀양 온 신기선 및 지방의 선비들과 교유했다. 신창모는 비록 향리 출신이긴 하지만 유학자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었다. 그의 올곧은 역사의식이 아들 신성구가 목숨을 건 의병 항쟁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신창모의 4남으로 태어난 신성구가 국내외에서 의병전쟁을 이끌다 보니 집안은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슬하에 5남 1녀가 있었는데 1908년생인 막내인 완휴만 살아남았다. 완휴가 쓴 '봉헌만록'이라는 문집 후기에 "그의 부친이 구한말 의병 참모장으로 출전했으나 실패하고, 국경으로 망명을 간 이후 5남 1녀가 거의 비명에 일찍 죽고, 필자(완휴) 1인만이 남아"라고 적은 데서 대략을 짐작할 수 있다.

만경암 전투에 참여한 의병만 하더라도 120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고흥 출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이름을 올린 고흥 출신 의병은 송기휴, 이병채, 김영성, 김직순, 송계명, 송주헌 등 모두 6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고흥의병에 참여한 인물은 김영성, 송기휴, 김직순, 송계명 등 4명이다. 기록에서 확인되는 의병장 신성구, 김경윤 등을 비롯해 수많은 고흥 의병들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활약상을 밝혀내고, 서훈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심적암을 찾아가려 해도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다. 하루바삐 심적암 등 의병전쟁의 격전지를 정비해 고흥의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해현 시민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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